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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과학자 Jul 10. 2022

'대가(大家)'의 방법

[서평] 최재천의 공부

저는 아직 천장이 어딘지 모릅니다. 지붕 없는 세계에서 살아요. 그래서 비는 많이 맞는데 아직 하늘이 얼마나 높은 줄 모릅니다.
- 최재천의 공부, p.192 -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크기의 그릇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그 안에 담을 수 있는 '세상의 양'이 천차만별이다. 누군가는 소주 한잔의 양에도 버거워하고, 누군가는 드넓은 바다의 양에도 여유를 느낀다. 문득, 내 그릇의 크기는 얼마나 될지 궁금해다. 그러나 제 그릇의 크기를 스스로... 가늠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누군가와의 '비교'를 금기 시 하는 요즘이지만, 큰 그릇 옆에서 제대로 '비교' 해보지 않으면 자신만의 착각 속에서 헤어 나오기 결코 쉽지 않다. 


'최재천의 공부'의 저자는 평생 자연을 관찰해온 생태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이다. 서울대학교에서 동물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을 거쳐, 현재는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수십 권의 전문 서적, 교양 서적을 편찬하고, 최근에는 <최재천의 아마존>이라는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저자의 책과 영상을 접해보면, 이 사람 '정말 '찐' 대가구나'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좀... 딴 세상 사람 같다는 생각도 든다. '유리 천장', '헬 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요즘, '저는 아직 천장이 어딘지 모릅니다'라는 그의 말이 너무 놀랍고, 새롭게 느껴진다. 한편으로, 에 대한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난 나름 열심히, 잘 살아왔다는 생각을 했었다. 박사 학위도 받았으니, 내 그릇은 좀 큰 편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대가'의 글을 접해 보니... 난 기껏 우물 안 개구리일 뿐이었구나... 하는 자조가 밀려왔다. 아직은... 숨이 턱 막히게 전력 질주해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하는 조급함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난 어차피 글렀어'하는 자포자기의 심정 드는 것은 아니다. 적당히 긴장되게, 적당히 뜨끔하게, 그래도 아직은 따라 할 만하겠다는 작은 자신감 들기도 한다. 렇게 따라 하다 보면 나도 저 '대가'처럼, 그래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설렘 드는 것 같다. 




많은 일을 하면서 어떻게 느긋할 수 있느냐고요? 마감 1주일 전에 미리 끝냅니다. 마음에 엄청난 평안은 줘요. 결과물의 질을 높일 수도 있고요.
- 최재천의 공부, p. 74 -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라고 했던가? 모두가 알지만, 실행하지 못하는 것, 그 '작은 실천'이 '대가'를 만든 비결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는 '언제까지 끝내야 하는 일'은 반드시 마감 1주일 전에 미리 끝낸다고 한다. 미리 다 해놓고, 남은 기간 다른 일을 하다가 30분 정도 여유가 생기면 그때 다시 그 일을 살펴본다. 이렇게 한 번 더 읽어 보고, 조금 고치면서, 결과의 '질'을 한껏 올리는 것이다.


당연한 말인 것 같은데, 실천은 정말 어렵다. 내가... 마감 일주일 전에 일은 마친 적이 있던가? 솔직히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사실... 반복적으로 마감에 쫓기며 일을 하다 보면, 긴장을 조절하지 못해 몸과 마음이 힘들다. 고무줄에 비유하면, 팽팽하게 당기기만 하고 이완시키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철사처럼 굳어져 자기를 찌르게 된다. 면서도 이런 고통 주기를 여러 번 반복다. 어떠면 스스로를 벼랑으로 모는 습관을,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라고 착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1주일 전에 일을 마치는 게 특별히 수고가 더 드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일정만 조금 앞당기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그 작은 시점의 차이는 매우 큰 관첨의 차이를 만든다. 내가 끌려가느냐, 끌고 가느냐를 결정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리미리 하는 습관', 이제는 정말... 말뿐이 아니라... 진심으로 나의 습관으로 만들어야 하겠다는 다짐이 든다.


저는 어울리기 좋아하지만 반드시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합니다. 그 시간에 외롭다는 표현은 전혀 어울리지 않아요. '자발적 홀로 있음', 시인 황동규 선생님은 그걸 '홀로움'이라 불렀습니다.
- 최재천의 공부, p.97 -


저자는 저녁 9시가 되면 누군가 함께하는 일과를 끝낸다. 저녁 식사 후 설거지와 뒷정리를 하고, 어김없이 9시에는 책상에 앉는다. 9시 이후에는 문자도 전화도 받지 않는다.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하루 4시간은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으로 사용한다. 자신에게 모든 것을 집중하는 시간, 저자는 이 시간을 '자발적 홀로 있음'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흔히 '고독'과 '외로움'을 구분하지 못하고 '고독'과 '고립'을 혼동하는 것 같다. '고독'은 저자가 말하는 '자발적 홀로 있음'에 가깝다. 이 홀로 있음은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라, 자신과 온전히 함께하면서 자신 안에 스며든 세상의 요소를 바라보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창의력은 혼자서 몰입한 시간이 만들어낸다"라고 했던가. 저자가 말하는 이런 혼자만의 시간이 쌓여 세상의 꼭짓점을 끌고 가는 아이디어나 결과물이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홀로움'의 필요성을 강력히 지지한다. 나 역시, 가능한 9시 늦어도 10시 이전에는 하루 일과를 마친다. 잠자리에 들고, 새벽 4시쯤 일어난다. 그때부터 7시까지 하루 3시간은 나만의, 혼자만의 시간이다. 이 시간에는 가능한 생산적인 일을 한다.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명상도한다. 이 시간을 잘 보내고 나면, 출근길이 아주 든든하다. 내가 선택한 일을 잘 해냈다는 뿌듯함이랄까? 하지만, 책의 저자만큼 홀로 있는 시간을 그리 밀도 있게 사용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가끔은 늦잠 자고, 가끔은 멍 때렸던 적도 꽤 있으니까... 이번 기회를 빌어서, 나의 혼자만의 시간을 더욱 단단하게, 더욱 가치 있게, 바꿔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메타인지'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과 바꿔 쓸 수 있다. 나의 능력이, 나의 노력, 나의 방식이 객관적으로 어느 수준인지 정확히 아는 것을 말한다. '메타인지'는 혼자서 곰곰이 생각한다고 해서, 그냥 가까운 지인들에게 한두 번 물어본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이 읽고, 보고, 냉정하게 비교하며 따져 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책의 저자는 스스로의 '메타인지'를 높일 수 있는 제대로 된 비교 상대라는 생각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 저자가 행하는 몰입의 깊이를 관조하다 보면 '찐' 현타를 느낄 수밖에 없다. 마냥,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오랜만에 정말 제대로 된 대가를 만난 것 같아 마음이 즐겁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제대로 가늠하고 싶을 때, 새롭게 재조정하고 싶 그런 때.. 이 책을 한번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다채로운 지적 자양분, 또는 명료한 대답으로 무릎을 탁 치게 만들어 줄 것이라 자신한다.  


'최재천의 공부' 책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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