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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죽이고 싶은 엄마에게 / 한시영

깊은 사랑이 데려다준 깊은 이해에 관하여

by 혜영

은유작가님의 글쓰기수업을 같이 들었던 학인이 책을 출간했다. 오랜시간 그녀가 성실히 글을 써왔음을 알았기에 출간이라는 그녀의 소망을 결국 달성한 것이 놀라우면서도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나와 들었던 글쓰기수업 이후에도 다른 글쓰기수업에서 몇년간 일주일에 한편씩 글을 쓰고 합평을 받았다는 그녀. 같은 워킹맘이지만 아이가 둘에 참여하고 있는 모임이 많아 바쁜것으로 따지면 나와는 비교도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글까지 꾸준히 써왔다니. 그녀의 성실함은 종종 경이롭게 느껴졌는데 이 책을 읽고 그녀가 글쓰기에 왜 그토록 필사적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은유작가님 글쓰기수업에서 그녀가 처음 발표한 글은 바로 어머니의 장례식에 관한 글이었다. 알코올중독자인 어머니를 오랜 시간 돌봤고 갑작스레 돌아가신 어머니의 장례를 치뤘다는 그녀의 글은 강렬했다. 알콜중독까진 아니지만 알콜의존이 의심될 정도로 술을 좋아했고 도박은 중독이 확실했던 나의 아빠가 떠올랐다. 난 성인이 된 이후 아빠와 서서히 멀어졌고 대학졸업 후 취직한 그 해에 아빠는 심장질환이 악화되어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나는 아빠를 떨쳐내는게 언제나 가장 큰 과제였는데 그녀는 돌봄을 받아야 할 나이부터 이미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엄마를 돌봐야하는 영케어러였다.


책에는 엄마와 함께했던 그녀의 어린시절 기억부터 지금의 딸 둘을 키우는 자신의 이야기, 그리고 삶의 고비고비마다 그녀에게 온기를 전해준 이들이 등장한다. 엄마의 사랑을 갈망했던 작은 아이는 잘 자란 어른이 되어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으나 자신의 엄마를 향한 복잡한 감정들을 어떻게든 해석하고 이름을 붙이는 것이 가장 큰 과제가 되었다. 그것이 그녀로하여금 글쓰기를 지속하게한 동력이었을것이다.


세상에는 부모의 죽음을 속시원해하는 자식이 있다. 그녀는 엄마가 돌아가셨을때 사실은 시원했다고, 드디어 중독의 족쇄에서 풀려났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엄마를 떠올리면 슬픈데 그립지는 않다고 말한다. 나도 그렇다. 아르바이트로 벌어놓은 내 첫학기 대학등록금을 빌려가 도박으로 날려버린 아빠. 이후에도 알바와 학교생활로 정신없던 내게 종종 연락해 (도박할) 돈을 빌려달라고 했던 아빠. 돌아가실 당시엔 슬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종종 생각한다. 일찍 돌아가셔서 나에게 정말 다행이라고.


난 그녀처럼 아픈 아빠를 돌본적도 없는데 아빠가 살아있었다면 나에게 지웠을 짐이 너무 똑똑히 보여서 이런 생각을 한다. 약간의 죄책감은 느끼지만 그 감정이 나를 힘들게 하진 않는다. 아빠와 함께했던 삶에서 좋은 기억은 10~20%정도고 나머지는 죄다 나쁜 기억뿐이다. 나는 아빠때문에 고생한 내가 제일 불쌍하고 아빠도 없는 내가 종종 안쓰러울 뿐, 아빠가 돌아가셔서 안심하는 이 감정에 큰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나와 다른 사람이었다. 엄마를 미워하고 원망한 어린시절부터 그녀는 죄책감을 느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엄마를 돌봤음에도, 내가 볼 땐 엄마를 미워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움에도 그 감정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좀 더 선명히 들여다보기 위해 계속해서 글을 쓰다 알게된다. 어떻게 엄마라는 사람이 저러냐고 물을게 아니라 어떻게 저런사람이 엄마를 해냈을까라고 물어야 함을.


한 사람을 깊이 사랑하면 결국 깊은 이해에 도달하게된다. 하지만 나에게 상처를 준 대상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이해까지 하려 애쓰는 일은 너무 고통스럽다. <죽이고 싶은 엄마에게>는 그럼에도 그 일이 필요한 일임을 알게 해 주었다. 책의 마지막 에필로그인 엄마의 사과편지는 딸이 엄마의 마음이 되어 쓴 편지다. 결국 이렇게 엄마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구나. 그녀의 필사적인 글쓰기가, 엄마를 향한 애증이, 삶의 고비고비마다 그녀의 상처를 보듬었던 이들의 사랑이 그녀를 이 깊은 이해의 자리까지 데려다 주었구나. 글은 너무 마음아팠지만 눈물이 왜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해주는 글이라고 느꼈다.


난 아빠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그녀만큼 절박하지 않다. 왜 그렇게밖에 못살았을까 궁금하지만 엄마와 이혼 후 홀로 나를 키우기로 선택한 그 마음을 생각하면, 아빠로서 참 무책임했음에도 잊지못할 몇개의 따뜻한 우리의 추억을 생각하면, 그를 100% 미워할수가 없어 종종 더 화가나고 복잡해진다. 이 감정은 내 마음한켠에 평생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을것이다. <죽이고 싶은 엄마에게>에 담긴 그 이해에 나는 도달하지 못할 것 같다. 자신이 없다. 그래도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준 그녀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싶다. 이 책을 읽을 수 있어 정말 좋았다고, 글을 쓰느라 정말 고생이 많았다고, 우리는 꼭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가 받고싶었던 그 사랑을 듬뿍 주는 부모가 되자고 이야기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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