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양반들의 그릇은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매끈한 도자기였고, 서민들의 그릇은 도공들이 대충 만든 막사발이었다. 그 그릇을 본 일본인들이 '잘 만들겠다는 욕심 없이 무심의 상태에서 만든 그릇'이야말로 자연스러운 미가 있다 하여 일본으로 가져가 국보로 삼았다고 한다.
미의 기준, 부의 기준, 생각의 기준이 뭘까.
가치 통일의 시대가 된 지 오래다. 대학은 sky, 지역은 강남 3구, 직업은 '사'자를 찾는다고들 한다. 이화여대 미인선발대회인 메이퀸이 일제강점기부터 있어 왔는데 1978년에서야 폐지되었다.
심리학에서는, 절대적 기준이 들어서면 그에 다다르지 못한 사람들은 은연중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나라를 뒤흔들 만큼 미모였다는 양귀비는 지금 보면 살집이 있는 후덕한 외양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워낙에 못 먹던 시대라 통통한 여자를 예쁘게 보았다고 한다. 절대적 기준이란 게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일까.
좋아하는 도덕경의 한 구절이다. "성인은 (...) 낳고는 낳은 것을 가지지 않고, 하고는 그 한 것을 뽐내지 않으며 공을 이루고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남에게 베푼 건 모래 위에 새기고, 받은 건 바위 위에 새기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한고조 유방의 왼팔은 한신, 오른팔은 장량이었다. 두 유능한 장수의 도움으로 유방은 한나라를 세웠다. 개국공신이었던 두 사람 중 한신은 제후가 되어 권세를 누렸고, 장량은 나라를 받았으나 사양하고 떠났다. 한신은 결국 유방의 경계심에 죽임을 당한다(토사구팽). 큰 공을 세웠으나 공치사하지 않고 그 지위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부귀영화를 뒤로하고 훌훌 떠날 수 있었던 장량의 도량이 부럽다.
운동을 배울 때 흔히들 '힘 빼는 데 3년'이라고 한다. 운동뿐이랴. 많은 일들이 너무 힘(욕심)을 주어서 망쳐진다. 마음에서도 기름기를 빼고 가볍게 해야 할 텐데... 며칠 전 작고하신 김민기 선생님의 "부의금 받지 말고, 오신 분들이 밥을 넉넉히 드시게 하라"는 전언이야말로 마음의 힘을 덜어낸 가벼운 마음의 좋은 본보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