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맛 에세이
심신이 지치고 피곤한 날, 스트레스를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좋아하는 소파에 벌렁 누워 좋아하는 쇼핑몰 앱을 하염없이 기웃거리는 일이다. 예쁜 옷은 일단 장바구니에 담아둔다. 쇼핑이 끝나면 장바구니로 돌아가 비용을 점검해본다. 결재해야 할 비용은 언제나 동공이 확장될 금액으로 커져 있었고 이때부터는 냉정하고 비장해져야만 한다.
우선 나에게 정말 필요한 옷인지를 먼저 검열한다. 그리고 나에게 어울릴 만한 옷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한다. 과감하게 삭제해나가며 줄어드는 비용 앞에 잠시 기분이 좋아진다. 이 정도 금액이면 지불할 용의가 생겨나는 기분좋은 검열 앞에 당장이라도 예쁜 새 옷을 걸쳐 입은 것 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시간이 만만치 않은 노동이라는 것이다. 발품과 더불어 시간을 투자해야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오프라인 쇼핑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오히려 더한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킨다. 투자한 시간이 만만치 않은데 결정은 또 쉽게 하지 못한다. 한 번에 쿨하고 멋진 쇼핑을 완료하지 못한 체, 이런저런 이유로 일단은 쇼핑몰 앱을 빠져나온다. 결정장애가 주된 원인이지만 때론 결정장애가 불필요한 과소비를 줄여주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여러차례 겪고 나면 진짜 나에게 필요한 옷과 진짜 나에게 어울리는 옷으로 구분되기 때문이다. 확실하게 결정되면 금액도 이전보다 훨씬 작아진다. 구매버튼 누르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전에는 무분별한 소비를 즐겼었다. 지극히 즉흥적이었고 지극히 감정적인 소비였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예쁜 옷을 샀고 예쁜 옷을 입은 나를 보며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독서와 글쓰기로 내면을 채우기 시작하자 더 이상 예쁜 옷은 나를 설레이게 하여 지갑문을 여는 작전에 실패하기 시작했다. 외적인 것에 행복의 가치를 두었던 내가 내적인 행복을 채워가기 시작한다.
인간은 늘 새로운 것을 향한 욕망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내적인 행복과 가치를 알게 되었지만 예쁜 옷과 신발, 가방 앞에 언제나 기웃거리고 서 있는 내 모습은 여전하다. 하지만 이전보다 가진 것에 만족할 수 있게 되고 가진 것을 즐기는 행복에 쉽게 도취될 수 있다. 옷이 많으면 무엇을 입을지 고민하는 시간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시간조차 아까워 항상 청바지와 검은 티셔츠만 입었던 스티브잡스의 지혜에 크게 동감하는 바이다.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는 것 같지만 조금씩 달라지는 내 안의 작은 변화들이 있다. 이 작은 변화들 앞에서도 감사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작지만 계속 달라지고 있다. 변하고 있다. 외적인 가치와 내적인 가치를 구분하고 경계할 수 있다. [풍족하지 않으면 궁핍해서, 풍족하면 권태로워서, 끝 없는 욕망을 채우지 못해서 시달리는 것이 인간이다]라는 쇼펜 하우어의 명언을 가슴에 새기며 풍족하지 않아 궁핍하든지, 풍족해서 권태롭든지간에 끝 없는 욕망을 채우지 못해 시달리는 인간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