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엔터테인먼트를 주축으로 형성된 케이팝 씬에서 BTS가 어떻게 명실상부 케이팝을 대표하는 대명사가 됐는지. 그리고 케이팝씬에서는 BTS가 왜 배척당하는지, 케이팝과 BTS를 왜 분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방탄소년단이 미국의 조명을 받기 시작하면서 케이팝을 담고 있는 음악 산업을 넘어 경제·사회 분야에서까지 방탄소년단이 어떻게 이런 성공을 거머쥐었는지를 분석하는 기사가 몇 년에 걸쳐 쏟아져 나왔다. 각계 분야에서 본인들이 업계에서 직접 보고 겪으며 쌓아온 데이터를 통해 이리저리 유추해내고 그들의 유례없는 성공에 대해 지속적으로 탐구해왔지만 그 누구도 명확히 설명해내지 못했다. 그 이유는 간단히 분석자들이 ‘케이팝 팬덤’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기 때문이라고, 나는 단언한다.
BTS의 미국 성공에 대한 특성을 팬덤의 관점에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일단 케이팝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성장했고 어떤 특성을 띠며 구축되어 왔는지를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1. 케이팝의 탄생
케이팝이라는 명칭 자체는 2000년대 초, 중국과 일본을 필두로 해외 시장이 개척되어 나가던 즈음에 ‘한류’라는 이름을 달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한류가 일어나기 전, 한국에 아이돌이라는 개념을 꺼내온 것은 H.O.T.를 기획한 이수만이었다. 이름부터 십대들의 우상이 되겠다는 포부를 담으며 시작한 H.O.T.는 아이돌의 시조가 되어 현재 아이돌 팬덤문화의 대다수를 만들어냈다. (‘키워주세요’라는 아이돌만의 시그니처 인사법까지도) 당시 한국에는 조용필과 서태지를 거치며 거대한 팬덤에 대한 인식은 있었지만 팬클럽이 조직적으로 꾸려진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고, 팬들이 무대를 보고 듣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주인공으로 새로운 창작물을 생산해내면서 적극적으로 팬 활동을 펼쳐나간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H.O.T.가 서태지 이후 한국 대중가요의 패러다임에 틈을 만들어내자 이수만의 필적으로 대성(현재의 DSP Media)에서 젝스키스와 핑클이 등장했고, 그 뒤를 이어 가수 활동을 하던 박진영이 god를 히트시키면서 본격적으로 아이돌 그룹이 하나의 시장(산업)으로 자리잡았다.
아이돌이라는 개념을 처음 꺼내온 만큼 현재의 케이팝은 사실상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원툴에서부터 시작해 성장한 구조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SM에서 매니지먼트를 하던 간부들이 자기 회사를 차리면서 하나둘씩 성장해 나간게 2010년대 케이팝씬이고 그게 다시 또 성공하고 순환하면서 현재의 탄탄한 케이팝 산업을 구축했다. 물론 현재 산업에 종사하는 간부 모두가 SM으로부터 출발한 것은 아니다. 당장 하이브의 의장인 방시혁만도 SM이 아니라 JYP로부터 출발했으니까. 그러나 업계 선두주자로서 아이돌 산업에서 SM이 가지는 의미는 상당하다. 현재 아이돌을 좋아하는 많은 수의 팬들(그게 어느 회사의 아티스트이든 간에) 중 덕질 이력에 SM 소속 가수가 없는 팬은 아마도 소수일 것이다.
2. 아이돌의 세대 구분과 패러다임의 변화
지금은 아이돌의 수명도 길어졌고, 선배 그룹과 후배 그룹이 바통터치하며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명맥이 이어지고 있어 세대 구분이 사실상 무의미하지만, 동방신기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뚜렷하게 세대가 나뉘어 있었다. H.O.T.를 시작으로 90년대를 풍미하던 아이돌 그룹들이 하나 둘 해체 수순을 밟아가자 단단한 팬덤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 할 것만 같던 아이돌 시장에 결국 침체기가 찾아왔다. 그렇게 아이돌 1세대가 막을 내렸다.
2004년, ‘동방에 신이 일어난다’는 뜻을 가지고 연습생 그룹에서 에이스들만을 모아 데뷔한 동방신기가 아이돌 시장을 다시금 부흥시키며 이전보다 더 크게 히트쳤다. 네 글자 이름은 밈이 되고 동시에 유행이 되었다. 첫눈에 괴상망측하고 우스꽝스럽기만 한 이름들을 진지하게 밀어붙이자 사람들은 차츰 이들의 세계를 받아들였다. 동방신기가 죽은 줄 알았던 아이돌 산업을 소생시키자 전문가들은 이 현상을 연구하며 각자의 해석을 내놓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SM의 (다소 자의식이 충만한) 자기 보고서였다. SM은 H.O.T.부터 프로듀서를 담당하며 사회비판적인 가사와 강렬한 전자음을 통합하여 장르를 넘나드는 유영진의 곡 세계를 ‘SMP’라는 자신들만의 고유 장르로 정체화하면서 동방신기의 성공을 해석하는 한 면으로 내놓았다.
동방신기와 SMP는 이때까지 쌓아온 SM의 정수를 들이밀었고, 동방신기의 대항마로는 YG의 빅뱅이 혜성같이 등장했다. 동방신기를 필두로 다시 기세를 얻은 아이돌 시장은 보이그룹에서는 SM(동방신기)과 YG(빅뱅)가, 걸그룹에서는 SM(소녀시대)과 JYP(원더걸스)가 맞붙으며 아이돌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했다. 아이돌에 세대가 구분지어졌고, 2세대가 포문을 열었다.
그러나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이제 드디어 안정을 찾나 했던 아이돌 시장이 다시 삐걱였다. 가장 거대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던 동방신기가 소속사인 SM을 상대로 계약의 무효를 주장하며 소송전을 걸어온 것이다.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해체를 발표하고 그룹이 종료됐던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팬들은 더욱 크게 충격을 받았고, 한동안 보이 그룹은 다시 침체기에 빠져버렸다.
이 침체기에 스트라이크 한방을 날리며 깨버린 그룹이 2012년에 데뷔했다. 외계 행성에서 온 초능력을 가진 12소년이라는 컨셉으로 기획됐던 EXO가 그 주인공이다. 말했다시피 보이 그룹은 침체기였기 때문에 EXO는 데뷔부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다. 멤버가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은 다시 또 사람들의 조소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2013년, 그룹은 물론이요 기획자부터 작사작곡가까지 한번에 스타덤에 올리고 아이돌 3세대의 포문을 여는 곡이 발표됐다. <으르렁>이 흩어져 있던 아이돌 팬들을 한데 통합한 것이다. <으르렁>은 전작 <늑대와 미녀>의 후속 앨범인 리패키지의 타이틀곡이었다. 이 앨범에서는 아이돌 그룹이라면 응당 거쳐본 스쿨룩을 표방하였으나 디테일에서 달랐다. 종전의 반항적인 캐릭터와 헐렁하고 모든 교칙을 위반한 듯한 교복을 몸에 맞게 줄이고 영국의 댄디한 프레피룩이 더해져 멤버 개인의 특성에 맞게 커스터마이징 되면서 ‘이웃집 초능력 (미)소년’으로 팬들의 마음에 파고들었다.
보이는가, 아이돌의 세대 구분이. 아이돌이라는 개념의 도입, 아이돌 시장의 부흥과 침체를 촉발한 것 모두 SM(의 소속 그룹)이었다.
방탄소년단이 나오기 전까지 ‘아이돌 시장’이라는 패러다임 자체는 SM이 이끌고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다.
여기서 방탄소년단과 케이팝의 괴리가 발발한다.
3. 케이팝의 팬덤과 아미
케이팝 팬들은 방탄소년단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역으로 방탄소년단의 팬들은 케이팝에 관심이 없다.
케이팝과 방탄소년단이 분리되는 가장 첫 번째 이유이자 결과이다.
그 시작점에는 엑소가 있다. 동방신기가 시끄럽게 그룹을 깨고 재편되는 동안 아이돌 시장이 다시 한 번 침체기를 맞았고, 몇 년 뒤 아이돌 시장을 지금처럼 일으킨 그룹이 바로 엑소였다. 사랑에 빠진 소년의 마음을 의성어로 위트있게 표현한 <으르렁>은 그 시절 아이돌 팬들을 하나로 모으는데 큰 역할을 했다. (나 역시 동방신기 이후로 두 번 다시 아이돌을 좋아하지 않겠노라 다짐했지만 <으르렁>으로 다시 케이팝에 편입되면서 영영 떠나지 못하게 되었다.)
케이팝과 방탄소년단의 괴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시기의 팬덤 양상을 주목해야 한다. 이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낸 팬들은 SM과 엑소에 친밀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반의, 학교의 모든 친구들이 ‘으르렁’대고 있었으니까. 내가 그들의 팬이 아니더라도 나와 가깝게 친교를 맺는 친구들 중 한 사람은 반드시 엑소를 좋아하고 있었으니까. 이 환경이 곧 케이팝이 방탄소년단을 배척하는 원인을 제공한다.
처음 방탄소년단이 케이팝 씬에서 인지도를 차츰 쌓아가던 시기에는 방탄소년단 역시 케이팝 팬들(정확히는 그 명성을 유지해야만 하는 엑소의 팬들)에게 그다지 위협이 되지 않았고, 무대를 잘하는 것으로 알음알음 소문이 나면서 시장 내의 입지를 확보하고 있었다. 2014년까지는 모두 하하호호 평화롭게 서로의 덕질을 지향했지만 2015년 화양연화가 발표되자 분위기가 급속도로 험악해졌다.
2014년에 발표된 <상남자>의 스쿨룩(교복)이 엑소의 <으르렁>을 “표절”했다며 시비가 걸리고, 음반 성적이 좋을 리 없다며 느닷없이 루머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과 달리 2023년 현재까지도 방탄소년단의 예전 앨범은 꾸준히 판매량이 상승하고 있다.) 런웨이에 올랐던 컬렉션 의상을 입은 것도 “표절”이라며 욕을 먹었고, 콘서트가 끝나면 트위터에 찾아와 팬들과 소통하고 검색해본다는 점을 악용해 콘서트 종료 시간에 맞춰 실시간 트렌드에 온갖 비하/멸시/조롱의 단어들을 올려놓았다. 팬들은 콘서트의 여운을 즐길 새도 없이 속상함과 서러움에 울면서 검색어 정화를 해야만 했다. 유료로 결제해야 볼 수 있는 자체 컨텐츠에서 대상을 받고 싶다는 바람을 기도했다가 니네가 무슨 대상이냐며 또 죽어라 욕을 먹어야 했다. 연말 무대에서 멤버가 전공했던 현대무용을 선보였다가 그것마저 또 따라했다며 비난(좋게 말해 비난이지 비아냥과 그들의 열등감을 온갖 욕으로 치장한 얼토당토 않은 말들이었다.)을 들었다. 방탄소년단은 케이팝 씬에서 일거수일투족을 넘어 숨을 쉬고 세상에 존재하는 그 자체로 증오의 대상이 되어 그들의 알 수 없는 분풀이를 고스란히 받아냈다.
이 때문에 팬들과 가수 사이의 결속력은 더욱 강하게 유지됐다. 팬들은 외부의 공격과 늘 맞서 싸우는 상태였고, 그룹은 온갖 비난과 악플을 삼키며 묵묵히 스케줄을 수행했다. 방탄소년단에게 호의를 가진 이들만이 모여 마음 편히 웃고 즐길 수 있는 콘서트장은 가수에게도 팬에게도 비로소 숨을 쉴 수 있는 방공호였다.
국내 케이팝 씬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동안 해외 팬덤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한 사람당 한 그룹에만 집중하는 코어 팬의 규모로 구성된 국내에 비해 해외 팬덤은 케이팝을 하나의 덩어리로 좋아하며 국내에서는 라이트(혹은 일명 ‘잡덕’)로 불리는 팬의 규모가 비교적 크다. 그러나 해외에서도 아미들은 BTS 한 그룹만 좋아하는 팬이 많았고, 이들은 해외 케이팝 씬에서 ‘BTS POP’이라며 조롱당했다.
방탄소년단은 이렇게 케이팝에서 밀려났다. 국내에서도 여전히 방탄소년단은 마음대로 조롱하고 멸시해도 되는 불가촉천민 중의 천민이다. 마치 케이팝 내의 미니 운동회처럼 누가누가 더 저열하게 방탄소년단을 멸시하나의 게임을 하듯 케이팝 팬들은 온갖 멸칭을 만들어 조롱의 단어를 뱉어냈다. 심지어 이 게임은 현재 진행형이다. 빌보드에서 연일 좋은 성적을 내고, 그래미 시상식의 무대를 오르고,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BTS Invasion‘이라고 소개를 해도 “내 주변엔 방탄소년단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데 도대체 누가 좋아하는거냐”, “좋은지 모르겠다”는 말로 매번 배제 당한다. 거꾸로 내 주변엔 OOO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데 팬이 있어? 라거나 걔네 좋은지 모르겠던데 라는 말을 나 역시 되돌려 줄 수 있다는걸 왜 모를까. 또한, 주변에 방탄소년단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 이유는 당연히 그들이 방탄소년단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그룹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이게 돼있는데,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같은 원리로 내 주변에도 방탄소년단 좋아하는 사람들 밖에 없다.)
아무튼 방탄소년단을 미국 시장에 불러온 것도 해외 아미다. ‘BTS POP’이라고 조롱받던 해외의 아미들은 가수를 내가 사는 땅으로 불러올 생각을 해냈다. 한국의 시스템이 아니라 미국의 시스템에 맞는 활동을 펼쳐 기어이 차트에 진입시키면서 시장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비로소 방탄소년단이 시장에서 힘을 갖춰가자 팬들도 더욱 적극적으로 자기를 드러냈다. 유명세가 유명세를 불러모으듯 방탄소년단의 성장에 가속이 붙었고, 현재의 BTS가 완성됐다.
4. 마치며
방탄소년단의 유례없는 성공에는 다양한 원인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지만, 슬프게도 내부 결속력이 다져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이 트리거가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무엇보다 이 지난하고 괴로웠던 과정을 함께 견디며 올곧게 성장해준 멤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작년 방탄 회식에서 개인 활동에 집중할 것을 공표한 것을 보고 BTS가 케이팝의 영역을 넘어섰다고 작성한 바 있다.
BTS는 케이팝이 일궈낸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분명히 BTS는 케이팝에서 독립적이다. 케이팝 씬의 팬덤 성격과 아미의 성격도 분명히 다르고, 이들은 이제 더이상 섞이지 않는다. 2015-16년에 형성된 케이팝 씬의 BTS를 향한 적대적인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져 케이팝 씬의 불순물이 된 BTS를 케이팝 팬들은 그들의 바운더리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리고 케이팝이 걷는 노선과 다른 고민을 하는 BTS 역시 케이팝 씬과 분리해서 봐야할 것임이 맞을 것이다.
다만 미국을 위시로 한 세계 시장에서는 변방의 서브 컬쳐 하위 장르인 이들을 분리해야 할 이유가 없으므로 케이팝이라는 카테고리로 한데 묶는 것이 당연하겠다. 물론 한국에서도 케이팝은 결국 서브 컬쳐이기 때문에 BTS를 구태여 분리하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케이팝과 BTS는 분명히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이다.
◈◈◈
앞에서 이미 기술했듯 케이팝 팬덤의 내부는 그야말로 전쟁이다. H.O.T.와 젝키 때부터 유구하게 이어져 온 팬덤 간 다툼은 과격한 몸싸움을 일삼았던 야만의 시대를 거쳐 전장이 사이버로 옮겨오면서 점점 지능적으로 변했고 교묘해졌다. 나역시 2015-16년에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면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지금도 풀어지지 않은 응어리를 안고 살고 있다. 그때 생긴 억하 심정은 지금도 욱하고 건드려지는 때가 생긴다.
그러던 내가 이 싸움을 이해하게 되는데 큰 도움을 받은건 올해 초에 읽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였다.
호모 사피엔스는 결코 강한 종족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살아남아 인류를 이루었다.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바로 이 종족이 다른 종족에 비해 친절하고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배려와 친절한 마음이 동시에 우리 종족을 위협할 수 있는 외부 종족에는 해치는데 거침이 없어진다고 한다.
“우리가 더 강렬하게 사랑하게 된 이들이 위협을 받을 때 사람은 더 큰 폭력성을 드러낼 수 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180p.)
케이팝 팬덤은 가수와 나의 강한 동일시가 이루어지고 내가 사랑하는 그룹 외의 집단을 향해 비인간화가 이루어지며 그들을 향해 죄책감없는 폭력성이 발휘된다.
케이팝 팬덤의 이러한 특수한 성격이 방탄소년단, BTS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어쩌면 케이팝 산업에서는 이를 이미 알고, 교묘히 적용해 팬덤을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연 BTS의 후발 주자도 같은 환경에서 나올까? 하지만 같은 상처는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