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설빈 Apr 05. 2021

영화 <메기> 리뷰 (2) : 믿음과 연대

그럼에도 믿는다는 것





믿음과 의심에는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다 



윤영이 경진에게 제안한 ‘믿음 교육’이라는 것은 정말로 가능한 것일까? 


교육이라는 것은 일정한 기준을 토대로 무엇인가를 습득하는 과정인데, 믿음에는 과연 그러한 기준이 존재하는 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고 예상치 못한 사건을 마주하며 진실과 거짓이라는 무수한 가치를 헤쳐 나가며 살아간다. 각자가 마주하는 그러한 삶의 과정은 획일화 할 수 없이 천차만별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믿고 어떤 무언가를 또 의심하는 과정에서 사실 규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때로는 너무도 주관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터무니없기도 하다. 믿음과 의심이라는 것은 동전의 양면성처럼 한 끗 차이로 발생할 때가 많다. 우리는 어떤 것을 믿고 의심할 때 그 상황과 대상이 전혀 다름을 알면서도 일련의 규칙성을 부여하려고 할 때가 많지는 않은가. 자신이 동료를 의심했던 것처럼 윤영이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고 믿는 성원, 믿음 교육이라며 사람을 믿자고 해놓고도 환자를 의심해 수면마취 주사를 놓는 윤영의 모습에서 우리는 각자가 믿고자 하는 부분은 너무 쉽게 믿고 의심하고자 하는 부분에서는 없는 근거마저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한다.





‘편집되지 않은 사실이 존재하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 라는 영화의 말처럼 우리는 스스로 사실에 대한 근거보다는 내 기준대로 사실을 재단하는 것은 아닐까. 


각 사건들을 헤쳐 나가는 인물들에게 부여되는 상황은 마치 옴니버스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전혀 다른 상황과 전개를 보여준다. 또한 그 안에서 무언가를 믿고 의심하게 되는 부분은 명확하게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상황을 만났을 때 우리는 이전의 경험으로부터 불러온 기억을 편집해 무언가를 다시 믿고 의심하는 것을 반복하곤 한다. 그리고 자신과 타인이 느끼는 감정과 상황이 다름에도 자신이 느꼈던 경험을 억지로 강요할 때도 있다. 과연 이것을 일련의 과정과 규칙을 통해 배움을 얻는 ‘교육’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무엇인가를 믿는다는 신념은 수많은 진실과 거짓 속에서 내가 주관적으로 사유하고 선택하는 과정이며 스스로가 경험을 통해 쌓아가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이전의 경험이 현재의 판단에 대한 참고가 될 수는 있지만 과거의 방법이 언제나 지금의 정답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교육 된다 라기 보다는 스스로 깨우쳐 가는 과정이라 하는 편이 더 맞을 것이라 본다. 그 과정 가운데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진실과 거짓 그리고 믿음과 의심에는 삶에서 마주하는 여러 순간만큼 그저 다양한 ‘경우의 수’만이 존재한다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연대라는 이름으로 살아 숨 쉬고 있는 믿음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의 일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뿐이다. 찰나의 순간에 결정되는 첫인상이 타인의 이미지를 결정할 때도 있지만 우리는 종종 그 이미지와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은 새로운 모습을 발견해 가기도 한다. 절대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던 사람과 함께 문제를 풀어나갈 때도 있고, 오랜 시간 함께해온 가까운 사람에게 어느 순간 벽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 예측할 수 없는 유동성과 변수는 이성, 동성 간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관계에서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성간에도 믿음은 존재하지만, 동성 간에는 이성 관계에서와는 다른 형태인 그들만의 ‘연대’가 존재한다. 다소 뜬금없이 윤영을 찾아온 성원의 전 여자 친구 지연은 과거에 자신이 성원에게 학대 당했던 사실을 털어놓는다. 사실 윤영과 지연은 전혀 관계가 없는 인물들이다. 성원이라는 공통된 인물을 통해 간접적으로는 이어져 있지만 굳이 자신의 아픈 기억까지 드러낼 만한 사이는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연이 윤영에게 말을 꺼낸 이유는 자신이 겪은 불행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 인 것이다. 지연의 말을 들은 이후 윤영이 느끼는 성원의 행동들은 모두 의심스럽기만 하다. 아무렇지도 않아보였던 그의 문신이 이상해보이고 깡통 캔을 밟는 모습에서 폭력성을 느끼며 윤영은 혼자서 불안감을 키워간다.


계속해서 고민하던 윤영은 결국 경진에게 조언을 구한다. 윤영보다 더 많은 세월을 거쳐 온 경진은 단순하지만 명료한 답을 내린다. 진실을 직접 마주하라는 것이었다. 다소 뻔하게 들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진실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추측만으로 관계를 단절하라고 조언하는 것 보다는 이성적인 조언일 수 도 있다. 진실을 마주 한 뒤의 선택은 오롯이 윤영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진은 초반에는 윤영에게 퇴사를 권고하고 관행대로 행동하려는 다소 거리가 있는 기성세대의 인물처럼 그려졌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사건을 헤쳐 나가며 연대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자꾸만 커져가는 의심에 고민하던 윤영은 지연의 말을 믿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성원과 헤어지고 난 후 경진의 말대로 성원에게 직접 물어보며 진실을 마주한다. 무방비한 상태로 방치되어 있던 윤영에게 손을 내민 것은 지연이었고, 그 구덩이에서 빠져 나올 수 있도록 해법을 제시해 준 사람은 경진이었다. 서로가 모두 ‘여성이기 때문에’ 처할 수 있는 상황이나 어려움을 알기 때문에 윤영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흔히 말하는 남자 사이의 우정이나 의리와는 다른 형태로 여자 사이의 관계에서도 분명 여성만의 연대가 존재한다. 그것은 주로 ‘여성만이’ 공감할 수 있는 것에서 기인하는데, 지연과 경진 두 사람 모두 폭력에 대한 불안함과 아픈 기억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윤영의 일을 타인의 일처럼 조망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의 손길을 건네며 연대함으로써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불신으로 가득한 삭막한 사회 가운데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은 연대라는 이름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메기> 리뷰 (1) : 의심이라는 구덩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