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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베르 Nov 20. 2021

죽은 갯벌

은하수를 처음 본 자리를 다시 찾아갔다

열일곱 살의 추억을 되찾고 싶었다

기차역에서 두 시간을 달려 서해 바다에 도착했다


열일곱, 그때 우리는

그때 우리는 썰물 때 헤엄치고 있었다

모든 근심과 걱정을 서해 바다에 버린 채로

멀리, 더 멀리, 발이 닿지 않는 곳까지

무한히 나아갔다


밤새 은하수의 눈물이 뚝뚝 떨어져

청포대 해수욕장을 푸르른 물로 가득 채운 걸까

내가 아는 서해 바다는 누르스름한 색깔이었는데

왜 그날만큼은 유독

반짝이는 태양 아래에서 에메랄드 빛을 띠던 걸까


그것이 스물이 되기 전 내가 마지막으로 바라본 바다의 형상이었다


스물셋

아버지와 나는 기차역에서 두 시간을 달려 그곳에 이르렀다


바닷가에서 나는 다시

열일곱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나의 삶이 그날의 은하수를 다시 머금을 수 있을 거라고

차가운 가을바다에 몸을 담근 그날의 잔잔함이 돌아올 거라고

부질없는

착각 아닌 착각을 했나 보다


그러나 차에서 내려 해수욕장에 발을 디딘 순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음을 느꼈다

여름바다, 전염병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띄엄띄엄 피서객들은 존재할지언정

나의 은하수, 나의 친구들, 나의 눈물, 나의 추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스물셋의 청포대에서 열일곱의 청포대를 찾을 수 없었다

추억은 시간의 폭풍을 견디지 못하고 침식되었다

나의 갯벌은 죽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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