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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한 Oct 09. 2023

두고 온 여름의 섬

두고 온 여름의 섬 #0



@eunn-han



어젯밤 나를 스쳐간 것들에 대해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기에 아무래도 먼저 내가 살다 온 섬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분명 나만, 쓸 수 있는 이야기이자, 내가 오랫동안 간직했던 말들이다.



언제부터였을까. 그곳에 대한 일을 기록해야겠다고 언제부터인지 가물가물하지만 한참을 생각해 왔다. 아마 서울의 한복판 16층 창문에서 바라본 이정표같은 보라색 네온사인 때문일까. 따듯한 집을 형상화한 앨범재킷이 인상적인 재즈를 틀었기 때문일까. 어찌 되었든 이 모든 것은 나에게 하나의 포근함이라는 감정으로 남아 기억 저편 내가 가장 평온했을 때의 일을 함께 기억나게 했던 것이다.



무언가를 두고 왔다-라는 말이 혀끝에 맴돌았다. 두고 왔다는 의미는 데려가지 않고 남기거나 버렸다는 것. 어떤 시간과 공간 속에 놓고 떠났다는 것.

나도 무언가를 두고 떠나온 적이 있기에 한동안 내 마음속에 남은 한 문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 말이 남은 게 한여름이어서, 나는 한여름에 내가 두고 온 것들을 자주 떠올리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는, 내가 떠나온 그래서 내가 어딘가에 두고 와버린 섬을 생각했다. 최근에 본 영화에 대해 평하는 회사 동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멍하니 빈 화이트보드를 응시하며, 비 오는 이른 아침 출근길 버스에서, 구겨지고 쓸데없지만 왜 버리지 않았는지는 모를 영수증 종이를 찾다가. 그냥 내가 스치는 모든 순간 사이에서 그 섬을 생각했다.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한다. 내가 그 섬을 떠나 이곳에 있는 게 꿈인 것 같다고. 아주 더운 여름밤 열대야에 끈적이는 몸을 뒤척이며 힘들게 꾸고 있는 그런 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고. 사실 내 몸은 아직 그곳에 있는 게 아닐까. 그냥 눈을 뜨면 다시 그곳이 아닐까.



그만큼 나의 기억에 깊이 자리 잡아버린, 어쩌면 지금의 나를 만들었던 그 수많은 섬의 여름들이 물밀듯이 떠내려온다. 너무 그립다 보면 서글퍼지기에 조금이라도 나아지려고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꺼내어 글을 썼다.

초여름부터 늦여름까지 적었다.



한참을 건너뛴 몇 년 전 여름날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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