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자제력이 인생의 성공을 예측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다."
마시멜로 실험 이야기다. 한 선생님이 만 4세 가량의 아이에게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마시멜로 하나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이 15분 뒤에 돌어올 거야. 그때까지 이걸 먹지 않고 기다리면 하나를 더 줄께"
이 때, 기다려서 두 개를 받았던 아이들을 추적 관찰했다. 이 아이들은 청소년기에 리더십, 인지능력, 학습능력, 평판, 학업성적, 건강상태 등이 우수했고 좌절과 스트레스를 견디는 힘도 강했다. 자제력, 의지력으로 알려진 만족지연능력(delay of gratification)은 인생의 성공을 예측하는 중요한 지표다.
이후 마시멜로 실험은 여러차례 도전을 받았다. 가장 중요한 도전은 이 실험이 스탠포드 대학교 병설 유치원에서 진행됐다는 점이다. 스탠포드 교직원 자녀면 이미 가정 환경을 비롯한 사회, 경제적 지위가 미국 내에서도 매우 우수한 집단이다. 가정이나 양육환경, 사회경제적 지위 등 다른 조건이 통제됐으니 매우 좋은 실험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즉, 다른 환경적 요인이 통제된 상태에서 만족지연능력(delay of gratification)만 다른 것을 확인했으니 얼마나 완벽한 실험 조건이냐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의 다른 한 편으로는 환경적 조건이 다른 곳에서는 일반화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 90년 미국립보건원이 실시한 900여 건의 데이터를 보면, 이때도 기다린 아이들은 15세 때 공부도 잘하고 문제를 일으킬 확률도 낮았다. 그런데, 가정환경이나 지능 같은 요소를 통제하자 인과관계는 사라졌다. 다시 말해 지능이나 가정환경이 비슷하다면 기다리던 그렇지 않던 청소년기의 학업성취도에 차이가 없었다는 말이다. 가정환경이 우수한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오래 참았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대체로 참을성이 없었다. 이때, 어머니의 학력은 다른 요소에 비해 훨씬 중요했다. 가난한 집 아이들은 참을성도 없었다. 가난하면 확실히 보장된 것이 적다. 오늘은 음식이 있지만 내일은 없을 수 있다. 부모가 약속한 내일의 마시멜로는 막상 내일이 되면 약속이 깨질 수 있다. 아이들은 누군가를 신뢰하기 어렵다. 이 연구가 밝혀낸 바는 사회경제적 환경이라는 효과가 실제로는 가장 중요하며, 아이들의 만족지연능력은 이에 비하면 영향력이 없거나 미미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마시멜로 하나를 더 기다린 것으로 인생의 성공을 예측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발상일지 모른다. 만족지연능력이 단순한 자제력이나 인내심이 아니라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포함한 복합적 능력일 수 있기 때문이다.
50여년의 시간 동안 아이들의 자제력은 점점 좋아지고 있다. 이런 결과가 나오는 이유에 대해 실제 자제력의 증가라기보다는 사회적 신뢰의 향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60년대 후반 70년대 초반의 아이들은 기다리면 2개를 준다는 선생님을 신뢰하기 어려웠지만, 사회적 신뢰가 쌓인 시기에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은 선생님을 믿고 기다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최근 Psychological Science의 연구도 이를 뒷받침한다. 실험에 참가한 아이들은 세 그룹으로 나뉜다. 첫번째 그룹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하나의 스티커 또는 쿠키를 당장 받을 수도 있고, 기다리면 기계에서 자동적으로 하나를 더 받는 조건의 실험실에 들어간다. 실험자들은 이 조건을 Unaware라고 명명했다. 두번째 그룹의 아이들은 좋아하는 하나의 스티커 또는 쿠키를 당장 받을 수 있고, 기다리면 두 개를 더 받을 수 있는데, 그냥 하나를 받거나 기다려서 받을 때 실험실 밖의 선생님을 호출해야 한다. 선생님은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하나를 받은 학생들은 교실로 곧장 데려가고 기다린 학생들에게는 하나를 더 주고 교실로 데려간다. 이 그룹이 Aware다. 세번째 그룹의 아이들은 좋아하는 하나의 스티커 또는 쿠키를 당장 받을 수 있고, 기다리면 기계에서 자동적으로 3개를 더 받는 조건이다. 이 그룹이 Unaware/Additional Rewards다.
출처: Ma, F., Gu, X., Tang, L., Luo, X., Compton, B. J., & Heyman, G. D. (2023). If They Won’t Know, I Won’t Wait: Anticipated Social Consequences Drive Children’s Performance on Self-Control Tasks. Psychological Science, 34(11), 1220-1228.
실험 결과, 자동으로 하나를 더 받은 아이들의 기다리는 시간이 가장 짧았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기다려서 3개를 받는 조건의 아이들에 비해 하나만 더 받지만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안 아이들이 더 오래 기다렸다는 것이다.
만족지연능력은 사회적 기대(anticipated social consequences)가 중요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연구다. 신뢰하는 사람으로부터의 사회적 기대는 더 높은 만족지연능력을 보여주게 만든다. 그것도 더 많은 보상을 넘어서서 말이다. 나는 이 실험 결과가 아이들을 위해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뢰로부터 나오는 사회적 기대는 조직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강점혁명>으로 유명한 마커스 버킹엄이 설립한 ADP연구소가 5만명의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동료, 팀 리더, 고위 경영진 셋 모두를 신뢰한다고 응답한 조직은 그렇지 못한 조직에 비해 업무 몰입은 15배, 회복탄력성은 42배가 높았다.
조직의 문화가, 리더십이 잘 작동되지 않는다면 조직 내 사회적 기대를 점검해 보라. 어쩌면 여기에 좋은 답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