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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나 Feb 18. 2021

봉사가 주는 즐거움

직장 생활 3년 차에 접어들었을 무렵 나는 많이 지쳐있었다.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모르는 사람과 몸만 스쳐도 얼굴을 붉히고 짜증이 났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를 위한 무언가 필요한 시점이었고, 우연히 보게 된 나눔 소리 합창단 1기 모집 광고를 보고 덜컥 지원을 해버렸다. 2014년 창립 1기 멤버로 입단했고, 입단 시험은 없었다. 노래로 주변의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는 단체였다.


봉사 단체 같지 않게 연습 장소는 홍대의 뒷골목 지하에 있는 "라이브 앤 라우드"라는 클럽이었다.  매캐한 냄새나는 지하계단을 내려가며 여기가 맞나 한참을 고민했다. 처음에는 무슨 사기 단체에 속아서 온건가 싶었다. 혼자 너무 일찍 와서 문도 잠겨있고 집에 돌아가야 하나 망설이던 차에 인기척이 들렸다. 맘 좋아 보이는 클럽 사장님이 오셔서 문을 열어 주셨고, 그분이 합창단의 단장님이라고 하셨다. 락 스피릿이 느껴지는 겉모습과 다르게 친근하고 재미있는 분이셨다. 합창단을 위해 본인의 클럽도 무료로 대관해 주셨다.



처음은 늘 그렇듯 어색했지만, 다양한 직업군과 나이에도 불구하고 봉사라는 목적으로 모인 우리는 금세 가까워졌다. 간단한 테스트로 파트를 정하고 악보를 받았다. 첫 악보는 <나성에 가면>이라는 곡이었고, 나는 소프라노 파트를 맡았다. 매주 한번 평일 저녁 모여 연습을 했다. 회비를 모아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4개의 파트가 주별로 간단한 저녁거리를 사 왔고, 연습을 하고 집에 가면 11시가 훌쩍 넘는 시간이었다. 



함께 노래하는 사람들에게 받는 에너지가 너무 좋았다. 대부분 직장인이었는대도 불구하고 피곤한 내색 없이 같이 모여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참 따듯했다. 그렇게 6주 뒤, 우리는 작은 경로당에서 첫 공연을 했다.

율동도 안무도 제각각이었던 무대였지만, 즐거워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며 행복했다. 



함께한 국제 나눔 연대에서 준비해온 음식을 나누어 드리고 한 분, 한 분 이야기도 들어드렸다. 내가 만났던 할머니는 아들 둘이 있는데 한 번도 자길 보러 오지 않는다며 속상하다는 얘기를 계속하셨다. 양로원에 계신 대부분의 노인분들이 자식도 남편도 의지 할 곳 없는 분들이셨다. 힘든 얘기를 들어 드리는 것 외에 내가 해 드릴수 있는 일이 없어 안타까웠지만 고맙다고 손을 꼭 잡아주시는 할머니들에게 오히려 내가 더 위로받는 시간이었다.


  

첫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우리는 몇 번의 공연과 봉사를 더 진행했다. 사람들과도 정이 많이 들었다. 외워야 하는 곡은 점점 많아지고, 공연에 필요한 의상과 소품, 팜플렛 작업까지 담당하며 정말 내 영혼을 다 갈아 넣어서 활동했던 것 같다. 마지막 공연을 준비할 때는 동대문에서 오간자 천을 직접 때와서 일주일 동안 꼴딱 밤을 새우며 머플러를 만들고 회사에 출근했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순전히 내가 좋아서였다. 같이 노래하는 사람들이 기뻐 할 것을 생각하면 피곤하기보다 오히려 그 시간이  행복하고 즐거웠다. 



나눔 소리 합창단은 이듬해 1월 동대문구에 비영리단체로 등록을 하고 그 달 말에 1기 마지막 공연을 했다. 그동안 해왔던 공연들과 달리 규모도 있고 모금액을 기부하는 목적도 있었기 때문에 유달리 긴장되고 심혈을 기울여 준비해야 했다. 가볍게 한두 곡 정도만 불렀던 다른 공연과는 다르게 돈을 주고 티켓을 산 분들 앞에서 한 시간을 꽉 채워 공연을 해야 했다. 불러야 하는 곡은 많고 연습시간은 짧았다. 그러다 보니 마지막 공연을 준비하면서 몇몇은 떠나가기도 했다. 그래도 끝까지 남아 함께 해준 단원들과 열심히 준비했고 드디어 우리는 마지막 공연을 했다.



많은 분들이 와주셨고, 공연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총 150만원의 모금액을 모아 기부할 수 있었다. 준비하면서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우리의 공연을 보러 와줄까 하는 의문이 들 때도 많았지만 나의 의심과 걱정과는 다르게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끝이 났다. 공연에 와준 나의 대학 후배들, 고등학교 친구들 그리고 지금의 남편이 된 그때의 남자 친구까지 너무나 감사한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처음부터 끝까지 합창단을 이끌어 준 단장님과 지휘자님, 그리고 반주자님께는 특별히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모자란 실력이지만 그림을 그려 선물을 해 드렸다. 


 

 

마지막 공연이 끝난 다음날 나는 몸져누웠다. 일주일 동안은 몸살 때문에 고생을 했다. 그만큼 나는 최선을 다했다. 아마 나뿐만이 아니라 함께했던 모든 단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눔 소리 합창단 1기는 2014년 3월에 처음 창단하여 2015년 1월에 1기 활동을 끝냈다. 두 달 정도 휴식을 취한 뒤 2기 모집을 시작했지만 나는 합창단이 아닌 후원자로 남길 원했다. 1기 활동 때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써버렸기도 했고, 남자 친구에게 프러포즈를 받아 결혼 준비에 전념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가장 많은 애정을 갖고 열심히 했던 일이 무엇이었냐라고 묻는 다면 이때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벌써 6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그때의 따듯한 느낌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온다. 물론 1년 가까이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하며 어려움도 많았고 갈등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합창단으로 모인 우리는 누구 하나 자신의 목소리가 튀지 않고 단원들의 목소리와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했기 때문에 무탈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제 와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처음 합창단에 지원할 당시에는 딱히 봉사를 해야겠다는 마음보다 노래를 부르며 내가 더 위로받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다. 하지만 봉사를 하며 나보다 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나 자신이 조금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인생에 남을 보물 같은 사람들도 알게 되었다. 


봉사는 의미 있는 경험을 통해 삶에 중요한 가치를 일깨워 주고, 타인을 치유하는 동시에 나 자신도 함께 치유해 준다. 봉사는 혼자 할 때 보다 같이 할 때 지속성을 가지며 에너지도 증폭된다.혹시 지금 마음이 힘들고 외로운 사람들이 있다면 봉사를 해보라고 권해보고 싶다. 


봉사는 큰돈이 드는것도 아니고, 마음만 있으면 누구든 아주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다. 내가 속했던 나눔 소리 합창단도 지금까지 계속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코로나로 지금 당장은 활동이 어렵지만 곧 그들이 부르는 노래가 다시 크게 울려 퍼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https://nanoomsori.mo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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