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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백 Apr 13. 2021

조기유학을 가면 정말로 다 좋을까? -1-

'조기' 유학

  해외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하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몇 가지 있다. 어쩌다가 유학을 가게 되었는지, 그러면 그 언어는 정말 잘하겠다던지, 가서 지내는 건 어떠했냐든지. 그리고 여기에 자녀가 있는 경우, 종종 위의 질문도 하나 더 포함되곤 한다. 당사자로서 느끼는 조기유학의 이점.

  마지막의 질문에는 언제나 대답하기 어렵다. 이점보다는 단점이 먼저 주르륵 떠오르다가도, 그래도 이런 부분은 좋았지, 싶은 애매한 태도가 되곤 하니까. 그래도 생각해본 적 있는 주제를 두서없이 풀어볼까 싶다.



  조기 유학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앞 두 글자가 아닐까. 조기. 아이의 육체적, 정신적 성장이 가장 격동적일 시기에 생활의 근간을 바꾸어버린다는 것.



'조기' 유학

  어느 정도 본인의 심각한 고려와 미래에 대한 설계가 함께하는 성인의 유학과 미성년자의 유학은 본질적으로 조금 다르다. 배움의 수준도, 그 계기도.


  미성년자의 해외 유학은 대체로 두가지 케이스로 나뉜다. 양육자의 직장 탓에 어쩔 수 없이 해외에서 학업을 이어가야 하는 경우. 혹은 명백히 교육의 목적을 띄우고 아이만 해외로 보내게 된 경우. 사실 어느 쪽이든 조기유학이라는 결정이 떨어질 때에, 아이의 결정이 그렇게까지 중요하지는 않다. 일종의 학원 보내기인 셈이다. 규모와 거리가 남다른.

  초등학교 졸업을 목전에 두고 있었을 가을과 겨울 사이, 집 안에 갑자기 한자로 가득한 무언가의 중학교 소개 브로셔들이 차곡차곡 쌓인 상태에서 내게 건네진 권유 또한 권유라기보다 일종의 결정 통보와 비슷했다. 자연 내 입에서 나올 대답도 비슷했고. 사실 그 대답에 별다른 유감도 없었다.


그러니까 별로 간절하지가 않다.

  그리고 이것이 대체로 해외의 땅을 막 밟은 대다수 어린 유학생의 마음가짐 아닐까. 어릴 때, 그러니까 경제적으로 내가 무얼 하고 무얼 하지 않겠다는 결정권이 없을 시기에 유학을 막 시작한 학생들은 대체로 비슷하다. 해외에서의 학업이 양육자에게 있어 얼마나 수고로운 결정인지, 그로 인해 얻어갈 수 있는 이득이 많은 시기인지에 대한 인지도, 관심도 비교적 없다. 그저 원래 하던 한국 게임이 해외 서버 IP를 차단했다는 사실이 불만스럽고, 외국어라는 변수까지 추가된 숙제와 시험은 여전히 싫다. 미래 설계에 대한 계획보다는 당장 내가 속한 무리에게서 소속감을 얻는 것이 조금 더 행복하다.


  처음 유학을 고민하고 있다면, 고민의 시작부터 아이와 함께하는 편이 훨씬 건실한 결과를 가져오리라고 믿는다. 위에서부터 정해져 내려오는 결과는 언제나 마음 편하지만 동기 부여의 목적으로는 이상적이지 않다. 그 과정에서 당사자가 참여한다면, 단순히 유학의 목적을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라는 없으니 못한 목적이 아니라 조금 더 생기 있는 방향으로 구체화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다못해 어느 도시가 좋을지 후보지를 추려서 이런저런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해당 국가의 문화에 대한 흥미부터 키워놓는 것이겠지만. 책이나, 영상 매체, 아니면 크리에이터라던지. 그 국가에 발 디뎠을 때 아무것도 모르더라도 신나 활개쳐 섞여 들어갈 수 있는 무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간혹, 유학생활을 이보다 빨리 시작한 경우 이 소속감이라는 것에서부터 드물게 발생하는 부수적인 문제가 있다. 대체로 초등학교 저학년 , 혹은 그전부터 해외에서의 학업을 이어간 경우의 일인데, 국가에 대한 정체성이다.


그래서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데?

  대체로 국가를 불문하고 일반적인 초등 교과에서는 내가 속한 사회와 국가에 대해 학습한다고 믿는다. 국가 불문의 옳고 그름 외에도 국가의 근간이라던지, 이 사회가 무엇을 중요한 덕으로 여기며 어떤 정신적인 가치(이를테면 우리 민족의 얼이라던가)를 믿는지에 대해. 이후 지겹도록 살아갈 사회에 대한 일종의 톤앤매너를 배우는. 그리고 여기에서 간극이 생긴다. 학교에서는 빨간 홍링진을 맨 채 오성홍기를 계양하고 의용군 행진곡을 부르는데, 하교하고 집에 오면 오늘 밤 있을 한일대항전의 관전 포인트에 대한 설명이나 삼일절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는 것이다. 

  일평생 전쟁을 피해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았던 마르크 샤갈의 그림 속 발 끝이 언제나 허공을 부유하던 것처럼, 태어난 국가와 자란 국가가 다르면서도 양립되는 미묘한 상황이 빠르게 정리되지 않는다면 심적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 있다. 


  이 문제는 대체로 성장하고, 대학교와 진로를 정하며 자연스레 해결되는 문제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해서 겪을 가능성 있는 문제를 그대로 방치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대체로 내가 봐온 양육자들은 대체로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스스로를 한국인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리라 확신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 자체를 그다지 꺼내지 않곤 했다. 아무래도 본인이 겪어본 적 없는 일에 대해서는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일종의 교통정리 실패다.






  아이를 해외 환경에 던져두기만 한다고 모든 것이 마법처럼 해결되지는 않는다. 되려 더 많은 문제와 함께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외국어 능력마저도!) 

  그러니 아이 때에는 스펀지처럼 지식을 빨아들이기 때문에 성인이 된 후의 유학보다 훨씬 낫다느니, 지금 때를 놓치면 영영 놓친다는 속삭임들에 굳건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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