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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묘 Sep 30. 2022

(에세이) 21. 데칼코마니

짧은 단상들

역경을 겪을 때마다 나는 내가 특별한 존재로 느껴졌다. 평범한 사람들은 겪어 보지 못할 독특한 사건들이 나만 따라다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 몇 년간은 안정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이런 생각도 점점 옅어졌다. 사연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남의 눈에는 별것 아닌 일도 자신이 겪게 되면 특별한 일이 되나 보다.




사람들과 소통하기보다 혼자 사색하는 것을 즐기지만 가끔 대화가 통하는 상대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을 기회가 생긴다. 보통은 결이 같은 사람과의 대화에서 비슷한 삶을 보게 되는데,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 것 같은 사람이 내가 살아온 특별한 삶과 궤를 같이 하는 경우를 목도할 때가 있다. 솔직히 안타까움보다는 반가움이 몸안 곳곳에 차 오른다. 타인과의 만남은 문명과 문명의 충돌만큼 거대한 지적 집합체의 교류인데, 교집합이 크다는 건 그만큼 마음이 통하는 통로의 크기가 큰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은 그 존재만으로도 친절하고 아름답다. 심지어 비슷한 일을 겪고 그 일로 형성된 사고관 마저 같다면 운명 말고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은 '데칼코마니'처럼 닮았다는 표현을 빌려도 손색없다. 어쩌면 '데칼코마니' 같다는 말은 살면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치유일 것이다.




낯선 이를 신뢰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슷한 사람과 어울리고 싶어 한다. 학연, 지연은 물론이고 취미나 직장 내에서 만난 사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나와 비슷한 점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안심이 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연인을 찾을 때 더 극대화된다. 성격이나 처지, 지향점, 사고관 등 여러모로 닮은 사람과 통하는 것을 느끼고 호감을 가진다. 그런 면에서 사람들의 연애는 여행자들의 만남 같다. 어떤 이는 잠시 머물다가 방향이 달라 다른 길로 간다. 어떤 이는 방향이 같으면 짧은 구간이든 긴 구간이든 함께 움직이기도 한다. 그렇게 헤어져 영영 안 만나기도 하고 먼길을 돌아 다시 만나기도 한다. 떠나간 연인을 여행자라고 생각하면 떠나보내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흔히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 이상형이거나 그런 사람과의 연애를 꿈꾼다. 통하지 않는 사람과의 대화는 거미줄을 잘 못 쳐서 굶어 죽는 거미 꼴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상대의 출중한 외모나 재력에 끌려 연애를 시작했더라도 대화가 통하지 않으면 점점 답답함을 느낀다. 필히 마찰이 생겨 관계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가족 간에는 대화가 없다. 오히려 가족이 아닌 타인이 피가 섞인 가족 보다도 내 마음을 더 잘 헤아려 주기도 한다. 대화가 통한다는 건 어쩌면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만물은 통하는 길이 있어야 비로소 제 기능을 한다. 아무리 멋진 옷이라도 몸을 넣을 구멍이 없으면 입을 수 없다. 아무리 멋진 사람이라도 통하는 길이 없으면 관계가 깊어질 수 없는 것이다. 멋진 옷을 입으면 계속 입고 싶은 것처럼 통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계속 대화를 나누고 싶다.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전화로 이어져 6~7시간 대화를 나눠도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또 이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야 한다.




하는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운명이 정한 인연은 그런 사람이다. 이성을 만나려면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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