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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핑거 Jun 20. 2024

어머님 제가 많이 들어드릴게요

일상의 맛 일상 에세이



말수가 적은 나도 나이가 많아질수록 말수도 많아질까?



살아온 세월동안 거대하게 축적되온 경험을 통해 쌓여진 지식들은 혼자만 알고 있기엔 아까울 것이 된다. 어떻게든 전하고 싶고 나누고 싶을 것이다. 특별한 경험이 아닌 사소한 경험이라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될 수도 있는 다양한 에피소드는 도마 위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양념하여 버물려 먹기 좋은 요리재료처럼 좋은 대화거리가 된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해 몰입하여 경청해본다.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듣기 시작하면 시덥지 않은 경험도 나에게는 이색체험이 되어 대리만족에 짜릿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도 최근에 깨닫기 시작한 것, 전에는 시어머님이 나를 붙잡고 이야기 보따리를 늘어놓기 시작하는 것이 두려웠다.










듣다보면 길어지고 지루해지고 적절한 리액션을 갖추며 반응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치다보면 이내 피곤해지는 것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부담감으로 다가온다. 그러니 피하고 싶은 시간이 될 수 밖에.

못된 생각이지만 그래서 전화 한통 드리는 것도 가끔 미루게 되는 것이다. 어머니도 말씀하신다.

“아이고~ 또 길어지네." 운을 띄우시면서 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내기 시작하신다. 그러면 이내 풋웃음이 난다. 나는 이제부터 말씀하기 좋아하시는 시어머님의 이야기를 이전보다 더 잘 들어드리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하는 거 없이 서성이는 게 제일 힘들다, 들어가서 쉬어. 쉬어. 이따가 나와서 거들어."


항상 이렇게 말씀하시는 어머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여 항상 들어가 쉬었다. 그러다보니 시댁에 가면 의외로 쉴 수 있는 시간이 많았고 어머님의 따스한 배려속에 어떻게 하면 더 잘 쉬고 올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괜시리 기분이 좋아지곤 했으니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댁에 가기로 결정된 날, 나름 비장한 각오로 마음을 다잡아본다.





'어머님이랑 많은 시간을 보내야지. 어머님이 하시는 이야기 마음껏 들어드려야지. 어머님이 하고 싶으신 말씀 다 들어드려야지. 어머님이 그걸 좋아하시니까, 배려심 많은 어머님께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가장 좋은 효도는 그것이지.'

그리고 철저하게 약속을 지켰다. 서성이더라도 어머님 곁에서 서성여본다. 그러다보면 어머님은 또 나에게 주섬주섬 이야기하기 시작하신다.


그날의 화두는 '콩 가는 기계'였다. 콩을 넣고 물을 부으면 입에 뭐 하나 걸리는 것 없이 매끈하게 육수로 만들어내는 기계에서 뽑아낸 콩물로 시원한 여름 콩국수를 말아 잡수시며 기계에 대한 만족감을 감추지 않으신다. 소소하게 콩도 직접 재배하시니 직접 기른 콩으로 콩물을 만들어 두유 대용으로 드시기도 하고 콩국수를 말아 드시는 소소한 기쁨과 만족에 충만하게 사로잡혀 마냥 들떠 나에게 여러번 설명하시는 어머님의 모습이 소녀같이 사랑스럽기만 하다. 콩, 콩물, 콩물 만드는 기계로 시작해서 콩을 좋아하는 식구, 안 좋아하는 식구 까지 할 이야기는 무수히도 많다. 그리고 어머님이 쏟아내시는 기쁨과 화두를 나는 넉넉한 마음으로 다 받아내보았다.



따로 카톡을 잘 하지 않으시는 어머님으로부터 카톡이 한통 왔다.

"콩물 먹을 때 흔들어서 먹어라."

또 콩 이다. 웃으면서 전화기를 들었다.

"아니, 너한테만 못 말해준 것 같아서 콩물 먹을 때 밑에 가라앉아 있으니까 꼭 흔들어서 먹어라."

"네 어머님. 그럴게요.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여전히 콩물에 관심과 정성을 쏟으시고 콩물 만드는 기계를 자식들에게 사줄까 말까 고민하시는 이야기로 대화를 키워나간다. 또 “ 길어졌다” 며 먹쩍어하신다. 어찌 미워할 수 있을까.어찌 지루할 수 있을까. 좋은 것 드시면서, 좋은 기계 사용하시면서 끊임없이 떠오르는 자식 생각이 담긴 어머님의 진심이 마음 어딘가에 와 닿으면 울컥, 뜨거운 무언가가 목구멍에 차오른다.

다음 번에 어머님을 찾아뵈면 어머님에겐 또 무엇이 관심과 화두가 되어 있을까? 내심 기대된다.




"어머님, 제가 많이 들어드릴게요. 말이 길어진다고 미안해하지 마세요.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어서요. 오히려 더 죄송하고 감사한 걸요.

제가 더 잘 들어드릴게요. 어머님의 오늘 보고 느끼신 생각, 삶의 노하우, 다양한 경험 저에게 많이 들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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