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까지 4전 4패!
오랜만에 MBTI 검사를 했다. 눈에 띄는 점은 INTP에서 INFP가 되었다는 점. T와 F는 자주 오락가락하긴 했다. 그리고 외향성이 많이 올라왔다. 내향성이 95% 이상이었다 보니 88%의 결과물만 보아도 상당히 사회물을 섭취했구나... 싶다.
취업 한파라고 말하지만 그래도 웹디자이너, IT 직군은 상대적으로 자리가 많다고, 큰 걱정은 안 했었다. 예전에 만들어놓은 포트폴리오와 전 회사의 작업물을 취합한 이력서를 웹디자이너, UI 디자이너 포지션을 구하는 공고가 보이는 족족 지원했다. 사람인과 잡코리아를 합쳐서 100곳 이상은 넣었다. 1차 합격 연락은 10곳이 좀 안 된 것 같고... 현재까지 총 네 곳의 면접을 봤다.
모두 장렬하게 망했다.
한 곳을 제외한 회사에서 자기소개를 주문했다. 보통 자기소개서의 내용을 기반으로 성격, 업무 능력, 포부 등을 적절히 배합하여 1분 정도 얘기를 하는데... 여기서부터 말렸다. 준비를 하든 하지 않든. 문장의 어미가 사라지고 절었다. 나 뭐라고 말해야 하지? 뭐라고 말하고 있더라? 생각이 들면 황급하게 말을 끝냈다.
긴장을 많이 하셨나 봐요.
사실 꼭 그런 것도 아니었거든요,라는 말 대신 머쓱하게 웃었다. 포트폴리오와 자기소개서에 기반한 질문이 이어졌다. 거의 비슷하다. 각 회사마다 원하는 인재상이 다르다. 배너나 상세페이지를 주로 작업해서 시각적인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퍼블리싱의 비중이 높거나 인디자인을 다룰 줄 아는지, 기획이 가능한가... 특히나 웹디자이너의 경우 오로지 웹디자인만 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면접 복기도 중요하지만 그 순간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떤 대답에도 무난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노력했던 것? 예스만 외쳤던 것 정도?
앞으로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으세요?
의례적인 질문이다. 비전공자에서 웹디자이너를 준비할 때, 면접을 다닐 때도 자주 마주치곤 했다. 자소서에 있는 내용을 읊기만 해도 된다. 저는 사용자 친화적인 디자인을 하고 싶습니다... 꾸준하게 배우는 태도로... 그런데 그 순간 턱 막혀버렸다. 아주 어려운 질문도 아니었는데.
가장 최근에 본 면접은 전 직장과 유사했다. 개발자 위주로 외주를 받는 에이전시로 생각하면 편할 것 같다. 면접관들은 내가 사수 없이 혼자 디자이너로 작업한 결과물을 보면서 경악과 폭소와 연민을 보였다. 야근 많이 했겠네요. 퍼블리싱은 통으로 했다고? 그누보드? 20년 전에나 쓰던 걸? 치킨집을 하고 있어야 될 사람들이 저 회사에 갔구먼. 포토샵으로 작업했다고요? 아휴...
이 회사뿐만 아니라 면접관들은 공통적으로 내게 고생 많았다고 말했다. 그게 약간 위로가 됐다. 1년을 채우지 못한 애매한 경력이 될 정도로 당시의 나는 빨리 회사를 나와버리고 싶었다.
처음에는 경력 디자이너와 함께 입사했다. 사수가 되실 분이었다. 3일 만에 사라졌다. 곧 디자이너를 구해준다고 했다. 그렇게 몇 개월 후 경력 디자이너가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대표 왈, 나보다 디자인을 못한다고, 경력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고, 자기들이 나간다는 의사를 보였다고 말했다. 그들은 내가 있으니 바로 퇴사가 됐는데. 나는 디자이너가 없다는 이유로 바로 나갈 수 없었다. 수습 이후 퇴사를 말했다가 애매한 경력과 재택근무라는 이유로 번복하고, 적응이 되면 나으려나, 네가 회사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해서 그런 거야, 주위의 극단적으로 이성적인 조언에 힘입어 다시 혼자 디자인을 했다. 메인 홈페이지 디자인은 1일이나 2일 이내. 보통 서브페이지는 5일에서 최대 8일 정도. 랜딩페이지는 1일 안에 뽑아내야 한다. 3개월 차까지는 울면서 잠에 들었다. 초창기에는 퇴근 이후에도 레퍼런스를 찾고 작업했다. 개발자 차장에게 컨펌을 받았다. 미대 출신이라고 잘 본다나 뭐라나.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한다. 물어보면, 당신이 디자이너인데 알아서 해야죠, 이런 식이다. 그래서 알아서 하면, 그게 정말 괜찮다고 생각해요? 퍼블리싱 관련도, 검색하면 되지 않아요? 개발자뿐인 이 회사에서 html/css는 아주 기본적인데 나는 어느 정도는 익숙해져도 너무 싫고 재미가 없었다. 점점 디자인 일이 줄어들면서 퍼블리싱 업무가 늘었다. 초심자의 운이었을까. 클라이언트들은 디자인한 결과물을 만족스러워했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사람들의 니즈를 반영하고 온갖 레퍼런스를 섞어 만든 디자인에서 애정이라던가 뿌듯함을 찾을 수가 없었다. 누가 일을 좋아해서 하나요? 돈 벌려고 하는 거지. 그런 말이 흔하지만. 한편으로는. 퇴근 후 소진되어 나가떨어지길 반복하는데. 좋아하는 마음도 남아있지 않으면. 이 박봉을 견딜 이유는 뭐지?
예정되어 있던 면접을 취소했다. 집에만 있긴 눈치가 보여 카페로 나왔다. 습관적으로 구직 사이트에 접속했다. 회사는 많고 직무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