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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우 Dec 17. 2023

매몰비용이 매몰비용이 아닐 때가 있다.

당신은 한달 전에 20만원짜리 콘서트 티켓을 예매했다. 오늘 저녁 관람인데, 하필이면 아침부터 고열에 시달리고 있다. 관람을 포기할 경우, 20만원은 환불되지 않는다. 어떻게 할 것인가?


공연 관람으로 얻는 효익은 즐거움이고 비용은 고열로 인한 고통과 옆 자리 사람에게 미치는 혹시 모를 피해, 그리고 예매에 들어간 20만원이다. 관람으로 인한 즐거움이 30만원의 가치가 있고, 병원을 가지 않고 공연장을 찾아 얻는 고열의 고통과 혹시 모를 피해가 40만원의 가치라면 관람을 할 경우 손실은 30-40-20 즉, -30만원이다. 그냥 관람을 포기하면 손실은 20만원이다. 이 경우 손실을 최소화하는 측면에서 관람을 포기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티켓 예매 비용 20만원이 회수할 수 없는 매몰비용(sunk cost)라는 사실을 알지만 그냥 날리는 게 너무 싫다. 손실 회피(loss aversion) 즉, 같은 금액이라도 이득 상황에서보다 손실 상황을 더 크게 인식하는 인간의 심리적 특성으로 인해 기어코 콘서트장에 나간다.


또 다른 사례를 보자. 당신은 오래 전부터 가고 싶었던 휴양지 2박 3일 호텔 숙박권이 50만원에 나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급히 예매를 했다. 그런데 당신의 배우자 역시, 같은 날짜, 같은 호텔의 숙박권을 오션뷰까지 지정할 수 있는 특가로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발견하고 30만원에 예매를 했다. 두 숙박권은 모두 환불 및 양도 불가다. 누구의 숙박권을 활용할 것인가? 숙박권 예매에 들어간 돈은 매몰비용이다. 따라서 효용을 극대화하는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므로 너무나 쉽고 간단한 의사결정이다. 하지만, 당신은 50만원 숙박권을 선택하고 호텔에 전화해 30만원 숙박권에 포함된 오션뷰 선택권을 옮겨달라고 30만원 숙박권을 선택했다면 하지 않아도 될 수고스러운 부탁을 할 것이다.


심리학과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매몰비용의 오류(sunk cost fallacy)는 이미 투입한 비용과 노력이 아까워서 경제성이나 효용성이 없는 사건을 중단하지 않고 손실을 키우는 것을 말한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대표적인 매몰비용의 오류는 부루마블 게임에도 나오는 콩코드기 개발 사례다. 1962년 영국과 프랑스는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의 공동개발에 착수했다. 개발 과정에서 이용객이 적고, 연료비는 비싸 과도한 운송비로 사업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이미 들어간 투자 비용을 포기하지 못하고 개발을 강행해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일단 매몰비용으로 판명된 다음에는 경제적 셈법은 달라져야 한다. 매몰비용이 된 시점 이후에 경제성을 분석할 때는 매몰비용은 더이상 고려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손실을 혐오하고, 자기가 하는 일이 장밋빛이 될 것이라고 믿는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에, 자신의 결론에 부합되는 증거만 보려고 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 벗어나지 못한다. 의사결정 전문가들은 이러한 오류를 인식하고 냉정해지라고 조언한다.


그런데, 과연 매몰비용의 오류가 나쁘기만 한 걸까?

최근 미국 콜라라도 볼더대학교 리즈 경영대학원(Leeds School of Business)의 제프리 로이어(Jeffrey Reuer) 교수 등의 연구진들은 매몰비용과 관련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Academy of Management Journal에 발표했다. 비즈니스 전략 전문가답게 로이어 교수는 기업이 매몰비용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다는 관점을 갖고 있었고 실제 비즈니스 현장에서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문의 제목은 Resource Idling and Capability Erosion다. 굳이 번역을 하자면 자원 공회전과 역량 부식인데, 기업이 투자를 멈추는 것이 곧 역량 저하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비록 매몰비용이라 하더라도 계속 자원을 투자하는 것이 역량 저하를 막는 좋은 전략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들은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석유 시추 사업에 관한 데이터를 활용했다. 석유 시추 사업은 매몰비용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대표적인 비즈니스다. 시추하는 도중에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매몰비용으로 판명난 후에도 시추를 이어간 조직과 그렇지 않은 조직은 무엇이 달랐을까?

연구진들은 DrillingInfo, RigData, Texas Railroad Commission (TRC)과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 (EIA)의 데이터를 활용해 분석했다. TRC는 텍사스의 모든 석유와 가스 시추를 감독하고 시추된 모든 유정에 대한 기록을 하는 위원회고, EIA는 석유가스 산업에 대한 거시적 데이터를 유지 관리하는 연방 기관이다. 이러한 데이터로부터 연구진들은 석유 시추에 관한 다양한 실증적 연구 정보를 검증할 수 있었다.


연구 결과, 매몰비용으로 판명난 후에 과감히 시추를 그만 둔 조직의 장기적인 수익성이 악화됐다. 시추를 그만둔 조직은 우수한 역량을 갖춘 인재를 뺏기기도 쉬웠고 기술력 등 인적 자원을 유지하는 것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반면에 매몰비용을 감수하고 시추를 이어간 조직은 당장은 어려웠지만, 장기적인 사업성을 강화할 수 있었다. 그러니 매몰비용이 늘 매몰비용은 아닌 셈이다. 우수한 역량을 갖추고 인적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기업일수록 특히 그렇다.


매몰비용이 발생하는 환경적 원인은 불확실성 때문이다. 비즈니스 자체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제대로 계획을 못하고 의도한 대로 사업이 진행되기도 어렵다. 불확실성이 심화되면 조직은 관련 비즈니스에 투여된 자원을 매몰비용으로 서둘러 결정하는 경향도 높다. 해당 시점에서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불확실성하에서 매몰비용으로 서둘러 결정하고 비즈니스를 중단하는 경향은 우수한 역량을 갖춘 회사일수록 더 심했다.



출처 Ross, J. M., Li, T. X., Hawk, A., & Reuer, J. J. (2023). Resource idling and capability erosion. Academy of Management Journal, 66(5), 1334-1359.



마찬가지로, 인적 자본에 의존하는 경향성이 높은 조직이 자동화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은 회사에 비해 매몰비용의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사업 포기를 서둘렀다.



매몰비용도 전략적 차원에서 감수해야 할 경우가 있다. 역량이 높고 인적 자원에 의존성이 높은 조직이라면 반드시 매몰비용의 전략적 활용을 검토해야 한다. 나는 인간관계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믿는다. 나는 누군가에게 내 시간과 지식을 아낌없이 나눠주는 편이다. 그러다 왕왕 내 시간이 매몰비용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사람들 소위 테이커(taker)들을 만나게 된다. 이들은 내 시간과 지식에 보답할 생각이 전혀 없다. 조직심리학의 대가인 애덤 그랜트(Adam Grant)는 그의 책 "기브앤테이크(Give and Take)"에서 기버(giver)들이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테이커(taker)를 만났을 때 기브앤테이크가 분명한 매처(matcher)의 전략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그랜트 교수의 주장이 대부분의 상황에선 옳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그렇지 않은 경우란 나 외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정보를 얻기 쉽지 않을 때다.


내가 속한 HRD 업계는 잘못된 지식과 정보가 난무하다. 어떤 이는 무엇이 잘못된지 모른 상태로, 어떤 이는 잘못된 지식에 확신과 신념을 담아 진정성 있게, 어떤 이는 긴가민가하면서 지식과 정보를 전파하고 확산한다. 안타깝게도 이들이 업계에 영향력이 큰 주류다. 제대로 학습하고 바로 잡는 사람은 드물다. 이런 상황에서는 나라도 호구가 되는 것이 옳다. 그래야 호구의 영향을 받은 테이커들이 자신들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을 기회가 생길 테니까. 이 테이커들은 자신들의 이용 기회가 줄어들 것을 염려해 나를 누군가에게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겠지만 그 테이커들의 변화로도 충분히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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