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사과맛이 난다 EP.5_여백으로서 소통하기
'여백'과 '공백'은 무슨 차이가 있는가?
그리고 '공백'은 어떻게 '여백'이 되는가?
공백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빈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여백은 그 이상이다. 여백은 비어 있으면서도 무한한 가능성을 담은 공간이다. 이는 단순히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무언가를 상상하고 만들어낼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둔다. 그래서 여백은 채워지지 않은 공허함이 아니라, 상상과 해석을 유도하는 완성된 공간이 된다. 이 개념은 한국 전통 미학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아 왔다.
결국 여백은 누군가의 의도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아무 의도도 없이 어쩌다 만들어진 공백과는 다르게, 어떠한 의도로,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음으로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우환 작가는 그의 작품에서 이러한 여백의 개념을 실현했다. 그의 ‘관계항’ 연작에서는 캔버스에 아주 소수의 점과 선만을 배치하는데, 그 적은 요소들이 여백을 통해 상호작용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극적인 긴장감이라고 표현을 하곤 하는데, 어떤 감정이 드러나는지는 사실 개인의 영역이 아닐까 싶긴 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우환은 여백을 그저 채우지 않은 빈 공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사물이 서로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하는 장소로 여긴다. 그는 “여백은 무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그 안에서 모든 것이 시작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이런 여백 속에서 관람자는 보이지 않는 요소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예술과 스스로의 관계를 재정립하게 된다. 그의 여백은 무언가로 가득 채워지지 않았기에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가능성의 공간인 것이다.
여백이 존재한다는 것은 결국 여백이 아닌 부분을 정의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체가 존재하거나 모양이 채워져 있는 부분이 그렇게 보이기 위해서는 그 외의 부분들에 여백이 있어야 한다. 하나의 예시로 꽃 한 송이를 그리고 그 주변으로 풀과 나무 새들을 같은 위계로 그려낸다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그리고 뭐가 채워지고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혼란을 겪을 것이다. 그렇기에 의도적인 여백으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고민하도록 만들어주며, 더 나아가 사람들이 작가의 세계에 직접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준다. 존재하지 않기에, 존재하게 한다는 모순적이지만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여백은 그 자체로 하나의 미학적 완성이다. 여백을 남겨둔다는 것은 관람자에게 상상의 여지를 주고, 더 나아가 그 공간 속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아가도록 한다는 작가의 배려이며 초대다. 이는 서구의 미학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동양적 미학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서구의 예술이 가득 채운 형태와 색채로 전달되는 직접적 메시지에 초점을 맞춘다면, 동양의 예술은 여백을 통해 보는 이에게 주도권을 넘기고 해석을 자유롭게 하도록 한다.
이우환 작가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여백이 단순히 무언가를 채우지 않은 빈 공간이 아님을 깨닫는다. 여백은 스스로의 자리를 지키며 그 공간 안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길 기다린다. 나는 이 부분이 삶에 있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요즘 사람들은 육각형 인간을 원하고, 모든 경험을 하려고 한다. 내가 어떠한 경험을 하지 못했다는 것은, 마치 게임에서 스킬트리를 못찍은 것처럼 모두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모든 순간을 완벽하게 채우려는 강박에서 벗어나고, 여백을 남겨두는 삶을 살아간다면 더 많은 가능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인간관계에서도, 나의 일에 대해서도, 세상과의 연결에서도 나만의 여백을 만들고, 거리를 측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