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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묘 Aug 02. 2022

(에세이) 14. 고민 있으세요?

나는 예민해서 잔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걱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정적인 생각을 일부러 무시해봤지만, 마음을 마음대로 하는 게 정말 쉽지 않다. 타고난 본성은 바꿀 도리가 없는 걸까? 초자연적인 힘 외에는 도무지 방법이 없어 보인다. 머릿속을 짓이길 만큼 괴로운 잡념에 사로 잡힐 때마다 인간의 유한한 가능성과 나약함에 서글퍼진다.

요즘 손 글씨 잘 쓰는 젊은 사람을 찾기 힘들다. 문자를 쓸 때 대부분 전자기기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악필이다. 글씨를 잘 안 써서 악필이 됐고, 악필이 되니 더 안 쓰게 됐다. 업무 회의나 거래처 미팅 때 종이로 된 수첩에 필기하는 게 어색하고, 남들이 내 삐뚤빼뚤한 필체를 볼까 봐 민망하다. 그래서 노트북에 타이핑을 하거나, 갤럭시 노트의 전자펜을 이용해 메모한다.

나처럼 고민에 자주 사로잡히고, 악필인 사람한테 딱 맞는 취미가 있다. 바로 '필사'다. 내가 필사를 시작한 목적은 온전히 두 가지 결점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에 매료되었다. 꼭 나와 같은 처지가 아니더라도 아래에서 소개하는 장점을 경험하고 싶다면 당장 필사에 도전하라.

1. 장점

1) 마음이 편해진다.

홀로 조용한 방에 앉아 좋아하는 책 문장을 흰 연습장에 연필로 써내려 가다 보면 산속 절에 온듯한 고요한 느낌이 든다. 머릿속에 가득 찬 잡념들이 비워지고 마음이 맑아지며, 이내 편안함을 느낀다.

2) 글 쓰기에 자신감이 생긴다

한 글자씩 정성을 담아 쓴다면 필체가 교정되고, 올바른 맞춤법에 익숙해진다. 작가가 사용한 유려한 문장이나 맛깔난 표현들을 자연스럽게 익혀 내 글에 활용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문장력이 향상된다.

3) 깊은 독서를 한다.

책 한 권을 다 읽어도 줄거리나 큰 사건 외에는 바로 떠 오르는 게 없다. 작가의 호흡에 맞춰 눈으로만 따라가며 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사는 문장을 음미하면서 느리고 깊게 읽기 때문에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4) 집중력 향상

'8초의 집중력'이라는 책에서 현대 인류의 집중력은 평균 8초라고 말한다. 주요 원인은 SNS다.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금붕어보다 못한 집중력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인간의 뇌는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세타 등의 뇌파가 발생하는 데 베타가 집중력과 관련이 있다. 베타의 뇌파는 최대 30분까지 유지되며 그 이후로는 긴장과 불안 상태에 돌입한다. 필사에 몰입하면 30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인간의 집중력 최대치 도달은 가뿐히 해낼 수 있다.

2. 단점

작가를 꿈꾸는 사람은 표절을 경계해야 한다. 필사를 하면서 외운 문장들을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채 상업적인 글에 사용하게 되면 표절 논란이 생길 수 있다. 필사한 작품이 자신의 창작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기 바란다.

3. 필사하기 좋은 책 고르는 방법

1) 좋아하는 주제에 책을 고른다.

책 읽기가 단거리 달리기면 필사는 마라톤이다. 재미없는 책을 절대 공들여가며 오래 읽을 수 없다. 관심이 가는 주제나 흥미를 지속적으로 느낄만한 책을 선정해야 한다.

2) 문장 수준이 너무 어려운 책

장문이 많은 글은 필사하는 사람의 집중력을 떨어트린다. 생경한 단어가 많은 책도 지루해질 수 있다. 자신의 세대와 맞지 않는 너무 오래된 책은 피하는 게 좋겠다.

3) 문장 수준이 너무 쉬운 책

너무 술술 읽히면 문장을 음미할 수 없고, 집중력도 떨어져 글 쓰는 내내 다른 생각이 떠오른다. 생각없이 기계적으로 쓰지 않으려면 적당히 어려운 책이 좋다.

4) 너무 두꺼운 책 : 초보자에게 장편은 벅차다. 중간은커녕 초반부에 포기할 수도 있다. 단편 소설 같이 얇은 책부터 시작해서 점점 책의 두께를 늘려가자. 잘 쓴 칼럼이나 에세이를 받아 적는 것도 좋다.

사람은 항상 크고 작은 고민에 시달린다. 그럴 때마다 아껴 읽는 책을 펴서 종이에 옮겨 적자. 아무 생각 없이 문장을 따라 걷다 보면 작가의 생각들로 머릿속은 채워진다. 그 순간 근심, 걱정, 고민들은 사라진다. 필사는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불행에서 벗어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