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세이
멀리서 큰 아이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시계를 확인 하지 않았어도 나는 늦잠을 자버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새로 산 안막 커텐이 효능이 좋은 건지 며칠 이사 준비로 고단에서인지 다시 겨울잠에 취해 푹신한 이불 속을 맞아. 나오지 못하고 있다.
시계를 보니 7시 30분 정말 푹 자버렸다 아침밥을 차려야 하는 시간이 일어나 버리다니. 게다가 오늘은 글쓰기 모인 첫날인데 !!!일찍 일어나 부지런하고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 하며 하루를 시작 하지 못한 것에 죄책감이 밀려 왔다. 하지만 고민하고 꾸물거릴 시간도 없다. ‘냉장고에 뭐가 있지?’ 가장 빠르게 먹을 수 있는 건 사골 국물 뿐이었다. 냉장고에 조금 남은 뽀얀 사골 국물을 팔팔 끓여 냈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맞춘 사골 국물은 언제 먹어도 맛있구나 ...거기에 남은 찬밥을 넣어 새로 산 도자기 그릇 하나씩 담아 준다. 마음은 분주에도 사과 한쪽씩 깎아 주는 것도 있지 않는다.
“또 사골 국물이야 ??며칠째 먹는 거야??”
볼 맨 목소리로 막내 아이가 말했다
“미안해 이제 진짜 마지막이야. 다 먹었어”
하얀 쌀밥을 먹어야 제맛인데 아침에 밥 할 시간도 없었으니 전날 만들어놓은 누룽지 밥을 사골 국물에 말았다. 왠지 모를 죄책감이 또 밀려 온다. 예민한 큰애가 한 소리 할 거라 생각했다. 내가봐도 이상한 비주얼이 였기에...
“이게 뭐야 ???누룽지 탕???
그런데 맛 좋네??“
다행히 예민한 큰아이의 칭찬이 쏟아졌다. 그러고보니 사골곰탕이 아닌 누룽지탕 비주얼에 가깝구나. 사골국물과 누룽지가 다행히 잘묘하게 잘 어울렸다. 아이들은 저마다 싹싹 비워 냈다. 다행히 많이 늦지도 않았다. 모두가 정상적인 하루를 시작한다.
사골국물을 먹을 때마다 오늘 아침에 해프닝이 기억이 나겠지. “또 사골 곰탕이야 며칠째 먹는 거야??”라는 막내 말이 생각나 당분간은 사골 국물을 사는 일은 없겠다!
나는 분명 늦잠을 잔 것에 대해서 글을 쓰고 싶었는데 어느새 모든 신경과 손가락은 온통 사골국물에 집중 되어 있다. 사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늦잠이
아니라, 게을러진 내 모습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늦잠 잔 아침 냉장고에 예비 되어 있던 사골 국물에 대한 고마움이 가득차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쓰고 싶은 글과는 전혀 다른 글이 될 때가 종종 있다. 글을 쓸 때 다른 전개로 흘러 가도 괜찮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따라가 보는 것이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써 낼 수 있도록 가만히 두면 된다. 그러면 내 손이 알아서 움직이고 내 머리에 꽂 혀 있는 이슈를 출력해 낸다. 사골 국물인지 누룽지탕인지 알 수 없는 비주얼 이상한 죄책감이 들어 ‘오늘 아침 밥상은 망했구나’ 싶었지만 맛있게 싹싹 비워 낸 아이들을 보며 사골국물에게 고마웠다는 말을 나는 더 하고 싶은 것이다.
늦잠 잔 아침 가볍고 따뜻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한끼를 제공해 준 사골 국물! 너 참 고맙다!
사실은 우리 겨울 내내 너 자주 먹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