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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yper Oct 04. 2023

왜 시진핑은 시리아의 아사드를 초청했을까?

-급변하는 국제정치, Pivot to Middle East?-


 급기야 중국 시진핑 주석이 시리아의 알 아사드 대통령을 중국으로 초청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9월 21일, 국제 사회에서 ‘학살자’로 악명 높은 시리아의 알 아사드 대통령이 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에 참여한다는 명목으로 중국을 방문한 것이다. 이번 아사드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지난 2004년 이후 처음이며, 2011년 시리아 내전 이후에는 국제사회에 발을 내밀기 어려운 형국이었다. 중국도 이런 상황을 고려했는지 아사드 대통령의 이번 방중 일정이 참 묘하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이 열린 9월 23일을 기준으로 앞뒤로 이틀씩 외교일정을 잡았다. 21일(목) 베이징에 도착한 아사드 대통령은 22일(금)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으며, 아시안게임 개막식 이후 24~25일에 추가 회담을 진행했다. 이는 아시안게임이라는 명분 하에 최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피하기 위한 중국의 의도가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1> 시리아의 알 아사드 대통령이 그의 아내와 함께 중국 베이징에 도착해 중국 관리들의 환영인사를 받고 있다. (출처: 로이터)

 그렇다면, 왜 두 국가의 정상은 이 같은 국제사회의 우려를 알면서도 정상회담을 가졌을까. 각각 시리아와 중국의 입장에서 접근해 보면 그 실마리를 어느 정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실마리를 통해 2023년 현재 국제정세가 얼마나 무섭게 급변하고 있는지 유추할 수 있다. 즉, 작금의 국제정세는 탈냉전 이후 (표면적으로) 중시되었던 규범과 명분이라는 국제정치의 작동원리를 국가이익과 힘의 원리로 노골적으로 대체하고 있다. 또한, 가속화되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의 무대가 아시아 지역에서 점점 중동지역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사진-2> 22일 시리아의 알 아사드 대통령(왼쪽)과 중국의 시진핑 주석(가운데)이 정상회담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출처: SYRIAN ARAB NEWS AGENCY)



시리아 아사드의 입장


 먼저, 아사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2000년 7월부터 시리아의 대통령으로 재직하고 있는 알 아사드는 독재자다. 아사드가 국제사회에서 악명 높은 독재자로 자리매김한 것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당시 아랍 지역에 일었던 민주화 물결은 시리아에서도 유효했다. 이 ‘아랍의 봄’으로 튀니지, 이집트와 같은 국가에서는 정권교체가 일어났으며, 리비아에서는 카다피가 살해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를 본 시리아의 아사드는 통치를 이어가기 위해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을 무참히 진압했으며, 이후 12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내전에서도 반군과 민간인을 구별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학살하고 있다. 그 결과 사망자는 5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며, 살기 위해 시리아를 떠난 난민만 1,000만 명 이상이다. 


 2011년 이후 지속되고 있는 시리아의 비극은 단순히 인명피해에 그치지 않고 시리아 경제에 치명상을 입혔다. 지속된 내전으로 시리아 내부의 경제기반은 물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경제제재로 인해 시리아의 대외경제의 근간 또한 무너진 상태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일하게 오랜 시간 시리아를 지원하고 외교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국가가 중국과 러시아다. 특히 중국은 2011년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Security Council)에서 아사드 정부를 비난하는 유엔 결의안에 대해 8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다. 지난해에는 시리아가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실크로드 전략으로 불리는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 계획에 공식적으로 참여했다. 이를 통해 시리아는 열악한 인프라가 대대적으로 복구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23일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시리아는 중국과 전략적 동반자관계(Strategic Partnership)를 수립하며 정치·경제·무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결국, 시리아의 아사드 대통령 입장에서는 내전과 서방의 경제제재로 무너진 경제를 회복하기 위한 마지막 보루가 바로 중국이었고, 이를 위해 이번 아시안게임에 맞추어 중국을 방문한 것이다. 



중국 시진핑의 입장


 다음으로, 중국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20세기 후반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을 토대로 명실상부 미국과 경쟁하는 G2 국가로 자리매김한 중국이 시리아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은 사실상 없다. 오히려 미국과 서방으로부터 민주주의, 인권 문제로 비판을 받고 있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이번 아사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여러 측면에서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부담은 회담 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중국이 지난해부터 시리아와의 관계에 공들이고 있는 이유는 지중해로 향하는 항로 확보와 중동지역에서의 영향력 확보라는 국제정치적 포석이 내재되어 있다. 


 전자의 경우, 미국과 달리 해양세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중국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우회로 가운데 하나다. 미국은 오른쪽으로는 유럽과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바탕으로 북대서양을, 왼쪽으로는 2차 세계대전 승리를 바탕으로 태평양을 자기 앞마당처럼 활용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왼쪽으로는 과거 소련 지배하에 있었던 국가들과 국경들 마주하고 있는 내륙지역이기 때문에 해양으로 진출하기가 어렵다. 이에 해양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자국의 오른쪽 지역인 필리핀, 대만, 한국, 일본이 있는 태평양 밖에는 없다. 그러나 이 지역은 오랜 시간 미국의 영향권 하에 있었기 때문에 중국의 입장에서도 쉽사리 영향력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미국은 중국의 이 같은 움직임을 차단하기 위해 한국, 일본, 호주 그리고 인도까지 끌어들이는 쿼드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은 시리아를 현재 자국이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 계획에 포함시킬 경우, 아래 사진처럼 시리아의 최대 항구인 라타키아(Latakia)를 통해 지중해로 진출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중국이 이번 시리아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얻고자 하는 첫 번째 국제정치적 목적이다.     


<그림-1> 시리아의 왼쪽 지역에 위치한 라타키아 항구는 시리아의 최대 항구이며, 지중해로 진출하는데 용이하다. (출처: Financial Times)


 후자의 경우는 오랜 시간 중동지역에서 굳건하던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중국의 대담한 대중동외교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아래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물리적인 거리의 한계로 인해 중국이 바로 시리아의 라타키아 항구를 이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에 이번 정상회담은 중국이 단순히 시리아와 맺는 단일한 외교정책이 아닌 중동지역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대중동외교의 일환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를 위해 최근 중국이 중동국가들과 맺고 있는 일련의 외교행보를 눈겨여볼 필요가 있다. 


<그림-2> 중동지역을 보여주는 지도로, 노란색으로 표시한 국가들이 현재 중국이 외교에 공을 들이고 있는 국가들이다. (출처: 구글 지도)


 먼저, 2023년 3월 오랜 시간 미국의 영향권 하에 있던 사우디 아라비아가 중국이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 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에 가입했다. 이 기구는 2001년 중국이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이 결성한 5자 회담에서 비롯되어 출범하였다. 이후 인도와 파키스탄도 참여하며 중국을 중심으로 주로 유라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에 대항하는 기구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성격의 상하이협력기구에 사우디아라비아가 가입한 것은 중국의 영향력이 중동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공식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중국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바로 다음 달은 4월에 사우디와 이란의 외무장관을 중국으로 초청해 양국의 관계정상화를 이끌어냈다. 중동지역에서 오랜 시간 중동의 맹주 자리를 두고 경쟁을 벌이던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를 중국이 개입해 해결한 것이다. 그것도 중동이 아닌 중국에서 말이다.     


<사진-3> 4월 6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외교장관(왼쪽)과 이란의 외교장관(오른쪽)이 중국에서 만나 관계정상화를 위한 회담을 하고 있다.(출처: CNN)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정상화를 기반으로 중국은 지난 8월 남아공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담에서 또 하나의 놀라운 합의를 도출한다. 그것은 바로 2024년 1월 1일부로 브릭스의 새로운 회원국으로 6개국을 발표하는데, 그 가운데 사우디와 이란은 물론 UAE, 이집트, 그리고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가 포함된 것이다. 위 구글 지도를 보면 왜 중국이 이번 브릭스 정상회담에서 이 국가들을 신규 회원국으로 받아들였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중국이 위 지도에서 노란색으로 표시한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UAE(아랍에미리트), 에티오피아, 그리고 이집트와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면 아라비아해와 지중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브릭스의 회원국은 아니지만 시리아와 관계개선을 통해 시리아의 라타키아 항구를 활용한다면 중국은 그야말로 아라비아해와 지중해를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시진핑이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통해 시리아의 아사드 대통령을 만난 것은 경제적인 목적보다는 중동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Pivot to Middle East?


 이번 중국과 시리아의 정상회담은 중국의 외교노선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이며 동시에 미국과 중국의 경쟁으로 대변되는 국제정세가 어떻게 급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나침반이다. 이를 통해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두 가지 함의를 도출할 수 있다. 


 첫째는 신냉전의 가속화이며, 그 신냉전의 작동원리는 ‘노골적으로’ 국가이익과 힘의 원리라는 점이다. 이번 정상회담을 보며 단순히 ‘학살자’까지 만나는 중국이라고 비난만 하고 끝날 일이 아니다. 안 그래도 오랫동안 국제사회에서 인권 유린국가로 비판받고 있는 중국이 또다시 시리아의 아사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담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시진핑이 시리아의 아사드를 자국으로 초청한 것은 국제사회의 비판보다 시리아가 중국의 국가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20세기 후반 소련으로 대변되는 공산권의 몰락으로 인해 프랜시스 후쿠야마와 같은 학자는 역사는 자유주의의 승리로 끝났다고 할 만큼 민주주의가 세계 정치의 유일한 이념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이에 법치, 인권 등과 같은 규범이 중시되며, 이는 외교무대에서도 표면적으로는 중요한 명분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명분과 가치가 외교무대에서 설 자리를 점점 잃고 있다. 그야말로 국제정치는 물질적 국가이익과 힘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미국과 중국의 외교 중심이 중동지역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스라엘, 사우디와 밀접한 외교관계를 통해 중동의 패권을 그 무엇보다 중시하던 미국의 입장에서 최근 중국의 대중동 외교는 충격일 것이다. 특히, 사우디의 행보는 미국으로 하여금 외교의 초점을 다시금 중동으로 돌릴 수밖에 없게 만들 것이다. 실제 지난 20일, 바이든 미 대통령은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8차 유엔총회를 구실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별도 회동을 가졌다. 이 회동의 핵심 의제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정상화였다. 2000년대 후반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 외교노선이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였는데, 이제는 미국의 외교노선이 ‘중동으로의 회귀’(Pivot to Middle East)를 천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 내부적으로는 그렇게 움직이고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즉, 중국과 미국의 외교 경쟁이 아시아가 아닌 중동에서 벌어질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 외교당국은 기민하게 대처해야 한다. 특히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 지역에서 중동 지역으로 관심과 역량을 집중하게 된다면, 미국 입장에서는 동아시아 지역의 안보를 담당해 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미국도 날로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중동과 아시아에서 동시에 역량을 집중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은 무엇보다 자신의 말을 잘 듣고 자국의 이해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대리자를 찾을 것이다. 그 대리자는 역사적 맥락에서 일본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의 안보체제는 일본의 입김이 상당히 반영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을 상정해 한국 정부는 적어도 아시아 외교에서 일본의 종속변수가 아닌 독립변수가 되기 위한 외교 묘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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