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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묘 Aug 07. 2022

(에세이) 17. 죽음의 무게

"부장님 유산했어..."


연민에 찬 지영의 카카오톡 메시지.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 운전석에 앉아 전방과 핸드폰을 번갈아 보던 내 눈빛은 처연해졌다.


지영의 부장은 올해 마흔한 살이다. 약 4년 전 남편과 이혼 후, 노모와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혼자 돌보고 있다. 부장은 미혼인 지영에게 자신의 실패한 결혼을 비관하듯 에둘러서 충고했다.

"지영 씨는 결혼하지도 말고, 결혼하게 되면 애는 절대 낳지 마" 이혼으로 엇나가 버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던 부장이 결혼을 좋게 생각할리는 없었다.


부장은 일을 마치면 건야채 가게로 향한다. 오전 내 가게를 보던 노모와 교대하여 저녁 장사를 한다. 간신히 유지하던 가게는 코로나로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지자 다음 달부터 영업을 그만하기로 했다. 부장은 외벌이만으로 두 명을 부양해야 하는 걱정에 수심이 가득했다.


부장은 취미 모임에서 동년배의 남자 친구를 만났다. 남자 친구도 돌싱이며, 부장 아들과 비슷한 또래의 딸이 있다. 둘은 같은 처지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고 이내 끌렸을 것이다.

둘의 관계가 깊어졌을 때 부장은 남자 친구의 아이를 임신했다. 남자 친구는 기뻐했고 출산을 바랐다. 부장은 겉으로는 꼬인 인생이 더 꼬였다는 식으로 말은 했지만, 내심 좋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낳을지 말지 일말의 고민이 있었으나 처음부터 마음먹었던 것처럼 낳기로 결정했다. 퍽퍽한 삶에 시달릴 때로 시달렸지만, 둘에게 찾아온 아이는 부장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임신한 지 2달째 되던 날.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뒤 2주가 채 되지 않아 유산했다. 부장은 원래 자궁이 건강하지 않았다. 4년 전 자궁암으로 세상을 등진 여동생처럼 자궁에 혹이 자주 생겼다. 병원에서 자궁 적출을 권했으나 쉽사리 동의하지 못했다. 자궁을 적출하는 게 여자로서의 삶을 끝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떠나보내는 수술을 앞둔 부장의 마음은 남자인 나로서는 절대 헤아릴 수 없다.


올해 3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친 조부모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셔서 아무런 기억도 없다. 외할아버지는 중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셨는 데 항상 병상에 계신 모습만 봐서 그런지 그다지 떠오르는 기억이 없다. 외할머니는 94세가 돼서 돌아가셨는 데 손자 손녀들 중 나를 유독 이뻐해 주셨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조부모의 사랑 같은 것 들을 나에게 온전히 베풀어 주셨던 유일한 분이셨다.


서른 초반에는 집안 사정으로 외할머니를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몇 년을 못 봬었을까. 스스로 모난 게 어리석다고 느껴지고, 씻지 못할 불효를 저지르는 것에 두려웠다. 미래를 약속할 만큼 깊게 사귄 여자 친구를 데리고 불쑥 할머니를 찾아갔다. 철없는 손주가 당신의 자식 속은 기가 막히게 썩이는 재주가 있지만, 사람 시늉은 하고 산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절은 못했지만, 눈물을 흘리시는 할머니를 안아드렸다. 칙칙한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던 흰 백합처럼 단아한 여자 친구를 소개해드렸고, 할머니는 여자 친구를 안아주셨다.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다급하게 전화를 건 엄마는 애써 울음을 참지만 이내 터져버릴 것만 같은 목소리로 외할머니 부고 소식을 알렸다. 퇴근 후 집에 막 도착한 나는 다급히 검은 정장을 옷장에서 꺼내 들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영정 속 할머니는 곧 봄이 온다는 걸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벚꽃 같은 웃음을 짓고 계셨다.


영정 사진을 들고 맨 앞에서 상여를 이끌던 나는 발인 내내 펑펑 울었다. 다른 손자 손녀들은 눈물을 보이지 않는 데, 나만 목놓아 우는 게 창피하다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지만, 내가 할머니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게 눈물을 흘리는 일 밖에 없었다.


비로소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내고 나는 죽음의 무게를 느꼈다. 아직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짐작하거나 가늠할 만큼 나는 무르익지 않았지만, 죽음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모든 죽음은 고귀하고 애처롭다는 것을 알게 됐다.


2개월 된 태아가 강낭콩만큼 작을지라도, 부장이 유산으로 느낀 죽음의 무게는 나 따위가 가늠할 수 없다. 내가 할머니를 보냈을 때 느꼈던 죽음의 무게와 비교할 필요도 없다. 죽음의 무게를 견주는 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출산을 결정하기 전 부장은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 대한 '책임'의 무게를 짐작했을 것이다. 갈 길이 구만리인 첫 아이와, 남자 친구가 대려올 아이까지 책임져야 되는 상황에서 셋째의 무게는 냉장고를 꽉 채운 코끼리 크기만큼 부담됐을 것이다. 그래도 엄마는 자식의 손을 놓키는커녕 오히려 더 단단히 잡았다. 아름다운 것들로 메워질 부모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고, 아이가 주는 믿음으로 메마르고 각박한 세상을 조금 더 끈덕지고 진하게 살아내 보고 싶었을 것이다.


부장은 수술 날짜를 애써 담담하게 기다리고 있지만, 오늘은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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