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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yper Oct 02. 2023

아시안게임에서 북한 선수들은 왜?

-정치가 스포츠에 미치는 악영향-


 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한창이다. 온 가족이 모인 추석 명절에 수영, 탁구 등에서 한국 선수들은 시민들에게 좋은 추석선물을 안기고 있다. 아시안게임은 4년에 한 번 열리는 아시아 지역 올림픽이기 때문에 TV는 물론 많은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절대적인 보도양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는 국내 언론의 아시안게임 보도 가운데 북한과 관련해 유독 부정적인 기사들이 눈에 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북한 선수들을 향한 국내 언론의 보도 경향


“‘북한이라 부르자 발끈한 북한 선수단? [아하 항저우]” (한겨레

“‘북측’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기자 지적한 감독 (서울신문

북한 남자축구 '추태'심판 밀치고 상대 스태프 위협” (뉴시스)

단일팀이었는데북한 유도 김철광아시안게임서 한국 선수와 악수 거부” (SBS)

"북한, AG시상대서 한국 선수들 모욕"외신의 시선 (뉴시스)

한국 금메달에 격분?시상대서 추태부린 북한 사격대표팀” (매일경제)


 ‘추태’, ‘모욕’, 등 기사 제목에 부정적 표현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북한과 관련된 이 같은 기사들을 살펴보면 크게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북한 명칭과 관련된 것으로, 기자 간담회에서 각국의 기자들이 북한을 두고 ‘북측’ 또는 ‘north korea’로 언급한 것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다. 북한의 코칭스태프는 물론 선수단 관계자들은 기자들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또는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가 북한의 정확한 명칭임을 분명하게 밝히며 이렇게 지칭할 것을 요청한 것이다. 둘째는 북한 남자 축구팀의 8강전과 관련된 것으로, 경기 후 북한 선수단이 심판과 상대팀을 향해 보인 거친 행태에 대한 보도다. 일본과의 경기에서 북한은 후반 막판 심판의 페널티킥 판정이 억울하다며 주심에게 강하게 항의를 했으며, 경기 후에도 이에 대해 항의를 이어간 것에 대한 부분이다. 마지막은 각기 다른 국가로 참가한 남한과 북한의 선수들이 대결한 경기에서 발생한 북한 선수들의 반응에 대한 보도들이다. 예를 들어, 북한 선수가 한국 선수와의 경기에서 패하고 일부러 악수와 사진촬영 등을 거부하며 추태를 부리고 있다는 내용이다. 



북한 선수개인의 문제인가?


 오늘은 이 세 번째 부류의 기사들을 보며 과연 그러한가, 나아가 만약 책임소재를 따진다면 누구에게 귀책사유가 있는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특히 지난 25일, 남자 사격 10m 러닝타깃 단체전에서 한국이 금메달을 차지한 반면 북한은 은메달에 머물렀다. 이후 시상식에서 한국 선수들은 북한 선수들에게 손을 내밀어 함께 사진 찍을 것을 요청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에 대해 북한 선수들이 거부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국내 언론들은 “북한 선수들이 한국 선수들을 모욕했다”(뉴시스), “북한 선수들이 한국 선수들의 금메달에 격분해 추태를 부렸다”(매일경제)고 보도했다. 마치 북한의 개별 선수들이 한국 선수들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도하며, 이 기사를 접하는 시민들이 북한 선수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 쉽게끔 만들고 있다. 


지난 25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사격 10m 러닝타깃 단체전 시상식에서 한국 선수들과 북한 선수들의 모습이다. (출처: 로이터)


 이러한 보도에 대해 근본적으로 이 같은 질문을 하고 싶다. 만약, 현재와 같은 남북한 외교관계에서 한국 선수들에게 밀려 은메달을 차지한 북한 선수들이 과연 한국 선수들과 웃으며 사진촬영을 할 수 있을까? 물론 대한민국과 같은 다수의 민주주의 사회와 국가들에서는 스포츠와 정치가 분리되는 것은 당연해 보이며, 외교관계와 상관없이 경기 후 함께 그리고 정정당당하게 겨룬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 스포츠 정신이다. 이것이 우리의 상식이고, 우리의 관점이다. 그러나 북한은 다르다. 북한은 전체주의 국가이며, 모든 것이 당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사회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선전, 프로파간다를 중시하는 사회다. 이 같은 북한의 특질을 고려할 때, 만약 현재와 같은 남북한 외교관계에서 북한 선수들이 한국 선수들에게 금메달을 빼앗긴 그 시상식에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환하게 웃으며 남한 선수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면, 북한으로 돌아갔을 때 그 선수들에게 아무 일이 없을까? 


 당연히 스포츠 정신과 올림픽 정신에 배치되는 이 같은 북한 선수단의 행동은 비판받을 수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이 같은 현재의 상황을 야기한 정치권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규 교육과정에서 배우듯이 한민족이며 향후 통일의 대상이라고 하는, 그리고 가끔씩 남북단일팀을 구성해 전 세계 다른 국가의 선수들을 상대로 한 팀이 되었던 북한 선수들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려하면, 오히려 이 북한 선수들은 피해자다. 그럼 가해자들은 누구인가. 

     

     

윤석열과 김정은


 가해자는 윤석열과 김정은이다. 이 두 명사는 개인보다는 남한과 북한의 외교라인을 의미하는 대명사다. 현재 남북 외교관계는 파탄 수준이다. 윤석열 정부 이후, 남한과 북한의 외교채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은 오래이며, 한반도를 둘러싼 신냉전의 기류가 엄습하고 있다. 이 기류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라는 외생적 변수에 의한 측면보다는 윤석열 정부 이후 한국이 지나치게 미국 일변도의 외교노선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를 향한 한국 정부의 대러외교의 실패라는 내생적 변수가 보다 결정적이다. 그 이유는 미중경쟁은 이미 지난 2000년대 후반부터 가장 중요한 변수다. 또한, 지난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사이의 일촉즉발의 위기를 외교를 통해 한반도의 평화를 어느 정도 담보했기 때문이다. 


 기억을 더듬어보자. 불과 5년 전,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미국과 북한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자 문재인 정부의 외교라인은 적극적으로 나서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이 아닌 긴장을 완화시키는 조정자 역할을 했다. 이를 위해 직접 북한과 대화를 하며 어떻게든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북한과 접촉을 이어나갔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오히려 북한과 러시아를 겨냥하며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과 관련해 규범적 차원에서는 러시아를 규탄할 수 있지만, 외교적 차원에서는 굳이 나서서 러시아를 도발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한국의 외교라인은 지속적으로 러시아를 자극하며, 오히려 한반도를 중심으로 북한과 러시아를 반자유민주주의 세력으로, 한미일을 자유민주주의 세력으로 규정하며 이분법적인 외교행태를 보였다. 그리고 그 선봉장에 마치 윤석열 정부가 있는 것처럼 외교를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그 구체적인 사례가 지난 21일 윤석열 대통령의 유엔총회 기조연설이었다. 이 연설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은 물론 러시아를 대한민국과 전 세계 평화에 대한 위협으로 못 박았다. 이에 질세라 북한은 25일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외교백치·정치적 미숙아’ 등의 표현을 포함해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차마 입에 올리기 어려운 비난을 했다. 그랬더니 바로 다음날인 26일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을 향해 “핵 사용하면 한미 동맹으로 북한 정권 종식“할 것이라며 몰아붙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윤석열과 김정은 두 지도자는 마치 자존심에 목숨을 건 이성을 잃은 어린아이처럼 말다툼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북한의 사격선수들이 은메달을 목에 걸고 금메달을 목에 건 남한 선수들과 웃으며 사진 찍을 수 있겠는가. 



정치 그리고 외교란 무엇일까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여자 농구 남북 단일팀으로 뛰었던 한국의 박지수(왼쪽)와 북한의 로숙영이 함께 몸을 풀고 있다. (출처: 뉴스1)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오히려 자유롭게 함께 사진을 찍지 못하는 북한 선수들이 너무 안쓰러웠다. 사진보다 당시 영상을 보면 금메달을 목에 건 한국 선수들이 북한 선수들을 향해 손을 내밀자 세 명의 북한 선수들의 표정은 악의에 찬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할지 몰라 쭈뼛쭈뼛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보며 지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합작했던 여자 농구 남북단일팀이 떠올랐다. 당시 남한과 북한은 서로 단일팀을 꾸려 훈련하며 은메달이라는 좋은 성적까지 일구었다. 함께 땀을 흘리고 좋은 성적을 냈던 선수들이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다시 적이 되어 만났다. 이번 남한과 북한의 여자 농구를 보면 서로 아는 체도 제대로 못하는 선수들을 보며 과연 정치란 그리고 외교란 무엇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결국 정치와 외교를 못하면 금메달을 목에 건 상대를 향해 따듯한 축하도, 함께 땀을 흘리며 은메달을 합작했던 동료를 향해 반가운 인사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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