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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Iris Jan 11. 2021

이곳은 공개 오디션장인가요? 카타르항공 면접 후기 2

눈 깜짝할 새에 도착한 대만


모든 일은 눈 깜짝할 새에 벌어졌다.

정신 차릴 새도 없이 도착해 있던 낯선 곳의 호텔,

늘어서 있는 줄 속의 나를 보며 그 모든 생경한 모습들에 일순간 멍해짐을 느꼈다.



    그것은 내 인생 첫 지원이자 첫 오픈데이였다. 말로만 듣던 모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주말 공개 오디션을 방불케 하는 모습에 매우 당황스러워하며 줄을 섰던 기억이 난다. 무더운 여름이 아슬아슬 고개를 내밀려고 하던 4월의 어느 날, 나는 생전 여행으로도 가본 적 없는 대만에 가 있었고 습한 날씨를 미처 체감할 새도 없이 꼭두새벽부터 준비를 하고 길게 늘어선 줄의 향연에 살며시 동참했다. 


    그 어떤 과외도 학원도 심지어 스터디 그룹도 한 적 없이 오롯이 혼자 준비했기에 아는 이가 단 한 명도 없는 것은 물론, 오픈데이라는 개념과 절차만을 간신히 정립한 채 그저 아침에는 무조건 빨리 가서 줄을 서야 한다는 다른 후기 속 당부를 떠올리며 내가 할 수 있는 최단의 시간에 최선의 준비를 마치고 현장으로 향했다.


    오픈데이 현장에 가면 정말 길고 긴 줄을 맞이할 것이다. 경험자라면 익히 알고 있겠지만 나같이 처음 가는 사람이라면 도무지 감도 안 오고 과연 그렇게 길까 라는 생각을 할 텐데 그렇다. 정말 길다. 그러니 첫째 날은 최대한 부지런히 일찍 준비해서 적당한 앞 줄에서 진행하는 것이 좋다. 나의 경우는 새벽 5시에 일어나 6시 반에 줄을 서기 시작했는데 오후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 에서야 CV Drop이 끝이 났다. 


*CV Drop: 지원자가 면접장으로 바로 이력서를 갖고 들어가 짧게 면접을 보는 방식 (현장에서 즉시 당락이 결정된다.)


    하지만 정작 본 게임은 누구보다 빠르게 끝나버린다. 장장 6시간의 기다림이 무색할 지경. 필수 준비물은 당연히 CV (이력서), 규격에 맞는 사진, 사전에 홈페이지에서 오픈데이 참여 신청을 하고 받은 일련번호이다. 추천 준비물로는 물과 약간의 간식을 들 수 있겠다. 내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서다 보면 이탈하기도 뭐하고 그 정신없는 와중에 간식 사러 나가기도 애매하다. 긴장되고 현장이 복잡하니 딱히 배고프다는 생각은 안 들었지만 개인차가 있으니 물과 초콜릿 정도의 간식은 지참하면 좋겠다. 그리고 기다리면서 다른 지원자들과 그 긴 시간을 함께하게 되는데 나의 경우는 여기서 지금까지도 연락하는 친구들을 많이 만들었다. 오픈데이 주최 국가마다 성향은 다르겠지만 (나는 대만 오픈데이였으므로) 대만인 지원자들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는데 정말 나이스 한 친구들과 연을 맺게 되어 개인적으로는 정말 고맙고 좋은 추억이다.




    이윽고 오랜 기다림 끝에 긴 줄을 뒤로하고 드디어 CV Drop 이 이루어지고 있는 방 문 앞에 도착했다. 거기서도 물론 길게 늘어선 줄이 있는데, 그래도 대기실에서부터 길게 늘어져 있던 것에 비해 훨씬 가까워진 거리다. 자세히 들리지는 않아도 대강의 분위기와 상황을 어깨너머로 볼 수 있을 정도였으니. 당시 콘퍼런스 룸까지 내 앞에는 대략 25명 정도의 지원자들이 있었던 것 같다. 차례차례 한 사람씩 들어가고 다른 문으로 나오는데 거짓말 조금 보태서 한 30초 간격으로 사람들이 줄줄이 이어 나오는 것 같았다. 아무리 CV Drop이라지만 진행 속도들이 꽤 빨랐고, 거의 한 두 마디 안에 모든 것이 판가름 나는 것처럼 느껴졌달까.



이상하다?
분명 후기에는 통과가 되면
인비(인비테이션 레터)를 준다고 했는데.


    적어도 내 시야에 보이는 앞선 지원자들 중에서 흰 종이쪽지 같은 것을 들고 나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말 단 한 명도. 흡사 그대로 앞문으로 들어갔다가 곧이어 뒷문으로 나오는 모습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오픈데이의 경험이 전무했던 나는 그전까지 긴장도 안 했던 것 같다. 구두로 1차 합격 소식을 전달했을 리는 없고, 내 앞의 그 누구도 종이 한 장 받아 나오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며 나는 그제야 실감을 했고 그제야 걱정이 됐다. 그리고 내가 뒤늦은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찰나, 나는 어느새 문 가까이에 다다랐고 기다리면서 조금 친해진 다른 한국인 참가자들에게 파이팅의 눈짓을 보내고 있었다.





#호텔 직원의 실수


    그렇게 내 차례가 되기 일촉즉발의 상황. 


    한 면접관이 막 다른 지원자와의 면접을 끝냈다. 그것을 나도, 옆에서 줄 정리를 도와주던 호텔 직원도 보고 있었다. 화장실 한 줄 서기를 생각하면 빨리 이해가 될 것이다. 지원자들은 길게 한 줄을 서고 한 명씩 방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내가 참여했던 오픈데이에는 한 방안에 면접관 4명 정도가 ‘ㄷ’ 자의 형태로 앉아있고 지원자들은 차례대로 다음 지원자를 기다리는 면접관에게 가서 면접을 진행하면 되는 형식이었다. 한 면접관의 면접이 막 끝났고 그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것을 본 호텔 직원은 손짓으로 그쪽으로 가라고 안내해주었다. 나는 호텔 직원이 안내를 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 면접관 앞으로 향했고 생각한 대로 인사말을 하려고 입을 뗐는데......


왜 내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마음대로 오는 거지? 다시 뒤로 돌아가.



    냉랭한 말투에 그러한 태도. 


아직도 기억이 난다. 정색으로 무장한 그녀 앞에서 순식간에 내 앞에 붙은 수식어는 #참을성결여 #성격급함 이 되어있었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마구 달려온 #철없는지원자 가 되어버린 난, 양껏 날 한심해하는 그녀의 눈빛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다.


    ‘얘, 뒤로 좀 갈래?’ 하는 것 같은 제스처에 나는 뒷걸음질 쳤고 머리에는 '망했구나.' 이 네 글자가 딱 하고 떴던 것 같다. 


    순간 당황한 호텔 직원의 모습도 선명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면접관은 호텔 직원이 그렇게 안내한 것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내 앞 지원자의 서류를 검토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어서 내가 오는 모습만 감지를 하고 저런 반응을 보였던 것. 크게 중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지원자 입장에서는 약간 억울한 상황이었다. 좋은 모습으로 어필해도 시원찮은데 시작부터 구박을 받고 하니... 뒷걸음질 치면서도 너무 속상했었다. 호텔 직원이 내게 찡긋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뭐 그도 사람이니 실수할 수 있다며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나도 그녀에게 간신히 웃어 보였다. 그 순간만큼은 갑절의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후, 동시에 두 면접관이 내게 손짓했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유럽인 면접관과

일전에 날 매섭게 돌려보낸 면접관이었다.



 어디로 가야 하지?



난 직감했다.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 곧 나비의 날갯짓이 될 수도 있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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