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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NNIE Dec 10. 2021

30대에 찾아온 사춘기의 앞에 서서

언제쯤 마음속 방황을 끝낼 수 있을까


“00 씨, 이번엔 서울로 인사발령이 안 될 것 같아” 부장님의 전화였다.


내년 2월 전보 시즌에 맞춰 전보신청서를 제출했었는데, 인사위원회 결과가 발표된 후 그가 내게 정보를 주기 위해 전화를 건 것이다. 허리디스크로 일을 하지 못해 병가와 휴직계를 낸 지 반년 가까이 되어 가는지라, 서울로의 인사발령은 기대하지 않았었다. 작은 기대조차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왠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절반 이상이었다. 회사에서는 2년 이상 한 부서에 있어야 인사발령 대상이 되는데, 휴직으로 인해 그 년수를 다 채우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 회사는 지방이전으로 서울에서 제주로 옮긴 회사인데, 이미 나는 입사 직후 서울에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다른 희망자들이 먼저일 것이 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는 갓 결혼한 직원들에게는 배려를 해 배우자와 동거할 수 있게 해 주었고, 그런 사례에서는 위와 같은 부분에서는 예외가 적용되었기에 작은 기대 정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러한 배려가 적용되지 않은 모양이다. 담담하게 전화통화를 하면서 내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사실, 저 이번에 복직하면 몇 개월 더 다닐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 같은 결정에는 남편과의 동거를 희망하는 것도 한 이유였지만, 제주로 오는 인사발령에도 희망하지 않는 부서로 와서 맞지 않는 옷을 계속 입고 그 과정에서 문제가 있는 사업에서 골치를 앓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자세히 쓰긴 어렵지만 그 일로 업무 중에 공황장애 비슷한 증상이 일기도 했다. 그 당시 업무가 힘들고 더 이상 회사에서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해 마침 그만두려고 했던 타이밍에 허리디스크로 병가를 얻어, 회사와의 인연이 이어진 것이다. 여러모로 지금 회사를 다니는 것과 다니지 않는 것을 경제적, 정신적, 체력적인 이익과 리스크를 비교했을 때, 그만두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단, 제주 와서 결정해도 되니까 복직하고 보자고”

“네 감사합니다. 가서 뵈어요”


전화를 끊고 왜인지 허무한 감정이 들었다. 남편과 요즘 내 집 마련에 대해 많이 생각 중인지라, 인사발령 결과에 따라 퇴사 후 정부 지원 대출을 받아 부동산 매수 계획까지 탄탄히 짜 놓은 상태였고, 내 집 마련을 위해 전보 신청서조차 내지 않으려고 했던 마음이 있던 적도 있었는데 이러한 감정이 드는 게 생경했다. 막상 남편에게 소식을 전하면서도 왜인지 신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우울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인데, 괜스레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회사가 나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분노, 그리고 지금까지 쌓은 경력이 어디에 발휘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좌절감,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안정적인 급여가 없어진다는 불안감과 아쉬움 같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든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30대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냐고 반문할 것이다. ‘나’라는 게 문제였다. 나는 대학 시절부터 언제나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한 학기에 대외활동 여러 개, 학교 수업, 봉사활동, 아르바이트까지 무엇을 하든 열심히 하고 이루고 싶은 작은 목표들이 존재하던 사람이었다. 작은 것이라도 목표 설정을 하고 그것을 완수해나가며 하나씩 성장해 가는 것을 진심으로 즐기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가 이렇게 변해버린 것이 내 자신에게 조금 섭섭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해보기에는 정말 늦었다는 것, 그리고 이 악물고 도전할만한 ‘깡’은 없는 사람이란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보았는데,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이나 고민들은 내가 조금 더 어렸을 때 했어야 하는 것들이라고 한다. 그때의 가 최선을 다하지 않은 죄로 현재의 내가 비싼 수업료를 내는 것이라고.. 내가 너무 어릴 때 내 자신에 대해 치열한 고민을 하지 않았던 걸까.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해보지 않았던 걸까.. 하는 자괴감이 또 밀려왔다. 그 생각은 꼬리를 물어, 내가 학창시절 하고 싶은 것을 지원해 줄 수 있는 부모를 만났다면..이라는 패배감을 가져왔다. 30대 중반에 부모 탓이라니, 이런 내가 살짝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며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뒤늦게 찾아온 나의 사춘기의 결말이 나도 궁금해진다. 나를 필요로 하는 어떤 것들이 나를 당기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며, 지금은 무언가를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일단은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조금씩 해 나가려고 한다. 이 마음속의 방황이 끝나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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