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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우 Dec 28. 2023

공감하다 공감피로에 쓰러지는 사람들

사람들은 시대적 화두는 변해도 편치 않은 인간이 지녀야 할 가치는 소통과 공감이라고 믿는다.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단순한 성격적 특성이 아니라, 단점을 넘어 결함이다. 특히, 리더가 공감 능력이 없다면 소속된 모든 구성원들을 불행하게 만든다.


공감은 중요하지만, 부정적 측면 역시 크다. 폴 블룸(Paul Bloom) 공감의 배신에서 공감은 어리석은 판단을 이끌어내고 무관심과 잔인함을 유발하며, 친구, 부모, 남편, 아내로서 역할을 더 어렵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당신이 아픔을 공감한 특정한 한 아이를 죽게 할 것인지, 이름도 모르는 20명의 아이들을 죽게 할 것인지 선택하는 상황에 있다면, 공감은 1명을 살리는 쪽을 선택하는 결정을 하게 할 것이다. 당신이 하마스의 이스라엘 침공 시, 피해자에 공감할수록 가해자를 더 잔혹하게 처단하는 것에 동조할 것이다. 

 

폴 블룸의 대안은 공감이 아니라 친절, 배려, 연민이고 이성과 자제력이다. 공감과 달리 연민은 타인의 고통을 공유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연민의 특징은 타인의 행복을 증진하려는 동기와 더불어 따뜻함, 관심, 배려의 감정이다. 심리학에서 정의하는 공감은 타인의 감정을 동일하게 느끼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처한 상황이나 관점을 이해할 수 있는 인지적 해석을 포함한 과정인데, 폴 블룸의 주장은 정서적 공감은 줄이고, 인지적 공감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지적 공감의 어두운 면은 없을까?


인지적 공감 역시 제한된 자원이라는 점이다. 무한정 쓸 수 없다. 일정 수준 이상의 자원을 쓰고 나면 피로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심리학이 밝혀낸 인간이 쓸 수 있는 자원의 특징 중 하나는 신체적, 정서적, 인지적 자원의 원천이 같다는 것이다. 신체적, 인지적으로 자원을 소진하고 나면 정서적 자원을 쓸 수가 없다. 쉽게 짜증내고 버럭하는 이유는 성격적 결함보다는 몸은 지쳐있고, 고민거리는 쌓여있기 때문이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들이 가장 까칠해지는 시기가 언제일까?인턴을 수료하고 레지던트 과정에 접어들 때다. 이때, 의사들은 감정이 완전히 소진되고 환자들을 물건처럼 대하기 시작한다. 전체 의사 중에 대략 60% 정도가 이러한 공감피로(compassion fatigue)를 호소한다. 역시 여러 단톡방이나 SNS의 메시지에 공감 표현을 하기가 어려운 때가 있다. 신체적, 정서적, 인지적 자원이 고갈됐을 때다.


공감피로의 증상은 스트레스 반응과 매우 유사하다. 당신이 누군가에 정서적, 인지적으로 지나치게 공감해 자원이 고갈될수록 기억력은 떨어지고 공포와 슬픔, 분노가 늘고 의욕은 떨어지며 소화도 안되고 불면증에 시달릴 확률이 크게 높아진다. 전문가들은 공감 피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타인과 미디어로부터 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그런데, 최근 Psychological Science에 공감 피로를 극복하는 흥미로운 대안이 나와 소개하고자 한다. 미시간대학교 로스 비즈니스 스쿨의 줄리아 리 커닝햄(Julia Lee Cunningham) 교수 등의 연구진은 공감 피로가 일종의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공감이라는 자원은 제한된 것이라고 믿는 집단은 실제 공감 피로를 크게 느껴 공감을 점점 못하게 된 반면, 제한된 자원이 아니라고 믿는 집단은 공감 피로를 크게 느끼지 않아 지속 공감할 수 있었다.



출처: Gainsburg, I., & Lee Cunningham, J. (2023). Compassion Fatigue as a Self-Fulfilling Prophecy: Believing Compassion Is Limited Increases Fatigue and Decreases Compassion. Psychological Science, 34(11), 1206-1219.



커닝햄 교수가 주장하는 바는 실제 공감이 제한된 자원이냐, 아니냐 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공감적 자원에 대한 자신의 믿음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의 모든 특성에 자기 충족적 예언이 예외없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응답해 준다"는 끌어당김의 법칙과 같은 막연한 믿음은 과학적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다. 자기 충족적 예언이 잘 드러맞는 영역은 개념은 명확한데, 제대로 측정하거나 가늠하지 못하는 속성에서다. 키와 몸무게, 신체 능력과 같은 것들은 측정이 용이하고 측정의 신뢰도도 높다. 이런 영역에서는 자기 충족적 예언이 발현되기 어려우나, 공감 능력 자원과 같은 항목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지능과 성격도 안정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도구가 개발됐다해도 측정 오차가 신체적 특징에 비해서는 크기 때문에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과 같은 믿음이 개입될 여지가 크다.


리더십이나 인간관계, 업무 역량도 마찬가지다. 리더십의 영향력이나 관계의 질, 업무 능력을 정확히 측정하기 어렵다. 이런 영역에서는 마인드셋의 역할이 클 수 있다. 새해를 맞아, 어떤 영역에 어떤 마인드셋을 가지면 좋을지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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