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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진리 Dec 29. 2020

엄마라는 이름에 대하여,
<산후조리원>리뷰

드라마 리뷰 | tvN <산후조리원> (2020)

* 지극히 주관적인, 오로지 제 시선에서만 바라본 리뷰입니다.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최연소 임원, 병원에서는 최고령 산모 현진이 재난 같은 출산과 조난급 산후조리원 적응기를 거치며 조리원 동기들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격정 출산 느와르


    산후조리원, 처음에는 제목을 보고 '오잉?' 했다. 드라마 제목이 너무 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드라마들은 은유법 한 가득 넣어서 제목을 짓는 와중에 꾸밈없이 정직한 제목. 드라마를 다 본 후에야 납득했다. 이 드라마는 '산후조리원'이라는 제목이 아니면 표현할 방도가 없다. 리얼한 제목처럼 드라마 내용 또한 산모의 일상과 고민을 과장 없이 담아냈다.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던 드라마다.






엄마가 된다는 것, 나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는 일


    주인공 오현진(엄지원)은 능력 있고 인정받는 캐릭터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열정이 뛰어나고, 그런 열정을 받쳐주는 능력도 있고, 여성리더 포럼에서 강의까지 했다. 동경의 대상이었던 현진의 일상은 출산을 하면서 와장창 깨져버린다. 외국 바이어를 설득하던 중 갑작스럽게 터진 양수도 당황스러운데, 현진이 겪은 출산의 과정은 책과 정반대였다. 바쁜 일 사이에서도 틈틈이 읽었던 출산 책은 이론에 불과할 뿐, 실전은 전혀 달랐다.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 들어온 현진은 무능력하다. 출산과 육아에 대해 공부할 시간에 일을 했으니 산후조리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정보가 없다. 항상 만렙으로만 살던 현진이 인생 처음으로 쪼랩이 된 순간, 지금까지 현진이 살아왔던 삶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하루하루가 흘러간다.


    '출산'이라는 변화와 함께 현진을 둘러싼 공간 또한 변한다. 회사-집, 회사-집이었던 현진의 배경이 산후조리원이라는 한정된 공간으로 좁혀진다. 함부로 출입할 수 없어 바깥세상과 통하지 않는 산후조리원에는 산모들만의 규칙이 존재한다. 그리고 현진은 그 규칙에 적응하느라 아등바등 살아간다. 현진의 상황이 180도 변했다는 건 현진의 스타일링에서도 나타난다. 출산 전에는 올백 머리에 새빨간 립스틱, 하이힐과 정장이 현진을 나타냈다면,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서 현진은 민낯에 풀어헤친 머리, 몸매 라인이 드러나지 않는 펑퍼짐한 원피스에 양말을 챙겨 신은 차림이다.






너무나도 현실적인 엄마, 오현진


    수많은 엄마들 속에서 오현진은 독보적인 엄마다. 이제 막 엄마가 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볼 법한 생각과 고민들로 공감을 이끌어내면서 새로운 '엄마' 캐릭터를 보여줬다. 과거의 미디어에서 '엄마'는 기본적으로 모성애를 장착하고,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나'쯤이야 희생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러나 현진은 그렇지 않다. 갓 태어난 내 아이를 보고도 '못생겼다'고 생각하고,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해 고민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아이를 두고 현진은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희생하지 않는다. 자신의 꿈과 아이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으려고 끊임없이 고민한다. 커리어 우먼이었던 현진은 복직과 육아 사이에서 내적으로 갈등을 한다. 계속 일을 하면서 나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은 욕망도 있지만, 그와 동시에 내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욕심도 있다. '딱풀이 엄마'로서의 나를 선택해야 하는가, '오현진'으로서의 나를 선택해야 하는가. 현진은 드라마 내내 고민을 한다.






'엄마'를 둘러싼 다양한 입장들


    산후조리원에 있는 엄마들은 저마다의 특징이 뚜렷하다. 이를 통해 엄마와 출산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보여준다. 엄마들이 갖고 있는 명확한 욕망은 다양한 시각을 대변하여 시청자에게 설명해준다. 앞서 언급했듯, 현진은 '일하는 나'와 '엄마로서의 나' 사이에서 고민하는 엄마들을 대변한다. 조은정(사랑이 엄마, 박하선)은 사회가 요구하는 '엄마'라는 기준에 부합하고 싶어 하고, 그 기준을 넘기 위해 노력하는 캐릭터다. 완모, 쌍둥이 자연출산, 정성 들인 태교, 베이비 샤워 등 '엄마로서의 나'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이다. 이루다(요미 엄마, 최리)는 은정과 정반대 지점에 놓인 인물이다. 사회가 맞춰놓은 엄마라는 기준을 완전히 때려 부수고, '엄마로서의 나'보다는 '이루다로서의 나'가 더욱 중요하다. 완모? 그런 거 없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기 위해 분유를 준다. 술? 내가 마시고 싶으면 마시는 거다. 머리 피스? 트렌드는 따라가야 한다. 은정과 전혀 다른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사건건 은정과 대립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서 '엄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보여준다.





웃음을 유발하는 비유적 연출


    <산후조리원>에서는 유독 비유적인 연출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사회가 요구하는 모성애와 엄마의 자격을 설명할 때는 영화 <설국열차>에 비유한다.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에 잘 부합하는 은정은 1등석 칸에서 우아하게 차를 마시고, 그렇지 않은 현진은 꼬리칸에서 단백질 바를 먹는다. 대사로 장황하게 구구절절 설명했더라면 자칫 지루했을 부분이 적절한 비유와 오마주를 만나 시선을 잡아끌고 웃음까지 유발했다. 모유 수유의 과정을 설명할 때도 은정이 편안하게 아이를 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은정의 모습이 요람으로 변신하는 연출을 사용했다. 대사보다는 시각적인 연출을 통해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이 시트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엄마의 고민과 고통을 다루기 때문에 무거운 분위기로 흘러갈 뻔한 드라마를 웃으면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한 데에는 비유적 연출이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엄마'로 성장하기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 부딪히고 고민하면서 엄마로 성장하는 거지. <산후조리원>은 그 과정을 너무나도 잘 보여준다. 산후조리원에 있던 모든 엄마들이 입소 전과 후가 명확히 달라졌다. 일에 있어서 능력은 뛰어났지만 엄마로서의 준비가 덜 되었던 현진은 산후조리원에서 지내면서 '엄마'와 '나' 사이에서 어느 것을 택할지 자신만의 타협점을 찾아낸다. '엄마로서의 나'만 중요시했던 은정은 다양한 엄마들과 어울리면서 은정 스스로를 더욱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됐다. 오로지 아이들 위주로 돌아가던 은정의 하루는 아마도 퇴소 후에 조금씩 나를 위한 하루로 변해가지 않을까. 습관성 유산으로 아이를 먼저 떠나보내며 아픔을 갖고 있던 윤지(쑥쑥이 엄마, 임화영)는 현진에게 몹쓸 짓을 했지만, 결국 아이를 잘 보내준다. 여러 사건들을 겪으면서 점점 성장해가고 달라지는 캐릭터들의 모습을 보면서 점점 빠져들고 공감하면서 봤다.




  



    8화라는 짧은 분량에 무겁지 않은 내용의 드라마였다. 엄마와 출산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졌지만, 드라마 자체로만 보면 유머스러운 장면도 있고 통통 튀는 톤이었다. 산후조리원이라는 특수한 장소를 공간적 배경으로 가져온 게 참신했다. 무엇보다도 출산의 과정을 굴욕기, 짐승기 등 현실적으로 그려낸 게 인상 깊었다. 출산 경험이 있는 시청자의 공감을 잡을 수 있는 포인트가 아니었을까. 출산 경험이 없는 시청자라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재미로 보지 않았을까. 무엇보다도 나는 이 드라마가 '엄마'라는 존재를 기존의 미디어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해서 보여준 것이 너무 좋았다. 처음부터 엄마가 아니라 엄마로 성장해가는 사람들이 모인 곳, <산후조리원>이다.



tvN <산후조리원>
2020.11.02~2020.11.24 / 8부작
최고 시청률 4.2%
제작사 래몽래인 / 연출 박수원 / 극본 김지수, 최윤희, 윤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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