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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oraJ May 22. 2019

마당 있는 단독주택의 즐거움 2

바질 페스토 만들기

단독주택 2년 차, 바질 풍년을 맞다

 바질이 풍년을 맞았다. 함께 심은 방울토마토도 애플민트도 모두 잘 자랐지만 바질의 폭풍 성장은 특히 더 반가웠다. 바질의 풍년이 다른 작물들의 성장보다 기쁜 이유는 구하기 어렵고 사기에 비싸기 때문이다. 급하게 배가 고프면 라면보다 파스타를 즐겨 찾는 나로서는 바질은 참 귀한 식재료이다. 소스에 바질이 들어간 것과 들어가지 않은 것은 풍미에 큰 차이가 난다. 마치 라면의 대파 같은 존재랄까. 하지만 파는 구하기 쉽지만 바질은 어렵다. 마트에서 발견했다 하더라도 잎 몇 장이 어찌나 비싼지 구매하기가 꺼려진다. 물론 말린 후 유리병에 넣은 바질은 비싸지 않다. 하지만 말린 바질과 생바질의 향의 차이는 굳이 비교할 필요가 없다. 생바질은 손으로 스치기만 해도 기분 좋은 향이 난다.


통실통실한 6개의 잎으로 시작한 바질이 이렇게나 자랐다.
바질 풍년, 저장 본능을 깨우다

 작년 대흉작이 어느 정도로 참담했는가 하면, 바질 모종의 잎이 6개 남짓이었는데 다 죽고 잎이 20개도 자라지 않았다. 그 남은 잎 들마저도 시들시들해 먹기에 찝찝했다. 그 광경을 본 언니가 이럴 것이면 그냥 모종을 샀을 때 바로 6개 잎이라도 따먹는 게 좋았겠다고 일침을 날렸다. 백번 옳은 말이라 반격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바질은 나무처럼 자랐고 일주일 내내 파스타와 피자를 만들어 먹어도 남을 정도였다. 초반에는 아까워서 수확도 잘 안 했더니 어떤 잎들은 좀 거칠어지는 듯도 했고 노랗게 뜨는 잎들도 생겼다. 당장 수확은 해야 했다.


 수확한 많은 바질을 오래도록 맛있게 먹을 방법을 고민하다 바질 페스토를 만들기로 했다. 바질 페스토는 파스타, 피자, 호밀빵 어디든 잘 어울리는 만능 소스이다. 내가 직접 마법의 소스를 만들 생각을 하니 심장이 두근거렸는데 생각해보니 바질 빼고는 아무 재료도 없었다.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 생마늘, 잣(가장 비싸다), 파마산 치즈(역시 비싸다)가 필요했다. 당장 모두 구매했다. 뭔가 배보다 배꼽이 큰 느낌이 들었지만 애써 수확한 바질을 관상용으로 끝낼 수 없었다. 완벽함을 위해서는 돌절구도 필요했으나 그것만은 참았다.


 재료가 적은 음식일 수록 각 재료의 상태가 좋아야 한다. 바질 페스토도 모든 재료가 각자의 역할을 잘해줘야 그 풍미가 살아난다. 잣은 프라이팬에 잘 볶거나 오븐에 구워 주어야 하고, 바질 잎은 깨끗하게 씻은 후 물기가 자연 건조되도록 말려줘야 한다. 파마산 치즈는 기분 좋은 짭조름함을 조절해주는데 피자헛에서 주는 가루 파마산 치즈를 사용하면 진득한 치즈의 풍미 대신 묘한 인공적인 냉장고향이 난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딱 그런 향이다. 올리브 오일은 향이 좋지 않은 저렴한 것을 사용하면 그냥 망한다.


갈갈갈. 맛있어져라~


 모두 샀더니 꽤 많은 지출이 발생했다. 이쯤 되니 바질 페스토의 시중 판매가가 궁금해졌다. 검색하자마자 거대한 바질 페스토가 500g에 만원대로 판매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대추 방울토마토 500g에 3천 원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아득해지는 의식을 붙잡고 만들기를 계속 이어갔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만드는 내내 집안에 바질의 향기가 가득해서 노동의 고단함을 덜어주었다. 올리브 오일과 마늘이 꽤 남아서 병에 같이 넣고 재워두었는데 이 것도 너무 맛있고 편리했다. 파스타 만들 때 매번 마늘 편을 썰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다는 것이 첫 번째이고, 올리브 오일은 잔뜩 머금은 마늘은 프라이팬에서 쉽게 타지 않고 물기 탓에 기름이 튀는 현상도 없었다. 이 후로 마늘 올리브유는 이렇게 자주 저장해두고 먹었다. 간단하게(?) 갈아주니 바질 페스토가 완성되었다. 당장 크게 몇 술 떠서 새우와 함께 볶아주었더니 단전에서 행복함이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직접 수확한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것은 언제나 (고되지만) 즐겁다.


쨔쟌~ 깊지 않은 유리병에 나눠서 담아 주었다(feat. 스타벅스 요거트병)
마늘올리브유는 만들어두면 정말 편하다
새우와 마늘, 바질의 조합은 어마어마한 향을 만들어낸다.
자연스레 알콜을 불러냈다
수확하고도 남은 바질들은 물꽂이를 해주었다 (feat. 역시 스타벅스 유리병)


모종에서 바질, 바질에서 페스토, 페스토에서 음식까지. 내 입으로 들어오기까지 많은 시간과 과정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밖에서 사먹은 수많은 파스타와는 다르게 직접 만든 투박한 파스타는 오감으로 몸에 기억되는 것 같았다. 뭐든지 쉽게 얻으면 좋다는 것이 도시의 논리이다. 먹기 쉽고, 저렴하고, 양도 많으면 최고다. 하지만 도시의 논리에 따라 그것이 우리에게 좋은 것이라면 왜 늘 아쉬움이 남는 것일까.


 고종 황제가 대사관저에서 미국인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테니스를 치는 모습을 보고 "어찌 저렇게 힘든 일을 하인들을 시키지 않고 귀빈들이 하느냐"라고 안타까워했다는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이 것을 들었을 때 고종의 생활이 참 안쓰럽다는 생각을 했었다. 한편으로 도시인들의 삶도 고종과 같은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힘이 들더라도 직접 해야 즐거운 것들이 있는데 어느새 그런 기쁨을 돈까지 주면서 타인에게 시키고 있는 것들이 많은 것 같다. 일을 더 많이 하기위해서 과정에서 오는 기쁨을 포기하는 것이다. 나 역시 이렇게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은 일주일에 2번도 채 되지 않는다. 대부분 외식으로 해결하고 간단하게 먹고 끝낸다. 하지만 가끔이라도 이렇게 긴 과정을 거쳐 음식을 해 먹고 나면 배도 기분 좋게 부르고 마음도 편안해짐을 느낀다. 좀 더 자주 이런 시간을 가져야지 다짐해본다.


Eat something healthy and cre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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