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4년 차 직장인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세요
일을 시작한 지 지난주로 딱 3년을 채웠다.
감개무량하다거나, 감회가 새로워 기념이라도 하고 싶다는 심정은 아니지만 그래도 처음 맞는 꽉 채운 3년, 이라는 것이 새삼스럽기는 하다. 내 마음속에서 만 3년 미만, 이라는 타이틀을 약간의 방패처럼 끌어안고 있기도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나만의 핑계로 사용할 수도 없게 되었다. 온라인 게임 속에서 쌩초보 표시 잃어버린 초보의 기분이다.
하다못해 일에 대한 권태기마저 3의 배수 단위로 온다는데, 난 권태기는 모르겠고 위기는 3의 배수 단위로 만나고 있다. 그 위기 만나는 간격이 3초, 6초, 9초 단위에서 3일, 6일, 9일 단위로 늘어난 게 자랑이면 자랑이다. 해도 해도 모르겠어서 한탄이라도 하고 싶은데, 내 친구들은 아직도 날 만나면 -들어봤자 또 모르겠지만- 그래서 네가 하는 일이 뭐였더라...부터 종종 시작하곤 한다.
기다란 선에 사람들의 업무능력을 점처럼 찍어본다 했을 때 나는 지금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을까? 평균에 도달은 했을지 궁금하지만 알 방도가 없다. 대체로 직급이란 것이 그 판단을 돕지 않을까 싶지만 내가 다니는 회사는 직급의 개념이 희박해서 애매하다. (무언가 알파벳으로 이 정도 직급의 일을 해낼 수 있다,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오픈된 정보도 아닐뿐더러 그래서 이게 어느 정도라는 건지 감도 잘 오지 않는다.) 눈 가리고 달리기 하는 기분도 들고. 그렇다고 주위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보자니, 직군이 달라도 너무 달라 비교하는 의미가 없다. 누구는 3년 차에 대리 못 달고 있으면 일 못한다는 증거라고 웃고, 누구는 3년 차에 주임 정도면 딱 적당하다고 갑론을박하다 각자의 월급에 다다르곤 됐다, 의미 없다며 시무룩하게 흐지부지되니까.
결국 검색창으로 돌아가 묻게 된다: 주니어의 기준은 어디까지일까?
여기에서마저 사람들의 기준은 제각각이다. 누구는 3년. 누구는 5년. 누구는 그냥 개개인의 능력에 달린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아팠다.) 인생에 공략집이 있었다면 얼마나 편하고 좋았을까. 그렇지만 결국 자신만을 위한 공략집을 만드는 것 또한 인생의 한 부분이다.
그러니 결국 내 주위의 시니어를 보면서 열심히 베끼는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팀 내 배울만한 사람이 많은 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지점이 행운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1/일을 시작할 때에는 핵심을 짚어 파악할 수 있으며 2/일을 진행할 때면 바로 다음 단계만 바라보는 대신 조금 더 넓은 시야를 통해 놓친 경우의 수가 없게 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3/그리고 장애물에 부딪혔을 때 마냥 직진만 하기보단 더 괜찮은 우회로를 잘 찾아내는 것 까지.
말로 정리하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싶다가도 정작 상황이 닥치면 우왕좌왕 당황하느라 바쁘다. 익숙한 문제가 아닌 새로운 문제를 마주하면 그 순간부터 누군가 내 머리 뚜껑을 열고 스트레스를 다이렉트로 퍼붓는다. 새로운 일이 싫지는 않지만 새로운 일에서부터 벌어지는 시행착오-일까 그냥 못하는 걸까-는 악몽과도 같다. 나쁜 버릇이다. 계속 일이라는 걸 하다 보면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겠지, 기대하다가도 영 그렇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곤 한다. 상상 속에서다로 처음 겪는 일이 아니게 된다면 대처할 때 조금은 그럴듯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와 함께.
3년이 지났다고 주니어를 벗어나겠다 생각하는 것은 꽤 오만한 가정이지만 (무엇보다 나 스스로 벗어났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천년만년 지금의 수준에 머물 수도 없을 것이다.
머물게 된다면 그 또한 어떤 의미에서의 재앙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니 뭐라도 해볼 수 있도록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