삼국시대는 난세였습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었다가 내일에는 다시 같은 편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습니다. 그런 혼돈의 시대에 커다란 매듭을 짓는 사건이 있었으니 198년 하비가 함락되면서 천하의 여포가 조조와 유비 연합에게 죽임을 당하는 사건입니다. 199년에는 원소가 공손찬을 죽였고 조조는 유비를 통하여 원술을 죽이고 천하의 영웅은 조조와 유비뿐이라는 말을 남깁니다. 200년 조조는 원소와 관도대전을 벌입니다. 동맹과 배신이 정신없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어떤 맥락이 있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유비가 갈 곳 없는 여포를 받아들였으나 여포는 유비의 뒤통수를 치고 서주를 빼앗았고 원술에게 패한 유비는 여포에게서 소패를 얻어 몸 둘 곳을 얻습니다. 하지만 유비가 소패에서 다시 만여 명의 병력을 모으자 여포는 불안해집니다. 198년 봄 여포가 부하에게 말을 사러 보냈는데 장비에 의하여 약탈을 당합니다. 노한 여포는 유비를 공격하고 유비는 대패합니다. 갈 곳 없는 유비는 허도에 있는 조조에게 귀순합니다. 조조는 참모들을 불러 유비에 대하여 묻습니다. 유비를 죽이라는 참모도 있었지만 곽가는 말합니다.
“지금 유비는 영웅이라는 이름을 얻고 있습니다. 그가 궁지에 몰려 귀순해 왔는데 그를 해치면 현명한 자를 해쳤다는 오명을 얻게 됩니다. 장차 뜻있는 선비들의 의심을 사게 되어 그들이 공을 주군으로 선택하고자 하는 마음을 돌리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공은 누구와 천하를 평정하겠습니까?”
조조는 여포를 공격할 때 유비를 써먹을 데가 많다고 보았습니다. 또 유비가 인심을 잃어가며 죽여야 할 정도의 인물로는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천자에게 표를 올려 유비를 예주목에 임명하고 패국으로 돌아가 흩어진 군사를 다시 모으게 했습니다. 유비에게 군량을 공급하고 병사를 보충해 준 다음 동쪽으로 가서 여포를 치게 했습니다. 조조는 하후돈을 보내 유비를 지원했는데 하후돈이 선봉에 서서 싸우다가 고순의 진영에서 날아온 화살에 하후돈의 왼쪽 눈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후 하후돈은 애꾸가 되었으므로 맹하후라고 불려지게 되었고 하후돈은 거울을 볼 때마다 몹시 성을 내며 거울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곤 했다고 합니다.
여포의 부하인 고순과 장료는 9월 소패성을 공격했고 유비는 단신으로 도주하면서 유비의 처자식은 다시 포로가 되었습니다. 조조가 친정을 결심하자 참모들은 반대했으나 순유만이 홀로 찬성했습니다.
“유표와 장수의 군대는 최근 패전했으므로 당분간은 군대를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여포는 날래고 사나우며 원술의 지원을 받고 있으므로 회수와 사수 사이를 종횡으로 누비면 그 지역 호걸들의 호응을 얻을 것이 분명합니다. 아직 여포가 서주를 장악한 지 얼마 안 되어 있으므로 지금 공격하면 격파할 수 있습니다.”
198년 10월 조조가 직접 여포를 공격하러 나섰습니다. 여포가 유비를 격파하자 인근의 수령들인 장패 손관, 오돈, 윤래, 창희 등이 여포에게 줄을 섰습니다. 유비는 조조에게 가담하였습니다. 여포는 원술에게 지원을 요청하였으나 원술의 지원군은 조조에게 격파되었습니다. 하내태수 장양이 여포를 지원하려 나섰으나 조조와 원소는 각기 장양 군 내부에 이간책을 사용하였습니다. 조조가 장양의 부하 양 추를 통하여 장양을 살해하자 원소는 장양의 부하 휴고를 시켜 양추를 죽이고 장양의 병력을 이끌고 원소에게 투항하도록 공작하였습니다. 장양은 의리를 중시하는 인물이었으나 원소와 조조의 권모술수에는 무력하였습니다.
조조의 참모인 순유과 곽가는 하비성이 저지대에 위치한 점에 주목하여 인근의 사수와 기수의 물을 끌어들여 수공작전을 벌였습니다. 제방을 허물어 하비성 일대를 물에 잠기게 하자 하비성은 침수되어 성안의 병사들과 백성들은 편히 쉴 곳을 찾지 못하였고 식량도 물에 젖어 이 상태가 한 달여가 지나자 여포 진영은 점점 더 피곤하고 궁박해졌습니다. 여포는 식량을 아끼기 위하여 술 빚는 것과 마시는 것을 금하였습니다.
여포의 기병대장 후성이 명마 15 필을 키웠는데 부하 한 명이 후성의 명마를 훔쳐 유비에게 귀순하려 했으나 후성이 추격하며 모두 되찾아올 수 있었습니다. 후성이 기쁜 마음에 이미 빚어놓은 술과 사냥해서 잡은 멧돼지 10여 마리로 잔치를 벌이려고 하다 먼저 술과 돼지고기를 들고 직접 여포를 찾아가 경위를 설명하였습니다. 여포는 버럭 화를 냈습니다.
“이 여포가 금주하고 있는데 경은 술을 담갔단 말인가. 여러 장수와 함께 먹고 마시며 의형제라도 맺고 공동으로 이 여포를 죽일 음모라도 꾸미겠다는 것인가?”
후성은 두려운 마음에 준비한 술을 모두 내다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만의 싹이 자라기 시작하였습니다.
조조가 성을 포위한 지 3개월이 지나자 여포 진영의 군심은 흔들려갔습니다. 여포가 독립하기 시작하면서 수행했던 장수들은 고순, 장요, 송헌, 위속, 후성이었고 여포와 진궁에게 불만을 품은 후성은 친한 장수 송헌 위속과 공모하여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먼저 진궁을 포박한 다음 조조에게 항복했습니다. 여포가 측근들과 백문루에 오르니 조조군의 공격이 매우 거셌습니다. 여포는 스스로 성문에서 내려가 항복했습니다. 조조의 장수들은 여포를 산채로 잡아 조조에게 데려갔습니다. 여포가 말했습니다.
“포승줄이 너무 빡빡하니 좀 늦추어 주시오.”
조조가 대답했습니다.
“호랑이를 묶는데 아니 빡빡할 수 있겠소?”
묶인 여포를 바라보며 조조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었습니다. 여포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때 여포가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평소에 명공의 걱정거리 중에 이 여포를 능가하는 자가 없었소. 지금 내가 이미 항복했으니 이제 천하에 걱정거리가 없어졌소. 명공이 보병을 이끌고, 이 여포가 기병을 이끈다면 천하를 평정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오.”
조조가 더 생각이 빠지자 여포가 한 마디 더 추가했습니다.
“제환공은 자신의 혁대고리를 쏜 관중을 제나라의 재상으로 사용하였소. 지금 여포로 하여금 고굉지력을 다하게 하시오. 공을 위하여 선봉에 서서 말을 달리도록 하겠소.”
조조는 인재에 대한 욕심이 많은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었습니다. 여포는 마지막으로 유비에게 희망을 걸었습니다. 여포는 유비에게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현덕. 경은 상좌에 앉아있는 손님이 되었고 나는 사로잡힌 포로가 되었소. 이럴 때 말 한마디 해줄 수 있는 것 아니오?”
조조는 유비를 바라보며 여포를 살려줄 뜻을 슬쩍 내비치면서 웃으며 말했습니다.
“어찌 말이 없으시오. 여포를 위하여 호소하시겠소?”
유비가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왔습니다. 조조에게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명공께서는 정원과 동탁의 일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조조가 고개를 끄덕이자 여포가 유비를 향하여 외쳤습니다.
“저 귀 큰 아이야 말로 최고로 못 믿을 놈이로구나!”
조조는 여포와 진궁, 고순을 참수하고 그 머리들을 허도로 보내 저잣거리에 높이 걸었습니다. 그런 후에 장사 지내주었습니다.
조조와 원소 장막은 젊은 시절 낙양 거리를 함께 누비던 사이였습니다. 원소가 반동탁 연합군의 우두머리가 되어 교만해지자 장막은 원소에게 쓴소리를 하였고 원소는 조조에게 장막을 제거할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조조는 친구 사이에 그럴 수 없다고 거부하였고 장막은 조조에게 고마움을 느꼈지만 원소의 막강한 세력을 생각할 때 조조가 언제까지나 자신을 지켜줄지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때 조조의 서주대학살을 지켜본 진궁이 장막에게 다가와 조조의 뒤통수를 칠 것을 제의하였습니다. 장막과 진궁의 반란은 순욱과 정욱의 힘으로 좌절되었고 배신감을 느낀 조조는 장막의 삼족을 멸하는 것으로 복수하였습니다. 그런 조조가 진궁의 모친을 불러들여 죽을 때까지 보살폈고, 진궁의 딸은 시집보내주었습니다. 그의 집안 식구들을 다 잘 돌보아 주면서 후대하였습니다. 진궁의 죽음 앞에서 뒤도 돌아보지 않던 처신에 감동받은 것인지 모릅니다.
조조는 장료를 중랑장에 임명하였고 장패는 도망쳐 숨었지만 찾아내 잡아들이고 장패에게 명하여 오돈, 윤례 손관 등 소위 태산적 수령들을 불러들이게 명했습니다. 그들이 장패를 따라 항복하자 이들을 후대하였습니다. 정복지에 새로이 성양군 이성군 창려군을 만들고 장패 등의 무리들을 새로 만든 군의 태수로 임명했습니다.
조조가 연주를 다스릴 때의 부하인 서흡과 모휘 등이 반란에 가담했는데 이들이 장패에게 망명했습니다. 조조가 유비에게 명하여 그들의 목을 바치라고 전했습니다. 장패는 차마 조조를 배신할 수는 없으나 그 명은 따를 수 없다는 의사를 표시하였습니다. 말을 들은 조조는 감탄하며 장패의 기개를 높이 평가하여 그의 청을 들어주면서 서흡과 모휘도 모두 용서하고 태수로 임명하였습니다.
조조는 하비성 포위작전을 하면서 처음 관우와 안면을 트게 되었습니다. 조조는 관우가 용력이 대단한 장수라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9척이나 되는 엄청난 체격에 항상 진중한 태도를 유지하는 관우에게 조조는 호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관우가 웬일인지 조조의 군막으로 찾아왔습니다. 주저주저하더니 한 가지 청탁을 했습니다. 여포의 수하에 진의록이라는 부하가 있는데 전령의 임무를 맡아서 성중에는 그의 아내만 남아있는데 성이 함락되면 그의 처를 취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조조는 허락했습니다.
성의 함락이 임박하자 관우는 다시 조조를 찾아와 조조의 약속에 대한 다짐을 받았습니다. 조조는 장난기가 발동하였습니다. 성이 함락되자 조조는 사람을 시켜 진의록의 처를 먼저 데려왔습니다. 엄청난 미인이었습니다. 조조는 그녀를 날름 자신의 장막에 거두었습니다. 이후로 관우는 조조를 보면 아는 체를 하지 않았습니다. 관우는 매우 불만스러운 듯 입을 굳게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훗날 조조는 관우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하여 적토마를 주고 한수정후의 작위를 주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