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산문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오묘 Oct 31. 2022

(에세이) 24. 중독 - (1)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 마약 청정국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심심치 않게 터지는 연예계 마약사건은 이제 별로 놀랍지도 않다. 약 20년 전, 필자가 중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에 불량 청소년이 손댈 수 있는 환각 물질은 기껏해야 본드나 부탄가스 정도였다. 요즘 청소년들은 SNS를 통해 직접 마약을 유통한다.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재배 방법으로 환각 버섯을 직접 기르는 경우도 있다. SNS의 익명성 때문에 범인은 잘 잡히지도 않는다. 기술의 발전이 늘 이롭지 않다는 걸 또 한 번 생각한다.


나도 한 때는 마약에 버금가는 온갖 중독 물질에 빠졌었다. 처음 담배였다. 담배를 처음 입에 문 게 초등학교 5학년 가을이다. 몇십 년 전 일이지만 기억이 또렷하다. 지금은 집 안에서 흡연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 시대에는 집 안은 물론 안방에서도 담배를 폈다. 사실 집 안에서만 흡연하는 사람은 양반이었다. 금연 구역이 따로 없던 시절이라 호텔, 버스, 식당 등 모든 곳에서 담배를 필 수 있었다. 드라마에서 고민하는 장면이 나올 때면 항상 연기자 손에 담배가 들려 있을 정도였다. 그 당시는 담배가 주는 이로움이 해로움을 덮던 시대였다. 아버지는 한숨인지 연기인지 구분이 안 되는 것들을 연거푸 공중으로 내뿜었다. 아버지가 내뱉은 희미한 회색 연기는 먹구름 같았고 때로는 솜사탕 같았다. 어린 나는 생각했다. 흡연은 아버지 같은 지긋한 어른들의 특권이자 어른이 되면 할 수 있는,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7살 터울의 우리 누나처럼 종종 속도를 위반한 청소년들은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내 첫 담배는 휴지였다. 나는 비록 공부보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더 좋아했지만 절대 불량 청소년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호기심이 엄청 많아 개구리를 찾아 산으로 떠날 정도의 아이도 아니었다. 방과 후 집에서 빈둥대는 내 눈에 곰방대가 보였을 뿐이었다. 조선시대도 아닌데 웬 곰방대냐고? 경주로 떠난 수학여행. 불국사를 관람하고 내려오는 길에 기념품 가게에 들러 아버지 선물로 곰방대를 하나 사 왔다. 그 시절 기념품 수준이 대부분 그 정도였던 것 같다. 빈 곰방대의 물부리(곰방대의 입에 무는 부위)를 물고 아버지처럼 담배 피우는 시늉을 했다. 후~ 하고 숨을 내뱉어 보기도 하고 뻐끔뻐금 거려보기도 했다. 연거푸 허공에 투명한 연기를 내뱉어 봤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담배 피우는 흉내는 똑같이 낼 수 있어도 회색 연기는 상상 말고는 만들어 낼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연기를 만들자!' 처음에는 신문지를 돌돌 말아 연소통(곰방대의 담뱃잎을 넣어 불을 붙이는 부위)에 꽂고 불을 붙였다. 신문지 뭉치는 불이 붙자 금방 타버려서 한 두 번 빨기도 전에 재로 변했다. 연초는 한 개비로 열대 번은 빨던데 신문지 뭉치는 연속성 면에서 형편없었다. 다른 대안이 필요하던 차에 휴지가 보였다.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휴지! 두루마리 휴지 두 세장을 돌돌 말아 연소통에 꽂자 모양도 이쁘고 사이즈도 잘 맞았다. 휴지는 불이 붙어도 돌돌 말려서 밀도가 높아진 덕분에 신문지처럼 한 번에 화르르 타 버리지 않았다. 진짜 연초처럼 서서히 불씨가 타들어 갔다. 맛은 신문지와 별 차이 없이 썼지만 그래도 여러 번 빨아재낄 수 있어서 제법 담배 피우는 시늉을 낼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번 휴지를 말아 피고 나면 다 타버린 재를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려 깔끔하게 뒤처리를 했다.


어설픈 어른 흉내는 더 대담해졌다. 곰방대 흡연을 자랑하기 위해 친구를 초대했다. 친구의 반응이 흡족스러웠는지 의기양양해질 때쯤 반쯤 채워진 담뱃갑이 보였다. 주인은 보나 마나 아버지. 아버지는 보통 아침 일찍 출근하셔서 저녁 늦게 들어오셨다. 피곤하실게 분명한 아버지가 담뱃갑 안의 연초 개수를 하나하나 세어보시진 않겠지. 친구 앞에서 의기양양하게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휴지 흡연에 적응한 덕분인지 첫 흡입에 기침을 하진 않았다. 다만 정신이 몽롱해지고 천장이 빙글빙글 돌았다. 나는 그대로 털썩 방바닥에 드러누워 눈을 감았다. 입에는 침이 계속 고였다.


-2부에서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에세이) 23. 애인의 과거가 중요할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