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변의 발화 Nov 05. 2022

합격이 피기 까지

시험준비생에게 합격의 목마름이란!

 공부를 하는 동안 선선한 날도, 따뜻한 날도 분명 있었을텐데, 공부를 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좋았던 날보다 너무 추웠거나 더웠던 날이 떠오릅니다. 저는 합격하던 해에는 신림동에서 공부를 했었습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신림동은 전통적으로 고시생이 많은 동네였는데, 저는 고시를 준비한다기 보다는 수험생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꼭 합격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저 스스로를 고시생이라고 여겼고, 그들과 어울려 공부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생활을 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혼자서 공부를 했는데, 실패를 모르는 수험생들의 왁자지껄하고 해맑음이 고독보다 훨씬 싫고 무서웠던 것 같습니다. 고시생들이 있는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고 고시식당에서 점심과 저녁을 혼자 사 먹었습니다. 함바집이라고 할까요, 동그란 접시에 밥, 반찬을 떠먹는 고시식당에서 열심히 밥을 밀어넣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에 네이버 뉴스도 보고, 판례도 찾고, 누가 내 옆에서 밥을 먹는지도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저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사법시험 출신 변호사가 아니고, 학부에서는 법과 전혀 상관없는 전공을 했습니다. 게다가 학부에서 잘 유지하던 학점은, 오히려 법학개론 B+을 받아 제 평균 학점이 깎였씁니다. 사실 외워서 보는 객관식은 꽤나 잘 봤는데, 서술형 시험에서 점수가 낮은 것을 보고 혹시 법 공부가 이런 건가, 나랑은 안맞나?하는 생각도 잠시, 나도 멋진 직업을 해보고 싶다는 지적 허영심이 저를 압도했던 것 같습니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입학요강만 보고 법학전문대학원에 지원했고, 원래부터 대학원 진학을 위해 차곡차곡 관리해둔 학점, 어릴 때 외국에서 살다와서 높은 영어점수, 그리고 아이큐테스트 같은 리트에서 고득점. 이렇게 얼떨결에 의외로 좋은 성적으로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법학전문대학원을 다니던 시절은, 생각하려고 해도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 몇 년의 제 인생에서 가장 비참하고 비겁한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비도덕적인 일을 한 것도 아니고, 공부를 잘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저는 매 순간이 너무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저에게는 멘토도, 친구도 없었거든요. 공부를 잘하던 동기들과 가까워지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얕은 지식이 들킬까 두려워 스터디에도 끼지 못했습니다. 나름대로는 입학 전에 선행학습을 한다고 엄청나게 했는데, 계약법 수업시간을 두세번 겪고 나니 제가 예습한 민법의 진도는 이미 추월당했습니다. 법학의 기초도 모르고 입학한 곳에서 나는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 지를 몰랐던 것 같습니다. 분명히 뭔가를 공부했는데, 교수님의 ‘법률행위의 정의를 말해보라’는 질문에 저는 입을 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부유물처럼 물에 떠다니다가, 질문하기 좋아하는 교수님들의 표적이 되곤 했고요. 적당히 공부를 못하면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을텐데, 특별히 공부를 못하는 애, 그게 저였고, 겨우겨우 졸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변호사시험에 떨어졌습니다.



 근소한 차이도 아니고  차이로 떨어졌기 때문에, 저는 더더욱 방황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시작해서 겨우 붙었는데, 아주 고득점이라고는   없지만 커트라인보다는 꽤나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나름의 고시생활이 저에게  영향은 꽤나   같습니다.  시점을 기준으로 성격도, 가치관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사실 신림동 생활을 생각하면,  스스로가 불쌍해서 눈물이   같은 마음입니다. 마음이 급해서 카페에서 1500원인가 하는 에그샌드위치만 급히 사먹고 나가는 일도 종종 있었는데, 카페 주인 분이 저에게 종이컵에 우유를 한잔 따라주신 적이 있습니다. 호의라고 생각해서 엄마에게 얘기했더니, 내색은 안했지만 속으로 얼마나 불쌍하게 다녔나 싶어서 눈물이   했다고 말씀해주신 적도 있네요. 신림동 고시촌은, 지금  모습을 보고 고시생일 때가 있었다니, 정말 안어울린다는 남편과 언젠가 한번 방문해보고 싶은 곳이기도 합니다.



 용돈을 넉넉하게 받는데도 불구하고,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 한잔을 사는 게 아까웠습니다. 내가 그만큼 공부를 했나, 정말? 내가 지금 4,100원짜리 커피를 마셔도 되는 거야? 이런 생각이 저를 가득 채웠고, 통장 잔고에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 저 자신에게 잘해주어야 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한 게 맞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점검했습니다. 신림동 고시촌에는 스타벅스가 없었기 때문에, 신림동에서 1,500원짜리 커피를 마시거나, 타 먹는 가루커피를 사서 마셨습니다. 자기 비하라고 해야 할까, 평가 절하라고 해야 할까. 중고서점에서 깨끗한 책을 골라서 사고, 지하상가에서 9,900원짜리 옷을 사입었습니다. 왜 그렇게 궁상맞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학원비 빼고는 모든 것을 아꼈던 것 같습니다.



 합격한 지 몇 년이 지났고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당시에 꾸던 꿈이 지금 이루어진 수준으로 행복합니다. 그런데도 날씨가 차가워지면, 최신판례를 공부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아직도 제 몸과 마음에 깊게 새겨져있는 변호사시험. 한번에 합격하지 못해서 많이 힘들고 속이 상하기도 했고, 사실 초시에 합격한 분들은 이렇게 떨어져봤기에 더 아쉽고 절실했던 제 마음을 이해하진 못할 것 같습니다. 다만 노력해서 얻은 값진 자격증, 앞으로 감사하며 오래오래 잘 사용해보려고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일생의 고락과 원나잇도 함께 겪던 부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