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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명자 Aug 20. 2024

"니 내 없이 우예 살래?"

- 우리 부부의 마지막 대화 -

    

 중환자가 되어 누워있는 남편은 지금 말을 할 수가 없다. 의사 표현도 전혀 안 된다. 이런 남편이지만 최근에 간절하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 하나가 생겼다.  “여보, 처음 나를 만났을 때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 이젠 영원히 들을 수 없는 남편의 대답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고 안타깝기만 하다.     


 내게 남편이 똑 같은 질문을 한다면 “처음 만난 날 입었던 연한 핑크 셔츠 위로 화사하게 빛나던 얼굴빛, 뚜렷한 이목구비, 남자답고 박력 있는 목소리, 앞도 뒤도 재지 않고 성큼 성큼 내 마음으로 들어왔던 당신이 나의 운명이라는 것을 나는 금방 알아차렸지.”라고 대답해 줄 텐데…….   

  

  마지막은 삶에서 느닷없이 찾아온다. 그 당시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아, 그것이 마지막이었구나!’ 깨닫게 될 때가 있다. 교통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만남이 그랬고, 암으로 투병 중이던 엄마를 병실에 두고 집으로 돌아온 그 때가 마지막 만남이었음을 뒤늦게야 알게 된 것처럼.     


  남편과의 마지막 대화도 시간이 한 참 지난 다음에야 알게 되었다. 작년 8월 초, 뇌세포가 급격하게 죽어가는 시한부 희귀병 진단을 받기 전, 남편은 말 수가 줄고 질문에 맥락 없는 말로 횡설수설했다. 그러다 점점 말을 잃어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완전히 말문이 닫혀 버리고 말았다. 그 순간을 정확하게 인지할 수만 있었다면 남편에게 얼마나 많은 질문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그 무렵 우리는 어이없게도 귀한 시간을 싸우느라 허비하고 말았다.     


  남편은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멀쩡한 사람을 환자로 몰아간다고 내게 화를 냈다. 나는 남편 몰래 ‘남편의 증세를 증명해 주는 기괴한 행동들’을 동영상으로 찍어 의사에게 보여주며 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뭉크의 작품 ‘절규’처럼 괴로운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고 몸을 흔들거나 경련을 일으키고, 손과 팔을 덜덜 떠는 증세는 누가 봐도 심각한 병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남편은 의사에게 큰 소리로 과장되게 대답을 하면서 자신의 건재함을 증명하려고 애를 썼다.    

  

 시도 때도 없이 화를 내는 남편과 병에 대한 정확한 증세를 의사에게 알려주려는 나는 자연스럽게 사이가 나빠졌다. 뇌신경계 병 자체가 원래 화를 많이 내는 특징을 가졌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는데 나는 남편이 본심으로 화를 내는 건지 병의 증세로 화를 내는 건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남편이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우리는 대화를 거의 하지 않았다. 나는 남편의 병명이 어떻게 나올지 걱정을 하며, 간병에만 신경을 썼다. 식사를 챙기거나 화장실 데려 갈 때만 아주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루하루 증세가 급격히 나빠졌다. 의사 선생님이 처방한 약은 스테로이드제로 한 번에 여섯 알씩 세 번을 복용해야만 했다. 고용량 스테로이드제는 남편을 극한의 괴로움에 빠지게 했다. 밤에는 몽유병 환자처럼 소리를 지르고 몸을 흔들었다.    

 

  서서히 몸에 힘이 빠지고 말을 잃어갈 때쯤 남편도 조금씩 병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 같다. 부축을 받고 겨우 화장실에 다녀온 뒤 휠체어에서 침대로 옮기고 눕혔는데 남편이 느닷없이 “니 내 없이 우예 살래?”라고 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별 소리를 다하네? 잘 회복해서 빨리 집으로 가야지.” 라고 얼버무렸다. 남편은 의사와 내가 남편을 따돌리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죽을병이라는 것을 이미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 때는 그 말이 우리의 마지막 대화일지 꿈에도 몰랐다. 그 뒤로 병세가 급격하게 나빠져 음식을 목으로 넘길 수도 말을 할 수도 몸을 움직일 수도 없게 되었다. 많은 것의 마지막이 그렇게 빨리 우리 곁에 찾아올 줄 몰랐다.


  남편이 아프기 시작하고 벌써 1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남편이 했던 마지막 막을 떠올려 본다. 그 말 속에는 함께했던 연애와 결혼생활 34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내가 원한다면 별도 달도 다 따 줄 것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와 주고, 좋아하고 행복해 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해주던 연애시절. 결혼을 하고 두 딸을 낳고 키우며 때로는 갈등으로 힘겨웠던 순간들을 지내오고, 각자의 삶에서 최선을 다해오고 성장하며 동반자로서 응원하며 함께 했던 시간들. 부모님과 형제들과 많은 추억을 함께하고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세월의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이 그 말 속에 담겨있다. 그 말 속에는 끝까지 남편으로서 아내를 책임지지 못하고 이렇게 누워있는 자신에 대한 자책도 느껴진다. 그리고 그 말 속에는 끈끈한 부부애, 동지애, 사랑, 우정, 이러한 것들이 스며들어 있다.       


  다시 처음 남편이 병원에 입원해 있던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고 행복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 그 순간의 감정과 기분에 매몰되어 날려버렸던 그 귀한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신이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 대화가 될 테니 이야기를 나누어 보세요!”라고 한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할까? 또 남편에게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들에게 찾아오는 마지막 순간을 알 수는 없지만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표현하고 마음을 다한다면 후회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안다. 서로 주고 받으며 대화를 할 수는 없지만 오늘도 살아있는 남편에게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간병하고 사랑을 표현한다. 남편을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고, 아프지 말라고 귓가에 속삭인다. “사랑해요! 여보!”라고 다정하게 입맞춤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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