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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이 May 13. 2023

번아웃증후군 극복기

‘나’를 찾는 시간


번아웃이었다.


밤 10시면 잠에 들었던 나에게 불면증이 찾아왔고, 덩달아 식욕도 줄어들어 매일매일이 피곤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편두통이 다시 잦은 횟수로 덮쳐와 짜증을 동반했다.

코로나19와 가정보육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고만 생각했는데, 나 스스로 사회와의 단절을 자초하고 있었다.

연락과 만남의 계기를 스스로 만들어내지도 않았고, 찾아오는 기회들도 거절하기 일쑤였다.

코로나도 가정 보육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 계속되자 무기력해졌고, 때로는 불행하다 느끼기도 했다.


아이가 두 돌을 지나면서 나의 정신적 에너지가 이렇게 바닥을 드러냈다.

열등감과 서글픔이 뒤섞인 채로 얼마간 시간을 보내다, 나에게도 변곡점이 찾아왔다, 드디어.

2022년에 접어들면서 전세계적으로 방역 조치를 완화하는 조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도 코로나와 공생하는 쪽으로 많은 정책들의 방향이 바뀌었고, 이제는 나도 밖으로 나갈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아이를 기관에 보내도 되겠다는 의견에 남편도 동의했고, ‘나만의 시간’이 조금씩 확보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떠 계획을 세우기 위해 아주 오랜만에 펜을 들었다.


그동안 너무 하고 싶었지만 결코 할 수 없었던 일이 무엇이었나 생각해 보다, 문득 TV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예전에 방영되었던 ‘효리네 민박‘에서 가수 이상순이 음악을 틀며 했던 주옥같은 멘트가 있었다.

“음악만 들으면 돈주는 직업이 있었으면 좋겠어.”

한때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음악이 아니라 책을 읽으면 월급을 주는 그런 직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 말이다.

그 때는 말도 안되는 생각인 줄 알았지만, 요즘에는 이것이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닌 것 같다.

인스타그램을 둘러보면 책 관련 계정들이 넘쳐나고, 수익 창출까지 연결되는 경우가 종종 보였다.

나도 용기를 내어 부계정을 만들어 보았다. 수익 창출이 목적은 아니지만 나의 책 기록을 공유하고 싶어졌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일’이었다.

꾸준히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나만의 일’만이 번아웃 극복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장 최근에 읽은 책은 없었기에 기억에 남는 책들, 짧게나마 감상평을 끄적여 놓았던 책들을 골라 되도록이면 하루에 하나씩 피드를 올리기 시작했다.

나의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생기고 ‘좋아요’로 공감을 표시해 주는 사람들이 늘자 1일 1피드가 즐거워졌다.

그러다 새로운 도전으로 출판사 서평단 모집에 응모를 해 보았다. 인플루언서들만 선정이 될 줄 알았는데 운 좋게도 나에게 꽤 기회가 많이 왔다.

다양한 장르의 신간들을 받아보고, 정해진 기한까지 책을 읽고 서평을 남기는 업무가 주어졌다. 기분 좋은 부담감이자 짐스럽지 않은 책임감이었다.

덕분에 전에는 읽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장르의 책들도 읽어보게 되었고, 일정한 간격으로 글을 쓰며 잊고 있던 글쓰기 감각도 회복되었다.

이 간단한 일감만으로도 나의 생활은 많이 달라졌다. 온통 아이에게 쏟아부었던 엄마의 하루가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 진짜 나의 일상이 되기 시작했다. 아이가 기관에 가 있는 오전과 오후, 아이가 잠든 밤에 부지런히 읽고 쓰며,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꽉꽉 채워나갔다.


그리고 쉬었다.

혼자 멍 때리며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걷기도 하고,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밥을 먹기도 했다.

그렇게 완전히 고갈되었던 에너지를 다시 채워나갔다.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들이 생기면서 번아웃은 지워졌다.

딱히 노력이라 할 것도, 처방이라고 할 것도 없이 번아웃 증후군이 극복되었던 것이다.

내가 육아로 힘들었던 이유는 나를 충전할,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과 공간이 없었던 탓이 컸다.

시간을 지나는 중에는 몰랐는데, 이렇게 다 지나오고 나니 후회되는 것들이 있었다.

반나절 만이라도 친정 엄마에게 잠깐 아이를 맡기고 영화 한 편 보았으면 어땠을까?

2시간 만이라도 남편에게 아이를 온전히 맡기고 조용한 카페에서 혼자 커피 한 잔 마셨으면 어땠을까?

30개월이 넘도록 단 1분도 ‘나’의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내가 미련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래서 아이가 100일이 막 지난 무렵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오롯이 내 시간을 가지기 위해 발버둥 칠 것이다.

나의 온 시간을 다 쏟아내어 나를 잃어버릴 정도로 몰고가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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