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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군가 Sep 18. 2023

'기후비상사태 : 리허설'이 가져온 비상사태

문화예술트렌드 매거진 _ prism chap1 이제는 우리도


* 해당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후비상사태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 매거진을 다시 써야 하나?'였다. 당시 공연을 관람했던 시기는 매거진 1차 제본 샘플을 주문하고 제본을 기다릴 때여서 내 머릿속에는 무엇보다, 환경 그리고 매거진 프리즘에 관한 생각들이 마구 들어있었다. 그래서 이 ‘기후비상사태 : 리허설’ 역시, 매거진을 위해 관람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공연을 보는 동안에도 ‘매거진에 이 공연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 고민하며 공연을 관람했다. 그리고 그 결과, 이 공연을 통해 내가 가장 먼저 들은 생각은 ‘아 사고다’였다.


매거진에 맞추어서, 이 공연의 메시지를 전달하자면 ‘환경을 보호하는 흐름’은 트렌드가 될 수 없다. 이 문장을 타자로 치는 순간, “네? 갑자기요? 이제 와서요? 환경보호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껏 해놓고?”라고 매거진을 읽던 독자가 매거진을 던져버릴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든다. (버릴지도) 그리고 매거진을 읽으면서 ‘요즘 환경을 보호하는 것이 트렌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사과드리고 싶다. 물론 매거진을 작성할 때, 환경을 보호하는 것이 트렌드라고 주장하기보다는 환경보호 속 환경의 ‘반경’이 넓어졌다는 점에 주목해 왔다. 그렇지만, <기후비상사태:리허설>을 관람하는 동안, 그 후에도, 이 매거진 속 ‘환경’ 파트에 반드시 들어가야 했던 내용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숙연하게 반성했다. 내내 벌거벗은 기분이 들었던 극 관람의 경험을 샅샅이 반성하고 공개함으로써 이제는 분명하게 전한다.


‘환경은 트렌드가 될 수 없다’


연극 ‘기후비상사태:리허설’에서는 ‘작가’의 역할을 맡은 배우 11명이 등장한다. 이 11명의 배우는 모두 ‘작가’이자 ‘나’의 역할을 하고, 작가의 말을 전달한다. 극을 감히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작가가 기후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까지 느껴왔던, 생각했던, 반성했던 모든 것들이 들어있다. 그 속에서 관객들은 자기 모습을 찾아볼 수도, 세상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직시할 수도 있다. 그래서 공연에서 들려주는 모든 이야기는 작가 본인의 이야기인데, 그들의 공통점은 굉장히 솔직하다는 점이다. 그중에서 나는 환경이 트렌드가 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로 느껴졌던, 한 대사이자 작가의 생각이 있었다.


“우리 어릴 때, 환경 보호하는 표어도 쓰고 했잖아요. 그러고 보면 되게 오랫동안 환경은 힘들어했던 것 같은데”

 

오래전부터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말은 계속해서 외쳐왔던 것 같다는 작가의 말에서 나 역시 생각해 보니, 꽤 오래전부터 우리 환경은 힘들어했다. 그래서 환경보호는 오래전부터 필요했고, 계속되어 왔기에, 더욱더 트렌드라고 할 수 없다. 환경을 보호하려는 외침을 지지하는 방법이 여러 갈래로 많아졌을 뿐이지, ‘환경을 보호하는 것이 요즘 트렌드예요’라고 말할 순 없는 노릇이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인데, 이 사실을 놓쳤다는 점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다시 분명히 외치며, 반성한다.


‘환경을 보호하는 건 트렌드가 될 수 없고, 트렌드가 되면 안 된다. 환경 보호는 오랫동안 ‘당연하게’ 계속되어야 한다.’



출처 _ 국립극단


솔직함과 수치심


너무 부끄럽지만, 또 반성하는 이야기이다. 앞서 내가 했던 반성과 달리 이번에 전할 반성은 연극 속 솔직함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연극을 보면서 작가의 이런 생각, 저런 생각들을 듣다 보면, ‘저 정도로 온 마음을 뱉어낸다고?’ 할 정도로 가감 없이 솔직했다. 너무 솔직하다 못해 표정이 찌푸려질 정도의 솔직함은 전혀 아니다. 어쩌면 통쾌할 정도의 솔직함이었다. 그런 솔직함이 잘 느껴졌던 연극의 핵심 대사는 이러하다.


“기후 위기 그래 알겠고, 알겠고, 알겠는데, 나만 이럼? 나만 가슴이 찢어지진 않는데 잘못된 거임? 나도 분리수거한다고.”


연극이 끝나고, 가장 기억에 남았던, 대사였다. 그리고 내가 기억에 남은 대사가 저 대사라는 점이 또다시 반성 모드에 들어가게 된 이유였다. 더 자세하게는, 나도 모르게 저 대사에 공감되는 내 모습이다. ‘기후비상사태:리허설’은 작가가 이 기후 위기 연극을 쓰기 위해 애써왔던 과정을 담았다. 그래서 저 대사를 외칠 때, 작가는 기후 위기, 환경보호에 관한 모든 서적, 자료들을 찾아보고 ‘기후 위기 시대에 연극이, 작가인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해 왔던 시간 중에 내뱉은 말이다. 내가 대사에 더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는 환경보호를 하고 싶은 ‘내’가 동시에 환경 매거진을 쓰고 있었던 ‘내’가 느낄 수 있던, 같은 복잡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작가의 솔직함을 더욱 파고들어, 우리 모두에게 적용해 보자. 환경보호가 필요한 시대이고, 기후 위기 시대라는 점에는 우리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모든 세상이 위험하다고 얘기하고 여기저기서 경고음을 울리기 바쁘다. 그런데, 작가는 부끄럽게도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다. 연극 속 대사를 빌려, 우리도 자신에게 물어보자.


“기후 위기? 기후 위기 어디 있어? 네 눈앞에 있어? 어디 있어? 저기 있으니까 여기 있어? 굉장히 이타적이네”


그렇다. 우리는 기후 위기에 허덕일 정도로, 기후 위기에 목이 메거나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살갗으로 느끼지 못했다.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기후 위기가 다 허구처럼 느껴진다. 그 이유는 작가도, 지금 바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앞에 놓인 위기들이 더 크니까. 기후 위기? 저 멀리 있는 세상 속 이야기로 느끼는 것이다. 작가는 그럼에도 기후 위기 시대에, 기후 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했기에, 계속해서 기후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작가는 직접 기후 위기, 우리가 사는 주변환경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러다 인류세와 마주치게 된다.


인류세 인하로 인한 주유비


작가는 유류세 인하로 인한 주유비를 ‘인류세 인하’라고 잘못 읽었는데, 사실 단순 우연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없었다. 우리는 정말 인류세 인하로 인한 주유비를 겪고 있으니까. 여기서 인류세는 ‘인류가 지구 기후와 생태계를 변화시켜 만들어진 새로운 지질시대’를 말한다. 인류가 생태계를 변화시켰기 때문에 주유비가 나오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 주유비는 석유를 말하는데, 이 석유는 화석연료 중 하나이다. 화석연료는 인간, 유기체, 생명체들이 죽어 화석이 되고, 그 잔존물로 인해 만들어지는 에너지 자원이다. 결국 인류가 생태계를 변화시켜 만들어진 새로운 지질시대에 인류를 비롯한 생명체들이 죽고, 화석연료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기후를, 환경을 어떻게 밟고 서 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 기후와 생태계를 변화시켰고, 그 변화로 인해 화석연료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죽음이 희생되었다는 것을 우린 걸 알아야 한다. 어쩌면 희생이 아닌 학살일지도 모르는 기후 위기 시대에, 우리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이마저도 연극을 통해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저희가 도울 게 있을까요?”

“아니요. 지금처럼 관심 가져주세요.”


우리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고 이 연극을 본다면, 들을 수 있는 대답은 저뿐이다. ‘관심’을 갖는 것. “그뿐이에요?”라고 되묻는다면, “네. 지금처럼 관심 가져주세요.”라고 대답한다. 결국 관객들은 스스로 물어보게 된다. 진정으로 지금까지 내가 관심을 가졌었는지. 남의 이야기처럼 생각하진 않았는지, 내 위기인지 저 사람 위기인지, 따져보고 재보고 고민하던 순간이 없었는지. 내가 지금 누리는 자원이 누구의 손에 거쳐왔는지. 그리고 내가 어떤 희생을 강요하는지.

‘공감성 수치’라고 해야 하나. 기존에 공감성 수치가 뜻하는 바와는 조금 다르다. 이 연극 속 작가의 모습, 스쳐 가지만 무거웠던 생각들에 공감함으로써 창피했던 나의 감상을 ‘공감성 수치’라고 하고 싶다. 스스로 반성하도록 만드는 이 공연은 결국 누구보다 강렬하게 말하고 있다. ‘환경보호에 동참합시다.’ 라기보다는 ‘이게 당신입니다.’라고 말이다. 그 ‘당신’ 속에는 환경을 안일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기후 위기 속에서 처절하게 버텨 내기도 하고,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도 해보고, 기후 위기를 고민하기도 해 보는 여러 ‘당신’이 존재한다. 공연은 적나라하게 모든 ‘당신’들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을 ‘거울 치료’하게끔 만든다. 다시 말해 솔직함을 넘어서 적나라했던 ‘당신’의 여러 모습을 통해 관객들을 비추고 꼬집는다. 결국 관심을 가지는 것이 스스로 반성을 불러오게 하는 성찰이 되고, 그 성찰이 이 공연의 핵심 메시지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위에 적어 놓은 대사 이외도, 인상 깊었던 몇몇 대사들을 소개하고 길었던 반성을 마친다.



출처 _ 국립극단


“비상사태의 경종이 계속 울리고 있는데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건지 전혀 모르겠는 거죠”

 

“난 내 앞에 놓인 위기들이 더 크니까 그게 진짜니까 지금 당장 내 위기 내가 죽겠는데 무슨 기후위기야”

 

“암전,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다 지워진 상태. 완전한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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