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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yper Oct 07. 2023

조용히 북한과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는 일본외교

- 치밀한 일본외교의 속내 -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며 일본 정부의 대한반도 외교가 심상치 않다. 일본 외교는 표면적으로 북한을 공동의 안보위협으로 상정하고 한국 정부와 외교관계를 돈독하게 하면서, 동시에 조용히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이 같은 일본 외교의 행보는 지난해 한국에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이전 문재인 정부는 일본과는 거리를 두며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집중했다. 이를 위해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와 긴밀한 협조를 이어가며, 한반도에서 일본의 외교적 영향력이 설 자리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들어선 윤석열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개선은 고사하고 북한을 단순히 안보위협으로 간주하면서 일본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치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본의 대한국 외교 


 2023년 일본의 대한반도 외교는 ‘치밀하게’ 투트랙으로 진행되고 있다. 먼저, 일본의 대한국 외교는 북한을 공동의 안보위협으로 상정하고 한일관계를 급속도로 결속시키는데 열중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기 한일관계를 고려하면, 2023년 한일관계는 놀라운 변화를 보이고 있다. 


 구체적으로, 2023년 3월 도쿄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한일정상회담을 개최하고, 불과 2달이 지난 5월 서울에서 다시 한번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두 차례의 한일정상회담은 8월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개최한 한미일 정상회담으로 이어진다. 이 정상회담에서 세 정상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라는 목표 하에 상호 긴밀하게 협조할 것을 공식화하며, 공동 군사훈련까지 포함된 계획을 발표한다. 이는 지난해 12월 일본 정부가 발표한 일본의 ‘신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의 내용과 정확하게 부합하는 안이다. 


<사진-1> 지난 8월, 미국의 캠프 데이비드에서 윤석열 대통령(왼쪽), 바이든 대통령(가운데), 그리고 기시다 총리(오른쪽)가 사진을 찍고 있다. (출처: CNN)


 상기해 보면 문재인 정부 당시 한국정부가 한반도 비핵화라는 외교안보 현안을 남한, 북한, 그리고 미국이 중심이 되어 해결하려고 하면서 일본의 외교적 공간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일본은 이를 놓치지 않고 윤석열 정부와 함께 북한을 공동의 안보위협으로 상정하며 한일은 물론 소위 한미일 삼각공조를 제도적으로 공고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틀 전 서울에서 9년 만에 개최한 한일 외교차관 전략대화는 이 공조체제를 구체화하기 위한 실무적 노력의 일환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이날 양국은 최근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위협이 지속되고 있음을 강력하게 규탄하며, 향후 ‘한미일 3국의 긴밀한 공조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의 단호하고 단합된 대응을 견인해 가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발표했다. 


<사진-2> 장호진 외교부 제1차관(오른쪽)과 오카노 마사타카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왼쪽)이 사진을 찍고 있다. (출처: 뉴스1)


일본의 대북한 외교


 일본의 대한국 외교가 이처럼 표면적으로 이행되고 있다면, 일본의 대북한 외교는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여기서 일본외교의 치밀함과 그 속내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약 일주일 전, 일본의 매체들(특히, 아사히신문) 출처로 올해 3월과 5월 두 차례 북한과 일본이 정상회담을 위해 동남아에서 비밀리에 접촉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비밀리에 접촉했던 시기와 전후 일본 기시다 총리의 발언들을 종합해 보면, 일본의 대한반도 외교가 얼마나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는지 잘 드러난다. 3월과 5월은 각각 일본이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던 시기다. 즉, 일본은 북한을 공동의 안보위협으로 상정하는 공감대를 기반으로 한국과의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안보위협인 북한과 비밀리에 정상회담을 추진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의 이 같은 움직임은 2021년 현 기시다 총리가 취임하면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취임 직후 ‘조건 없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직접 마주할 각오가 되어있다고 밝혔으며, 이듬해 9월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도 일본은 ‘전제 조건 없이’ 북한을 만날 준비가 돼 있다고 천명했다. 그리고 2023년 남한의 윤석열 정부와 북한을 고리로 관계개선을 하는 동시에 3월과 5월 각각 동남아에서 북한과의 정상회담 추진을 위해 북한 노동당 관계자들과 비밀 접촉한 것이다. 앞에서는 한국과 함께 북한을 공동의 적으로 규탄하면서 그 뒤에서는 그 적과 함께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국제정치고, 이게 외교의 현실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과연 한국 정부는 이를 미리 알고 한일정상회담을 추진했을까 하는 점이다. 


 이 같은 일본의 노력과는 별개로 북한과의 정상회담 추진은 양측 사이에 이견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기시다 총리는 5월 27일 일본에서 열린 일본인 ‘납북자’ 귀국을 촉구하는 집회에 직접 참석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북일정상회담을 조기에 실현하기 위해 북한과 고위급 협의를 하기를 원한다”라고 발언했기 때문이다. 이는 정황상 5월의 비밀회담이 결렬되고 기시다 총리는 다시 한번 북한을 향한 공개적인 메시지를 보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에 북한도 비록 협상은 결렬되었지만 29일 북한 외무성 부상은 담화를 발표하면서 “만일 일본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변화된 국제적 흐름과 시대에 걸맞게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대국적 자세에서 새로운 결단을 내리고 관계 개선의 출로를 모색하려 한다면” 일본과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는 긍정적 답변을 내놓았다. 이후 기시다 총리는 지난달 19일 제78차 유엔총회 연설에서 다시 한번 ‘조건을 붙이지 않고’ 김정은 만나겠다고 밝혔다. 


<사진-3> 유엔총회에서 기시다 총리가 연설을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일본의 속내 


 그렇다면 이처럼 조용히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일본의 속내는 무엇일까. 일본의 입장은 다층적으로 이루어져 있어 하나씩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국내정치용 명분이다.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집권세력이 교체되는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외교란 ‘명분’ 없이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그럴듯한 명분이 있어야 실제 ‘야욕’을 이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의 이 명분은 일본인 납북자 문제 해결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1970-80년대 북한은 남파간첩의 일본어 교육을 위해 일본인 17명(일본 측 집계) 북한으로 납치했다. 이후 일본 정부는 5명을 제외한 12명이 여전히 북한에 남아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북한 당국은 12명 중 8명은 이미 사망했으며, 4명은 북한에 온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국 사이의 이 납북자 문제는 오랜 시기 양국 외교의 현안이며, 일본의 입장에서는 국가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일본 시민들의 입장에서 이 문제는 일본이 세계 경제대국이라고 하면서도 정부가 자국민의 안전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다고 비판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 상대가 세계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가난한 북한이기 때문에 더욱 일본 시민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일본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분이 북한과의 정상회담 추진에서 가장 표면적인 이유다. 이 때문에 기시다 총리가 지난 5월 27일 ‘납북자’ 귀국을 촉구하는 집회에 직접 참석해 발언한 것이다. 


 두 번째는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안보대리자 역할을 하기 위한 일본의 전략이다. 앞서 언급한 지난해 12월 발표된 일본의 신안보전략에 따르면, 일본은 자국의 안보전략 범위를 분명하게 세계가 아닌 ‘인도-태평양 지역’(Indo-Pacific region)으로 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안보를 위협하는 요소(challenges)로 중국, 러시아 그리고 북한을 명시했다. 그러면서 이 안보위협 문제를 해결하는 첫 번째 전략이 바로 ‘미일 안보 강화’(Strengthen the Japan-U.S. Alliance )다. 미일 안보 관점에서 북한의 북핵이슈는 일본과 미국의 이익이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미국은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중동지역에서의 영향력 확대로 인해 예전처럼 동아시아 지역에 신경을 쓸 여력이 부족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입장에서 가장 믿을만한 일본이 나서서 북한과의 핵문제를 비롯해 동아시아 지역의 현상유지를 위해 일본이 직접 돈을 지출하며 담당하겠다고 나선다면 미국으로서는 반길 수밖에 없다. 특히 일본의 이 같은 행보는 우크라이나 지원에도 재정적 부담을 가지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매우 반가울 것이다. 반대로 일본은 미국이 있는 한 세계 정치 무대에서 미국을 대항하는 세력이 될 의도보다는 적어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패권을 공고화하는데 그 무엇보다 목적이 있다. 이에 북한과의 정상회담은 적어도 동아시아 지역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는데 좋은 기회가 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일본의 근원적인 속내로 남한과 북한의 결속을 막기 위함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정치권, 특히 우익의 숙원은 소위 ‘정상국가’다. 그 정상국가라는 것은 방어만이 아닌 공격할 수 있는 군대를 보유하는 것이다. 현재 일본의 군대는 헌법상 방어만 할 수 있는 ‘자위대’다. 그러나 일반 군대를 보유한 정상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아베 총리가 그렇게 시도했던 헌법 개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민주국가에서의 헌법 개정은 다수 국민들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은 강력한 외부의 적이 있어야 하는데, 아주 적절한 적이 바로 북한인 것이다. 


 현재와 같이 북한이 남한과 분단되어 핵개발을 추진하고 지속적으로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일본이 아닌 태평양을 향해 발사해야 일본을 이를 가지고 자국민들을 설득하기가 용이할 것이다. 이러한 배경 하에 일본은 남한에 비해 열악한 경제 구조 속에서 남한과의 흡수통일을 두려워하는 북한에게 경제개발을 위한 최소한의 돈을 지원하면서 남한과 북한의 분단을 지속시키고자 하는 것이 북일정상회담의 속내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북한과 같은 외부의 적이 있어야 정상국가를 위한 군비증강의 명분이 생길 뿐만 아니라 강력한 대외변수를 제거할 수 있게 된다. 일본은 신안보전략에서 분명하게 자국이 속한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 위협으로 중국, 러시아, 그리고 북한을 뽑았다. 중국과 러시아는 일본 혼자서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함께 대처하는 변수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지난 문재인 정부 하에서 시도한 것처럼 북한과 남한이 급속하게 가까워지고 설령 통일이라도 하게 된다면 통일된 한반도를 가장 두려워할 국가는 바로 일본일 것이다. 일본은 실제 신안보전략에서 다음과 같은 표현이 삽입되어 있다.


“한반도에서는 남한과 북한의 대규모 군사력이 서로를 향해 대치하고 있다.”
(In the Korean Peninsula, the large-scale military forces of the Republic of Korea (ROK) and North Korea are in confrontation with one another.)


 이는 남한과 북한의 재래식 무기는 물론 북한의 핵무기가 다행히 지금은 서로를 겨누고 있지만 이 두 국가가 70여 년 전처럼 하나의 국가가 된다면 일본에게는 이 자체로 엄청난 위협이 될 것이다. 


 정리하면, 2023년 들어 일본은 치밀하게 대한반도 외교를 펼치고 있다. 표면적으로 남한과는 북한을 고리로 한미일 삼각공조를 공고히 하면서, 뒤에서는 조용히 북한과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가장 큰 안보위협으로 꼽고 있는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일본은 국내정치적 명분은 물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안보대리자의 역할을 공고히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상회담 추진에는 무엇보다 어떻게든 남한과 북한이 가까워지는 것을 막기 위한 일본의 야욕이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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