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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진리 Dec 30. 2020

조선을 집어삼킨 좀비 떼,
<킹덤> 리뷰

드라마 리뷰 | Netflix <킹덤> (2019, 2020)

* 지극히 주관적인, 오로지 제 시선에서만 바라본 리뷰입니다.

* 본 리뷰는 킹덤 1, 2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킹덤 1>
죽었던 왕이 되살아나자 반역자로 몰린 왕세자가 향한 조선의 끝, 그곳에서 굶주림 끝에 괴물이 되어버린 이들의 비밀을 파헤치며 시작되는 미스터리 스릴러
<킹덤 2>
죽은 자들이 살아나 생지옥이 된 위기의 조선, 왕권을 탐하는 조씨 일가의 탐욕과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린 왕세자 창의 피의 사투를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


    상상해봐라, 조선에 좀비라니. 어울리지 않는 두 소재가 만나 전 세계를 강타하는 대작을 만들어냈다. 바로 김은희 작가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이다.


    사실 나는 엄청난 겁쟁이라 중학생 때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공포영화를 본 이후로는 호러나 스릴러 장르를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를 본 이유는 오직 '김은희 작가' 때문이다. <시그널> 대본집까지 사서 읽을 정도로 김은희 작가가 그려낸 캐릭터와 전개 방식을 좋아하는 팬으로서 좀비쯤이야! 결과적으로는 용기 내서 보기 정말 정말 잘했다. 역시 이번에도 김은희 작가의 전개 방식은 최고였다.






예상치 못한 전개, 대범한 드라마


    좀비가 조선에 출현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대범한 설정이다. 현대 배경에서 좀비가 나타난다고 해봤자 (물론 무섭겠지만) 자동차라는 도망가기 좋은 수단이 있고, 어느 나라는 개인이 총도 소지하고, 전투기나 탱크 등 좀비를 떼거지로 쓸어버릴 수 있는 무기가 있지만, 조선은? 가마와 말을 타고 무서운 속도로 달려드는 좀비 떼를 피해 도망갈 수 있을까? 심지어 짚신을 신고 울퉁불퉁한 산길을 뛰다간 좀비에게 물리기도 전에 발이 먼저 망가질 것이다. 득실득실한 좀비 떼 사이에서 무기라곤 한 번에 하나만 죽일 수 있는 칼과 활뿐인 주인공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좀비가 조선이라는 시대 배경을 만나 더욱 강력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은희 작가는 그가 갖고 있는 역량을 십분 발휘하여 이 말도 안 되는 위기를 해결해 나간다! 그것도 아주 대범하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우리는 드라마를 보면서 나름대로 추측을 한다. 음, 사망플래그가 있는 걸로 봐서 쟤는 곧 죽겠군. 음, 쟤는 아주 아주 중요한 조력자야! 그런데 김은희 작가는 우리의 추측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생각지도 못하게 주요 인물들을 죽여버린다. 예를 들어 조선을 보살피고 지시를 내려야 할 왕이 지능이 없는 좀비가 되고, 왕세자 이창(주지훈)의 뒤를 든든하게 봐주던 안현 대감(허준호)이 조학주(류승룡) 손에 죽어버린다. 아버지 조학주를 죽이고 야망의 끝을 보여줬던 중전 계비 조 씨(김혜준)는 그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폐쇄된 궁 안에 좀비를 푼다.


    나 같은 소심한 시청자는 '어..? 얘네가 이렇게 되면 이제 여기서 어떻게 전개하려고 그러지..?' 하겠지만 그릇이 크고 대범한 김은희 작가는 이 죽음을 발판 삼아 큰 그림을 그린다. 이창은 좀비가 된 왕이자 아버지를 칼로 베면서 조선의 부정부패를 없애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던 안현 대감은 의녀 서비(배두나)와 미리 작전을 짜 생사초를 먹고 좀비가 되어 조학주의 목을 물어뜯는다. 중전은 좀비가 문을 부수고 담을 넘어 궁으로 쳐들어오는데도 왕좌에 꿋꿋이 앉아있다가 좀비가 되어 이창을 공격한다. 지나친 야망이 불러온 참사를 몸소 보여준다. 정말 긴장감을 놓고 볼 수 없는 드라마다.






딜레마 위기에서 나오는 심장 뛰는 긴장감


    <킹덤>의 전개 중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을 고르라면 앞서 언급했던 대범함딜레마 위기를 꼽을 것이다. 이상한 소리를 내며 갑자기 툭툭 튀어나오는 좀비도 무서워 죽겠는데, 김은희 작가는 계속해서 주요 인물들을 딜레마 위기에 빠뜨려 시청자를 미치게 한다. 이렇게 할 수도, 그렇다고 저렇게 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가로막힌 주인공은 과연 위기를 어떻게 빠져나갈까?


    <킹덤 1>에서 이창은 동래로 향한다. 왕에 대한 수상한 소문이 무성한데 아들인 본인조차 아버지를 뵙지 못하게 가로막히는 상황이 이상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왕이 있는 강녕전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모든 일지가 적혀있어야 하는 '약방 일기'는 백지였다. 이창은 아버지께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기 위해 왕을 마지막으로 알현했다는 이승희 의원을 만나러 동래에 있는 지율헌으로 간다. 그러나 지율헌은 이미 좀비에게 먹힌 상황. 이대로 이창이 지율헌에 간다면 이창 또한 위험하다. 그렇다고 한양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 이창을 죽이기 위해 조학주의 신하들이 이창의 뒤를 쫓고 있기 때문. 지율헌으로  수도, 한양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이창은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진다.


    <킹덤 2>에서 이창은 또 다른 딜레마에 빠진다. (이창 불쌍해..) 조학주의 계략으로 이창은 좀비가 된 왕과 단 둘이 궁에 갇히고 만다. 그르릉 소리를 내며 자신을 물어뜯기 위해 달려드는 왕. 이창이 살기 위해서는 왕을 죽이는 방법밖에는 없다. 수많은 조학주의 신하들이 궁 문을 굳건히 막고 서 있어 궁 밖으로는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효를 중시하는 유교국가에서 아버지, 그것도 왕을 죽인다는 것은 반역이나 마찬가지. 이 경우, 이창은 반역자로 몰려 왕세자의 직위를 박탈당할 것이다. 왕세자 자리에 손자를 앉히기 위해 조학주는 이창이 왕을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아버지를 죽이고 목숨을 건질 것이냐, 좀비에게 물리되 조학주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렇듯 딜레마 위기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주면서도, 끊임없이 궁금증을 유발한다. 도대체 주인공이 이 위기를 어떻게 빠져나갈지, 뭘 선택해도 망한 결과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그 후엔 어떻게 될지. 이 과정에서 주인공이 자신만의 특색을 살린 참신한 방법으로 위기를 빠져나간다면, 시청자는 그 캐릭터 자체에 매료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창은 어떻게 이 말도 안 되는 위기를 빠져나갔을까? 궁금하면 킹덤을 보자.






한국의 색을 입힌 'K-좀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좀비에 조선만의 색이 잘 녹아들어 'K-좀비'를 만들어냈다. <킹덤>에서는 좀비를 '역병'으로 인식하고, 좀비를 '역병 환자'라고 부른다. 좀비를 단순한 괴물이 아닌 치료할 수 있는 병으로 본 것이다. 의료 시설이 열악해 역병이 자주 돌았던 조선의 상황을 생각하면 좀비를 괴물보다는 역병으로 인식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청정지역이던 동래에 좀비가 퍼지게 된 이유도 조선의 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킹덤> 속 조선은 권력싸움이 치열하고 그로 인한 부정부패가 만연하며, 백성들은 궁핍에 고통받고 있는 곳이다. 기근으로 배를 곪던 지율헌 환자들. 영신(김성규)은 그들을 살리기 위해 시체를 물에 고아 국을 끓인다. 그러나 그 시체는 역병에 감염된 시체였고, 국을 먹은 환자들이 좀비로 변한다. 기근으로 인한 좀비 감염이라니, 정말 그럴 법한 설정이 아닌가.


    현대 좀비물에서 좀비는 보통 약물이나 화학 실험의 오류로 인해 발생한다. 그렇지만 이 설정을 <킹덤>으로 가져왔다면 매우 부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조선에서 화학 실험을? 고글 대신 짚을 엮어 눈을 보호하고, 비커 대신 자기를 쓰는 건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킹덤>에서는 좀비의 발생 원인을 약초에서 찾는다. 죽은 사람을 살린다는 '생사초'가 바로 그 원인이다. 주로 침과 약초로 처방을 내렸다는 당시 조선 의학을 고려하여, 좀비 또한 생사초에 붙은 기생충 때문에 발생했다는 것이다.


    김은희 작가의 상상력으로 다시 태어난 K-좀비는 참 매력적인 세계관이다. (조선 좀비니까 C-좀비인가?)






뚜렷한 주제의식


    조선 좀비라는 새로운 세계관에, 이창과 조학주 간의 권력 싸움에, 좀비 떼로부터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 생존 전투에. 다뤄야 할 플롯도 많은데, 여기에 김은희 작가는 명확한 주제의식까지 던진다.


    <킹덤>은 좀비라는 소재를 통해 '정작 썩은 것은 좀비가 아니라 권력을 향한 인간의 탐욕'이라는 주제를 보여준다. 좀비가 발병하게 된 표면적인 원인은 생사초지만, 그 내면에는 생사초를 이용해 조선의 권력을 손에 쥐려는 조학주의 썩은 욕망이 있다.


    왕이 병에 걸려 죽자, 조학주는 왕의 죽음을 은폐하고 죽은 사람을 되살린다는 생사초를 구해온다. 조학주의 딸이자 중전인 계비 조 씨가 임신한 상태이기에 아이를 낳을 때까지만 왕의 목숨을 연명시킨다면 조학주의 손자가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조학주는 조선을 손에 쥐게 된다. 그렇게 좀비가 된 왕, 그리고 왕을 간병하다가 물려 좀비가 된 의원, 그 의원의 시체를 끓여먹어 조선 전체에 창궐하게 된 역병. 권력을 향한 조학주의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욕망으로부터 이 모든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킹덤>을 보고 나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썩은 냄새를 풍기는 것은 좀비의 시체인가, 인간성을 상실한 인간의 탐욕인가?






     <킹덤 1>이 다음 시즌을 위한 초석 같다는 평도 있었다. 나 또한 킹덤을 너무 사랑하는 김은희 작가의 팬이지만, 이 평에 공감하는 바이다.


    드라마 초반에 드러나는 주인공의 욕망이나 적대자와의 관계는 이야기가 막을 내리면서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 이창의 경우, 드라마 초반부터 왕의 자리와 권력을 두고 조학주와 대립한다. 그렇기에 <킹덤 1>에서는 조학주가 이기든 이창이 이기든 이 대립관계에 마침표를 찍었어야 한다. 그러나 <킹덤 1>은 조학주와 이창이 제대로 맞붙기도 전에 끝난다. 왕의 자리도 여전히 좀비가 지키고 있다. 우리나라 드라마의 호흡이 보통 12부작에서 16부작임을 감안할 때 6회의 분량을 가진 <킹덤 1>은 12부작 드라마를 반으로 똑 떼어내어 뭔가 시작하려다 만 느낌이 들기는 한다.


    그렇지만 영상의 높은 퀄리티와 엄청난 제작비를 고려했을 때, 시청자의 반응을 살펴가며 다음 시즌을 제작하는 편이 맞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지금은 <킹덤 2>까지 모두 공개되었으니 빈지워칭을 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다음 시즌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줄 외전, <킹덤: 아신전>에서는 전지현 배우가 등장해 북방 만주와 요동으로 공간을 확장한다고 하니 벌써부터 너무 기대된다.






<킹덤 1>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2019.01.15 / 6부작
연출 김성훈 / 극본 김은희 / 제작사 에이스토리
원작 시리즈COMIX 웹툰 <신의 나라: 버닝헬> (작가 김은희)
<킹덤 2>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2020.03.13 / 6부작
연출 김성훈, 박인제 / 극본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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