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맛 에세이
새로운 여행을 계획하는 기분 좋은 순간이 찾아왔다. 이번엔 어디를 갈까....작년, 이맘 때쯤 성공적인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제주도 감성이 더욱 좋아진터였다. 제주도 감성이 제 아무리 좋았어도 또 제주도 갈 바엔 해외를 가고 싶었지만 이번엔 남해일대를 쭉 돌자는 남편의 의견에 “그럴거면 제주도에 가자”고 밀어붙였다.
그렇게 또 가게 된 제주도 여행!
비 소식이 있었다. 지난 번에도 간간히 비가 왔던터라, 제주도는 워낙 비가 자주 오는 지역이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날씨요정이 나타나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비 소식이 있었기에 날씨가 좋은 날은 우도와 용머리 해안, 수국축제 등 다양한 명소를 미리 공략했다. 비가 오는 날엔 아이들과 가기 좋은 실내체험을 공략했다. 제주도는 워낙 가볼만한 곳이 많기에 비가 와도 섭섭하진 않았다. 하지만 내심 아쉬운 마음은 달랠 길이 없었다. 다행히 이틀동안은 날씨가 좋았고 예보된대로 어김없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빗방울은 점점 굵어졌고 비는 그칠줄 몰랐고 돌풍까지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쩌나, 이것도 추억이라 여기며 우비와 우산을 챙겨들고 박물관 위주로 관람하며 여행의 감동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런데 비바람이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설상가상 비행기가 결항이 되어버렸다. 회사에 복귀해야 하는 남편이 초조해하며 이 상황을 알렸고, 사람들은 조심히 돌아오라는 당부어린 메세지대신 ’제주도에서 비행기 결항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는지‘에 대한 다양한 팁을 제시해주었다. 고맙다고 해야 할지, 야박하다고 해야 할지... 고민하던 남편은 비장하게 말했다.
“우리 배 타고 나가자!”
하, 세상만사 이런 일도 나에게 일어날 수 있구나. 제주도 여행왔다가 비행기 결항되어 배를 타고 제주도를 빠져나가야 하는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구나, 정신을 차리려고 해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여보, 애들 데리고 무서워서 배 못타! 애들 배멀미 하면 어떡해!! 배 가라앉으면 어떡해! 아~~ 무서워 무서워!!! 그냥 기다렸다가 비행기 뜨면 가자. 내가 가지고 있는 비상금 털게. 그걸로 숙소 잡아서 더 있다가 가자~~”
결국 내 의견은 씨알도 안 먹혔고 우리는 배를 타고 제주도를 빠져나왔다. 다행인 것은 내가 두려워했던 최악의 상황은 다행히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부부의 여행코스에서 ’제주도‘는 완전히 삭제되고 말았다.
집에 오니 이렇게 좋을 수가! 힘들게 짐 싸서 산넘고 물 건너 왜 사서 고생을 하는건지, 집에 돌아오면 내 집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어느 호텔보다도 더 좋은 내 집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굳이 떠날 필요 있나? 당분간 여행생각은 나지 않을 것 같지만 또 다시 여행가방을 싸는 순간은 여전히 설레인다. 자주 여행을 다니는 것도 내 집에 돌아왔을 때 감격을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는 박완서 작가님의 말처럼 나도 그 감격을 누리기 위해 여행을 떠나보기로 한다.
산 넘고 물 건너 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여유로 힐링을 맛보고 고생도 잔뜩 해보고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안도의 여유감. 좋은 기억만 또 다시 머금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짐가방에 짐을 다시 착착 담아낼 그 순간이 바로 오늘이었으면 참 좋겠다. ( 하지만 배 타고 제주도를 빠져나와야 하는 여행의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정중하게 사양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