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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묘 Sep 28. 2022

(에세이) 20. 매 달 24일을 '사과 데이'로.

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 <달콤한 인생> 초반부에 나오는 내레이션이다. 어느 가을 낮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다.


후련한 이별이 있는가 하면, 미련이 남는 이별도 있다. 


주말 낮 침대에 기대 스미노 요루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읽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내 취향의 책은 아니지만, 현재 쓰는 소설에 도움이 될까 싶어 읽게 됐다.- 보통 낮잠은 길어야 2시간밖에 못 자기 때문에 꿈을 꾸는 일은 거의 없었다. 소설 속 시크한 남 주인공과 귀여운 여 주인공에 한 껏 몰입했던 탓이지 몽글몽글한 감정에 젖은 상태로 잠이 들었고 꿈까지 이어졌다. 꿈속에서 전 여자 친구는 환하게 웃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는 한창 연애 중이었던 것 같다. 


추억의 한 페이지를 아름답게 장식해준 그녀. 비록 지금은 헤어진 지 오래지만, 꿈속에서는 연인 사이 었다. 잠에서 막 깼을 때 꿈속에서 그녀와 어떤 대화를 했고, 어떤 일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지만 애틋한 감정만은 느낄 수 있었다. 그 감정이 얼마나 컸던지 잠에서 깼음에도 한동안 그녀와 연인 사이라는 착각이 들었다. 잠이 다 달아나 정신을 차렸을 때, 심해의 어둠 속에 던져진 큰 쇳덩이에 매달려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슬픔에 잠긴 사람처럼 얼굴은 울상이 되었다. 아쉬운 마음이 점점 커지자 허무 맹랑한 상상 하나가 머리를 스쳤다. 사고로 기억 상실증에 걸린 척 연기를 하는 것이다. 헤어진 기억만 도려내 져서 난 아직 연애 중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핸드폰 메모장을 켜서 이 내용을 적고 곧바로 다시 잠이 들었다. 실제로 실행할 용기는 없지만, 짧은 소설이라도 써 볼 심산으로 기록한 것이다.


꿈에서 만난 그녀와 이별한 이유는 감정이 식었다기보다 사과할 타이밍을 놓쳤다. 살다 보면 사과할 타이밍을 놓쳐 멀어져 버린 사람들이 종종 떠오른다. 보통은 카카오톡의 친구 목록을 보다가 발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길을 걷거나 운동을 할 때 떠오르기도 한다. 이 사람들이 잊히지 않고 내 머릿속을 떠도는 이유는 아쉬움이 남아서 일까? 감정이 충돌할 때는 부정적인 생각에 몰입해 '사과'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조차 없다. 한참이 지나야 뜨거운 감정이 서늘해지고 이성은 제자리를 찾는다. 그 순간 사과가 절실해지지만, 이미 우리 사이는 강을 건너 먼바다까지 흘러가 버렸다.


사과할 타이밍을 놓친 사람 중에 가장 아쉬운 건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이다. 모든 죽음은 무겁게 다가오지만, 특히 가족의 죽음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무게를 느끼게 한다. 평생을 짊어져야 할 것만 같은 무게. 올해 초 돌아가신 외할머니. 할머니를 모신 파주를 지날 때면 아직까지도 슬픔에 잠겨 눈시울이 붉어질 것만 같다.


'밸런타인 데이'나 '빼빼로 데이' 같이 외로운 사람을 더 외롭게 만드는 날이 다가올 때면, 차라리 매 달 14일을 사과할 수 있는 날로 지정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절실해진다. UN이 전 세계를 동참시켜 논의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사과만큼 가장 평화적인 해결법도 없으니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마흔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아직도 인간관계에 서툴다. 알량한 자존심 따위나 옹졸함 때문에 사과를 건네지 못했던 사람, 그렇게 멀어져 간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멋쩍게 연락해서 진심으로 '미안해' 한마디라도 건네고 싶다. 상대가 마음을 열면,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 실수했고 잘못했다"고 꼭 말하고 싶다. 그런데! 이미 10월 24일이 '사과 데이'라고 떡하니 있더라. 다른 14일처럼 기업 이권과 연결된 날이었으면 기업들이 열심히 홍보를 했을 텐데 냉정한 자본주의 논리에 씁쓸하다. 이번 10월 24일에는 사과를 꼭 해봐야겠다. "오랜만이야.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사과데이'래 미안해." 


꼭 날을 정해서 사과하는 것이 인위적이고 진정성이 안 느껴질 것 같지만, 이렇게라도 한 번 사과를 해보는 건 어떨까? 가장 좋은 건 매일매일이 사과하는 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언제든지 자기 실수를 시원하게 인정하고 바로 사과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물론 시작은 나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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