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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Iris Feb 12. 2021

밀당의 고수. 카타르항공 면접 후기 4

여기가 바로 밀당 맛집

카타르항공 Day 2 'Assessment Day'는 회사 소개+영어 테스트+암리치+워드 슈팅/센텐스 슈팅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 저 마지막 센텐스 슈팅에 대해서 할 말이 좀 있지만 그건 잠시 미루도록 하고.



일단 전날의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지원자들이 하나둘 모이며 대기장은 이내 많은 사람들로 채워진다. 앞서 말했듯 지금까지도 연락을 유지하는 친구들을 첫째 날 많이 만들었는데 10명 정도 되는 친구들 모두 아쉽게도 cv탈이었기에 두 번째 날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자리에 같이 앉아도 되냐고 물었던 새로운 친구는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 친구는 국제결혼을 한 기혼자로 자신을 소개했고 (이하 '유부 친구') 가족들과 함께 대만에 거주 중이라고 했다. 유부 친구는 영어가 매우 유창했는데도 정작 본인은 영어 테스트의 형식이 매우 궁금하고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나: 글쎄, 나도 잘 모르겠지만 보통 읽기 문제라고 들었어! 걱정 마 넌 잘할 거야.



마치 나를 다독이듯 친구에게 파이팅을 외치고 있는데 갑자기 또 다른 지원자가 우리 대화에 동참했다. 셋이 영어로 이야기를 하는데 몇 마디쯤 주고받다 보니 낯선 그에게서 익숙한 한국인의 향기가 났다.



"혹시 한국 분이세요?"


"네. 한국 분이세요?"



알고 보니 그 지원자는 전직 카타르 항공 캐빈크루로, 퇴사 후 재입사를 바라는 분이었다. 뭔가 대단해 보이면서 신기하기도 하고 마침 잘 됐다 싶어 궁금했던 것들을 묻자 친절히 알려주셨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건승을 기원했다.


시작부터 좋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와 유부 친구, 전직 분 셋이서 한참 오늘의 면접은 어떻게 이루어질지 등 이런저런 스몰 톡을 하고 있자니 곧 엄청난 포스의 면접관 리비와 소냐가 회장을 가로지르며 등장했다.




장내는 일순 조용해졌고 모두들 동경에 마지않는 눈빛으로 두 면접관을 바라보며 그렇게 어세스먼트 데이가 시작되었다. 괜스레 면접관 리비를 보며 어제의 주접이 생각이나 살짝 부끄러워졌으나 




정식으로 자신들을 소개하는 두 프로들을 보며 이제 시작이구나. 더 이상의 주접은 그만. 을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가족오락관을 방불케 한 퀴즈쇼


첫 번째 식순은 바로 회사 소개이다.


두 면접관은 간략하게 자신의 이야기들을 끝내고 회사 홍보 영상을 보여준다. 유튜브에 검색하면 볼 수 있는 카타르항공 커머셜과 회사 자체에서 만든 영상 등 2~3편 정도의 비디오를 시청하고 나면 면접관의 구두 발표를 통해 카타르라는 국가, 회사 연혁, 카타르항공의 승무원이 되면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 복지 혜택, 사원 계급과 같은 회사 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주로 듣게 된다. 기본적으로 우리 회사는 이렇다, 하며 본격 자랑 타임인 것.




지원자들은 모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경청했고 나 역시 발표를 듣는 내내 듣는 이로 하여금 참 회사에 들어오고 싶게 한다- 라는 생각을 했다.


영상을 보고 난 뒤에는 관련된 몇 가지를 문제로 내게 되는데 문제를 맞힌다고 상이나 가산점과 같은 메리트는 없다. 오히려 알듯 말듯한 문제 때문에 답이 틀려서 지원자가 민망해지는 상황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불이익도 없는 듯)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곧 있을 영어시험 전에 다 같이 긴장 좀 풀 목적으로 막간을 이용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면접관 소냐가 첫 번째 문제를 냈고



자, 이 문제의 답을 아는 사람은?


여기저기서 조용히, 

그러나 열정적으로 손을 들었다.



 



거기 첫 번째 열의 두 번째 자리에 앉은 지원자?




소냐는 잠시 고민하더니 한 지원자를 가리켰고 그녀는 다행히 정답을 맞혔다.


TMI: 여기에서 지목받은 지원자는 내가 오픈데이 수개월 전, 단기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잠깐 같은 곳에서 일했던 분이었다. 얼굴이 낯익다 했는데 혼자 어찌나 놀랐던지. 여러분 세상 정말 좁더라고요. 착하게 삽시다.  


소냐: 잘 맞춰주었어요. 박수-



(짝짝짝)


어쨌든 나도 답은 알고 있었기에 퀴즈가 진행되는 동안 계속 손을 들고는 있었다. 근데 불러주시면 감사한 거고 사람이 워낙 많았으니 무조건 내가 답을 해야 해! 하는 심정은 아니었다.





자, 두 번째 문제....



또 다른 문제가 소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습관처럼 조용히 손을 들었고  곧 내 귀를 의심했다.



그래, 아이리스.


 


아니 소냐는 또 내 이름을 어떻게 기억하는 거지. 내 이름을 부른 사람은 전 날의 리비도 아니었다. 아무래도 이 구역의 주접 킹이라고 이 구역에 벌써 소문이 났나 보다.


일단 알고 있는 답을 말했고 다행히 정답이었다.



소냐: 잘했어. 모두들 박수.


-머쓱타드-



이어서 문제가 몇 개 더 출제되었지만 그 후부터는 손을 들지 않았다. 이미 정답 한 번을 맞췄기도 해서 다른 지원자의 참여 기회를 방해하고 싶진 않았다. 신기했던 것은 다음에 불렸던 지원자들 모두 어디 어디 열에 앉은 사람이라고 지칭되었다는 점. 오직 나만 이름으로 불렸던 거였는데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지원자로서는 오만가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딱 좋았다. (어린 시절부터 공상을 즐기는 편) 단순히 이름이 기억나서 불러주신 건지도 모르겠다.


첫 번째 세션이 끝이 나고 드디어 영어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어떡해. 나 떨린다.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야. 굿럭!



나도 걱정이 많은 편인데 나보다도 걱정이 많은 유부 친구를 다시 한번 응원하고 문제지를 뒤집었다.


주어진 시간은 30분


그리 길지 않은 시간과 그에 비례하는 30여 개의 문항. 거의 1분에 한 문제를 풀어야 하는 꼴이다. 전직 영어강사로서 skimming과 scanning 권법으로 나름 자신 있게 문제를 풀어나갔다. 풀면서 느꼈던 점은 문제가 어렵지는 않으나 정말 알쏭달쏭(?) 한 것이 지원자가 최대한 헷갈리도록 최선을 다한 느낌이었달까. 강사 시절, 시험문제를 낼 때 학생들이 어떤 부분을 어려워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그 심리를 이용한 아리송 문제들을 냈던 모습이 나의 과거와 겹쳐 보였다. (인과응보)





처음부터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았으므로 일단 첫 느낌 그대로 이 트릭에 걸려준다, 라는 마음으로 답을 골랐다. 후다닥 먼저 풀고 빠르게 퇴장하는 지원자들이 하나 둘 속출했지만 나는 늘 주어진 시험 시간은 다 쓰자 주의여서 마지막 몇 분 동안 오답은 없는지 더블체크에 돌입하기로 한다.


그런데... 


 




무슨 약을 들이켰으면 이따위로 답을 골랐지?


마음 편히 처음 찍었던 답들 중 무려 7개나 잘못 골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은 시간은 약 5분


갑자기 손이 떨렸다. 너무 속독을 한 탓이었을까? 처음에 아리까리했던 문제들은 날 비웃기라도 하듯 여전히 아리까리하길 멈추질 않았고 (어렵진 않으나 그래서 더 찜찜하고 헷갈리는 기분 RGRG) 나는 지난 n년간의 강사생활에서 그토록 외쳤던 절대불변이던 법칙 하나를 깨게 된다.



"한번 고른 답은 웬만해선 바꾸지 마라!

높은 확률로 처음 답이 정답이다!"


는 개뿔.


서둘러 바꿔야 한다!




그런데 곧 내게로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가 느껴졌다.



시간이 다 되어갑니다. 제출하도록.




하. 오답이라고 추정되는 답 7개 중 6개 만을 고치고 종이를 건넸다.


 


이 날 나는 학창 시절의 징크스 (답을 고치면 틀리는), 강사로서의 교육철학 (그래서 학생들에게 고치지 말라했던) 그 모두를 내 손으로 깨부수고야 말았던 것이다. 빠르게 문제지를 수거해 간 면접관들을 뒤로하고 나는 지원자들 틈바구니에 섞여 다시금 밖에서 대기를 했다. 모두들 진이 빠진 것처럼 보였지만 서로 문제에 대해 답을 맞혀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난 자신이 없어. 다 망한 것 같아.



너까지 왜 그러니. 새로 사귄 유부 친구가 하는 말이었다.


우리 둘 다 붙을 거야. 너무 많은 걱정일랑 잠시 접어두자.


애써 긍정적으로 대화를 이끌려고 무던히도 노력하는 나였다.








면접관들께서 다시 입장하라 십니다.



모두 모이라는 호텔 직원의 공지와 함께 지원자들은 다시금 회장 안으로 들어갔고 들어간 그곳엔... 열심히 막판 답 체크를 하며 무언가를 계속해서 분류하는 리비와 그 옆에 서서 우리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카리스마의 소냐가 있었다. 



리비
 소냐



지금부터 번호를 부르도록 하지. 
자신의 번호가 불린 사람들은 나를 따라와 주면 좋겠어요.




모두 긴장의 심호흡을 한다. 소냐가 천천히 읊는 번호 하나하나에 지원자들은 빠짐없이 귀를 기울인다. 이윽고 우리의 운명을 둘로 가르는 결과가 나온다.





지금 불린 인원은 날 따라오도록.



그때, 둘째 날을 내내 함께한 유부 친구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는 불리지 않았고 유부 친구는 불렸다. 결과가 무엇이든 우리 둘이 갈려버렸다.


수고 많았어. 결과가 어떻든 너에게 행운을 빌어. 안녕..★


우리 두 사람이 나눈 짧지만 아쉬운 인사였다. 친구가 포함된 꽤 많은 인원이 소냐와 함께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나를 포함한 남아있는 인원들은 숨죽인 듯 침묵을 유지했고 정산을 마친 리비는 이내 굳은 표정으로 우리 앞에 섰다.






여기까지 오는데 정말 수고 많았어요.



여기저기서 낮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 단계까지 왔다는 것은 
여러분들이 큰 가능성을 가진 지원자라는 뜻일 겁니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역시 답을 고치지 말았어야 했다. 지원자들은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그런 우릴 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고



지금 이 자리의 여러분은 과연 통과를 했을까? 
어떨 것 같아요?













.................

 
 
축하합니다!
여러분은 영어 테스트를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HA HA HA

이 집 밀당 맛집이네! (마른세수)

그렇다. 카타르항공은 밀당의 고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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