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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돈 Jan 02. 2021

카이로스(Kairos)

신축년의 자기 관리

물체에 가해지는 외부 힘의 합력이 0일 때 자신의 운동 상태를 지속하는 성질을 관성(慣性)이라고 한다. 중세 시대에는 모든 물체가 정지 상태인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관성이란 개념은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가 사고(思考) 실험을 통해 처음으로 개념을 구상했다. 이후 뉴턴(Sir Isaac Newton)이 이를 바탕으로 관성의 개념을 완성했다고 한다.


관성은 물체뿐 아니라 우리들의 생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발전을 위한 변화를 고민하지 않고 현재의 일정한 형태나 생활양식에 안주하려는 습성(習性) 말이다. 칼럼니스트(Columnist) 이만재의 "어떤 이의 생활"이라는 칼럼을 보자.

"근무시간이 끝났으니 퇴근한다. 퇴근하려는데 한 잔만 걸치자고 한다. 한잔 걸치고 집에 와서 밥 먹는다. 밥 먹다 보니 TV에서 이 프로는 꼭 보라고 외쳐 댄다. TV를 보다 보니 졸리다. 졸리니 잠을 잔다. 자다 보니 벌써 출근시간이다. 허겁지겁 집을 달려 나간다.

그러다 보니 주말이 왔다. 프로야구, 축구 이야기가 한창이다. 집들이, 백일잔치, 송별회, 동창회, 야유회 등으로 주말은 평일보다 더 바쁘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그것이 정상적으로 보이고 그러다가 일주일, 한 달, 일 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러나 아무려면 어떠랴. 때 되면 월급 나오고, 때 되면 보너스도 나오고, 때 되면 남들과 비슷하게 진급도 되어 간다. 상식을 모두 따라야만 하는 생활 속의 관성.

오늘의 나를 절대로 가만 놔두지 않는 일상의 갖은 유혹, 땀 흘리기보다는 절대 땀 안 흘리기를 원하는 안일 본능, 이런 것들을 과감히 배반하고 물리치지 않는 한, 이런 사람은 평생토록 전문가 근처에도 이르지 못한다."

이 칼럼은 보통의 직장인들이 아무런 변명도 못하고, 꼼짝없이 고개를 끄떡이게 하는 생활의 단면을 보여준다. 자신의 모습을 들킨 것 같은 민망함에 얼굴이 붉어진다. 이러한 생활에서 벗어나야 나름대로 효율적인 삶을 고민할 수 있다. 관성에서 탈피하는 방법이 곧 "자기 관리"다. 그리고 철저하게 자기를 관리한다는 것은 결국 "시간관리"로 귀결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제공되는 개념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시간을 관리하는 사람은 진전을 위한 삶을 위한 효율적인 지름길을 아는 사람이다.


그리스어에는 시간을 나타내는 단어가 두 가지 있다. 먼저 "크로노스(Chronos)"라는 개념이다. 끝을 향해 달려가는 물리적인 시간을 의미한다. 또 하나의 개념은 "카이로스(Kairos)"다. 개인에게 의미와 깊이를 가지는 순간적인 삶의 시간, 즉 주관적인 시간을 말한다. 그리스인들은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해도 놀라운 변화를 체험하게 되는 시간, 즉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시간의 개념을 카이로스라 칭했다.  

이탈리아 토리노 박물관에는 B.C 4세기경 조각가 리시포스(Lysippos)의 "카이로스(Kairos)"라는 조각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을 살펴보면 작품의 모양이 독특하다. 앞머리는 머리카락이 풍성한 모습인데 뒷머리는 머리카락이 없는 대머리다. 그리고 등에는 커다란 두 날개가 있고 발뒤꿈치에도 작은 날개가 있다.  특히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고, 다른 한 손에는 날카로운 칼까지 들고 있다. 작품 앞에는 다음과 같은 소개 글이 있다고 한다.

"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리지 못하게 함이며, 또한 나를 발견했을 때는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내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나를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발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함이다. 나의 이름은 기회(Chance)이다". 이 작품이 주는 교훈은 기회를 만났을 때는 물건의 정확한 무게를 알기 위해 저울을 사용하듯이 정확한 판단을 바탕으로, 날카로운 칼처럼 지체 없이 결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출근하면 마주하게 되는 업무처리에서 시간관리 개념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업무처리의 우선순위를 제대로 판단해야 가능한 일이다. 각자 나름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겠지만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우선 업무를 중요성(重要性)과 긴급성(緊急性)을 기준으로 4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중요성(高)과 긴급성(高)이 모두 높은 업무는 사명(使命)이다. 우선적으로 반드시 처리해야 하는 맡겨진 업무다. 둘째, 업무의 중요성(高)은 높은데 긴급성(低)이 떨어지는 업무가 있다. 이런 업무는 탐험적인 업무이다. 중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업무다. 셋째, 높은 긴급성(高)을 가지고 있으나 중요성(低)은 떨어지는 업무가 있다. 이런 업무는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업무다.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하는 루틴 한 업무다.  마지막으로 중요성(低)과 긴급성(低)이 모두 떨어지는 업무다. 이런 업무는 자연스럽게 조정할 수 있는 업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면 좋아하는 것을 버려야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기 자신을 관리한다는 것은 틀에 박힌 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가끔 영화를 보게 되는데 영화 속 대사가 마음에 진한 여운으로 남는 경우가 있다. 부모의 기대와 달리 평범한 아이가 되고 싶어 하는 천재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 "비투스(VITUS)"가 그런 영화 중 하나다. 비투스의 부모는 아들의 미래를 꿈꾸며 아들이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천재소년 비투스는 하늘을 날고 싶고, 평범한 어린아이가 되고 싶다. 결국 극적인 반전을 통해 비투스 자신이 원하는 삶의 주인공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신동 비투스는 보통의 청소년들처럼 고민을 한다. 자신이 무엇이 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고민이다. 비투스의 하소연에 그의 유일한 친구인 할아버지는 이야기한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면 좋아하는 것을 버려야 한다". 영화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비투스도 할아버지에게 조언을 한다. "비행기는 땅에 있을 때가 제일 안전하죠. 하지만 비행기는 날려고 만든 거잖아요".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반복되는 생활에 매몰되어 현실에 안주하려는 관성을 버리라는 말이다. 특히  새해를 시작하면서 한 번쯤은 생활을 점검하고 시간관리를 점검해 보아야겠다. 비투스의 충고를 기억하면서.


"비행기는 땅에 있을 때가 제일 안전하죠.

하지만 비행기는 날려고 만든 거잖아요"


(2021.01.02. 맑은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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