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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Apr 16. 2024

[문장] 2014년 생(송김경화)

이 배를 보면 어떤 마음이 들어야 정상일까요?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열리는 여러 행사들을 눈여겨보고 있었지만 장소와 시간상의 이유, 육아의 문제로 참여하기 어려운 일정이 많았다. 그렇지만 첫째도 아홉 살이고 둘째도 공연장에서 조용히 할 수 있을 만큼은 컸다고 생각해서 전체관람 대상의 연극을 보면 어떨까 하고 찾아보기 시작했다.


안산문화예술의 전당 별무리 소극장과 보노마루 소극장에서 진행되는 4월 연극제에 8편의 작품이 올랐고 그중 <2014년 생>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눈에 띄었다. 마침 첫째가 2016년생이니 아무래도 또래가 나오면 조금 더 내용에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예매를 해두고 기다리는 사이 해당 연극의 희곡집도 발행되었다.


오는 4월 28일까지 4편의 작품이 더 이어지는 4월 연극제


4월 13일 토요일, 가족들과 함께 안산으로 향했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남편과 단원고 기억교실에 갔던 기억, 더 거슬러 결혼 전에 같이 팽목항에 갔던 기억, 다시 시간을 앞으로 돌려 두 아이들과 함께 목포신항에 세월호를 보러 갔던 기억들이 연거푸 스쳐 지나갔다. 벌써 10주기구나.


공연장에 들어가니 벌써 많은 분들이 와계셨고, 어린아이들을 보시고 여러 시민분들께서 선뜻 앞자리를 내어주셔서 감사하고 죄송했는데 극이 진행되다가 자리를 동그랗게 변형시켜 모두가 마주 보고 앉는 좌석 배치가 되자 송구한 마음을 조금 덜 수 있었다.


2014년에 태어난 시원이가 2014년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를 알아가며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차별받는 장애인, 성소수자, 아동청소년의 권리 문제에 의문을 갖고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끌어갔다. 특히, 아동청소년 당사자로서 스쿨존 문제, 노키즈존, 현장체험학습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는 어른으로서 한없이 부끄러워 귀가 화끈거릴 지경이었다.


동그랗게 둘러앉아 스쿨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던 중 긴 밧줄을 모두가 함께 잡도록 나누어 주시길래 무언가 했더니 곧이어 노란색 리본끈을 한 뭉치씩 나누어 주셨다. 갑자기 노란색으로 물드는 원형 안에서 상치 못한 눈물이 쏟아지는 바람에 마주 보고 있는 관객 분에게도 옆에서 왜 우냐고 묻는 딸아이에게도 민망해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밧줄에 리본만 열심히 묶어댔다.


관객들이 각자 받은 20여 개의 리본을 묶는 동안 시원과 나리는 극을 이어갔는데 관객 모두 너무나 자연스럽게 각자의 리본을 매며 연극을 보던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마치 시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만의 방식대로 세월호를 기억해 왔다는 듯이.


공연장 바닥에 동그란 스티커가 잔뜩 붙은 종이를 펼치고 선으로 연결하자 우리나라 지도가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어린이가 사고를 당한 장소에 점을 찍어놓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되고는 잠시 할 말을 잃기도 했다.  다 같이 묶은 노란 리본이 달린 긴 줄은 미래로 떠나는 차원의 문이 되었고 우리는 뿍극대원이 되어 다 같이 주문을 외우며 미래로 떠났다. "먼지 먼지 뿍극 슈퍼 파워!"


요란한 빛과 소리 끝에 도착한 미래의 대한민국은 암흑 그 자체였다. 그럴만하다는 자조적 웃음을 지을 때 "이곳은 어른이 없는 세계입니다."라는 대사가 나와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어린이들의 미래는 남아있어야지.' 


그것도 잠시, 폭발하는 지구 때문에 다시 나리를 구하러 갔는데 씽크홀에 빠진 나리를 구조할 수 었던 것은 다름 아닌 노란 리본이 달린 긴 줄 덕분이었다. 우리에게는 노란 리본의 마음으로 만들고 외친 생명안전기본법이 절실하다.


새로운 행성에 도착한 UFO에서 내린 시원과 나리는 새로운 행성에 필요한 새로운 법을 관객들과 만들어 나간다. 과거 회상 금지법, 차별금지법, 동물법, 계속 놀기 법, 반말법, 환경오염 금지법 등등을 제정하지만 반려동물을 위해 다시 과거로 돌아오게 된다. 사랑하는 존재에 엄연히 반려동물도 들어간다는 사실.


돌아온 시원은 동그란 관객석을 천천히 돌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관객들 사이에서 보였다 안보였다 하는 시원은 초등학교 저학년의 키가 자동차 높이보다 낮아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어린이는 튀어나오는 존재가 아니라 뛰어다니며 노는 존재임을, 보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존재일 수 있다는 것을 몸소 관객에게 알려준다.


노란 리본이 아동청소년을 시민으로 존중해 주는 행동의 상징이 되기를 바란다는 시원이가 유엔아동권리협약 제13조 표현의 자유를 읊고 무대에서 사라지면 시원과 주희가 목포신항에서 세월호를 보며 나눈 대화가 흘러나오고 막이 내린다.

차원의 문이었던 노란 리본 밧줄은 커다란 하나의 노란 리본이 되어.


연극이 끝나고 진행자분의 질문을 통해 배우와 연출하신 송김경화님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있었고, 직접 관객의 질문을 받아 대답해주시기도 했다. 그제야 나는 백송시원 배우님이 연출가님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원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세월호 관련 작업을 하셨다는 연출가님과 그 이야기를 직접 연기하는 백송시원 배우님에게 이 연극은 극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의 인생이었을 거라는 생각에 존경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연극의 제목이 '2014년생'도 아니고 '2014년, 생'도 아니고     '2014년 생'인 이유는 시원이와 나리의 생을 함께 표현하기 위함이라고.



연극에는 나오지 않지만, 희곡집의 작가의 말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시원이가 주희언니와 목포신항에 세월호를 보러 갔을 때, 그렇게도 보고 싶던 세월호 앞에서 왜 아무 말도 없이 딴청을 피우고 관심을 보이지 않았느냐고 묻자 시원이 말한다.


"슬퍼서. 슬픈 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말을 하면 슬픈 걸 들키게 되잖아"
"그래서 언니한테 질문하지 않은 거야?"
"주희 언니도 슬플까 봐……."
"언니가 슬퍼 보였어?"
"응. 언니는 항상 웃는 얼굴로 밝게 이야기하는데,
세월호에 가까이 갈수록 표정도 목소리도
어두워졌거든. 언니는 거기서 친구들을 잃었잖아."
"시원이는 세월호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어?"
"나한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

말하는 내내 시원의 눈에 슬픔이 차올랐다. 하지만 울지 않았다. 시원은 몇 번이고 눈물을 삼켰다. 감히 울지 않겠다는 듯이.(p.12)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이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10주기. 어른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에 대한민국의 아동청소년이 의문을 품고 질문을 한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고 절망하지 않을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딸아이가 연극을 보고 세월호에 대해 물었을 때, 정확하게 말해 줄 수 없던 부끄러움을 언제쯤 떨쳐낼 수 있을까. 주희 씨가 목포신항에서 세월호를 바라보며 물었던 질문에 우리는 어떤 얘길해야 할까.

이 배를 보면 어떤 마음이 들어야 정상일까요?
수학여행에서 돌아와 동아리활동도 하고 학생회장선거도 했을 아이들.






남기고 싶은 문장


(생존자 김도연님 에세이 중)

p.146 저마다의 방법으로, 저마다의 속도로 충분히 애도하고 아파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너그러이 기다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최소한 같은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인정하고, 책임지고, 준비하는 사회가 될 수는 없을까. 우리가 말하는 '기억'은 그런 차원이다. 우리 모두 그날을 아프게 떠올리며 머무르자는 이야기가 아닌, 2014년 4월 16일을 잊지 않음으로써 미래에는 다시 상처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세월호 너머의 가치를 잊지 않고 기억하자는 호소이다.


(미류님의 해설 중)

p.152-153 이태원 참사 이후 국가는 애도 기간을 정해 슬퍼하라고 했다. 누가, 무엇이, 왜, 어떻게 사라졌는지 함께 헤아리자는 제안이 아니었다. 슬픔의 크기와 시간을 정해놓는 대신 부재는 지워버렸다. 애도는 슬퍼함이 아니다. 상실을 대면하는 '용기 냄'이다. 부재의 자리에 무엇이 존재했는지 함께 알아갈수록 슬퍼할 용기가 난다. 애도와 기억을 위해 기록과 장소와 의례 등 물질적인 것이 필요한 이유도 그렇다. 세월호 참사 이후, 그전에 있던 다른 많은 참사를 복기하게 되면서 그와 관련된 추모비들이 밑도 끝도 없는 장소에 덩그러니 방치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함께 알아가며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잊히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처럼.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4.16 생명안전공원이 아직 착공도 하지 못한 현실은 우리 사회가 어디쯤에 멈춰 있는지 깨닫게 한다. 기억의 장소에 잡초가 무성하다.


p.158 '반공'이 기본값처럼 장착되어 있는 한국 사회에서 '빨갱이'나 '종북' 같은 말은 누군가를 손쉽게 배제할 수 있는 근거가 되어왔다. 그와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점점 더 많은 집단이 적으로 지목되어 왔다. 경제를 망치는 것은 노동조합이고, 범죄 위험을 높이는 것은 이주민이고, 청년의 기회를 빼앗는 것은 페미니스트이며, 장애인과 노인은 사회에 짐이 될 뿐이라면서. 세월호 참사 당시 선내 방송 바송으로 전달된 '가만히 있으라'는 메시지는 많은 이들이 언젠가 어디선가 들어본 말이었다. 어린이라서 , 여성이라서, 장애인이라서, 노동자라서……. 이유는 다양했을 것이다. 하지만 익숙했다. 다르게 생각하거나 다르게 움직이는 것은 공동체를 위기에 빠뜨린다는 논리였다.

'가만히 있으라'고 강요당하는 이들은 사회를 위험에 빠뜨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가장 먼저 위험에 노출되는 사람들이었다. 노동하면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더 많이 사고를 당했고, 차별의 구조에 갇힌 여성이 일터에서 일상에서 더 많은 범죄에 노출되고 있었다. 이미 자리를 빼앗긴 사람들이 생명과 안전의 권리도 잃어온 것이다. 시원이 "어린이는, 자리가 없는 관객 같아요."(25쪽)라고 말할 때 그것은 우리가 겪는 재난의 본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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