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신입 개발자 A는 오래된 고민이 있다. 그는 개발 일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고, 다른 길을 모색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주변에 말을 꺼내지 못했다. 동료의 시선이 두려웠고, 포기하고 도망치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힐 것 같았다. 그는 2년을 버텼다. 더이상 열정은 없었지만, 평판 손상(fear of negative evaluation)이 더 무서웠다.
우리는 스스로 포기하거나 방향을 바꿀 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훨씬 더 부정적으로 평가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 믿음은 사실일까?
연구팀은 7개의 실험과 3개의 보조 연구(총 N=4,825)를 통해 사람들이 열정을 포기할 때 주변의 부정적 평가를 어떻게 인식할지 검증했다.
첫번째 연구에서 참가자들에게 다음 시나리오를 읽게 했다.
- 한 사람이 오랫동안 추구하던 열정을 그만두고(예: 예술가의 꿈을 포기하고 일반 회사 취업), 이를 친구나 동료에게 알리는 상황
이때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 Actor (본인이 포기하는 입장) —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를 예측
- Observer (지켜보는 사람) — '그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겠는가?'를 평가
연구 결과, Actor 입장에서는 자신을 훨씬 혹독하게 평가될 것으로 예상했다. Actor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도덕성, 인내력, 유능함을 크게 낮게 예측했다.
반면에, Observer는 결코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심지어 새로운 기회를 찾는 현명한 선택이라고 평가하는 비율도 높았다.
즉, 예상과 실제의 간극(actor–observer gap)이 매우 컸던 것이다.
출처: Berry, Z., Lucas, B. J., & Jachimowicz, J. M. (2025). People overestimate how harshly they are evaluated for disengaging from passion pursuit.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퇴사를 고민하는 간호사를 대상으로 다음 메시지 개입을 시행했다.
“사람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퇴사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 짧은 메시지 하나만으로 퇴사 혹은 재배치 선택 의향 유의미하게 증가했고, 죄책감과 사회적 불안 감소했으며 , 새로운 출발이라는 관점은 강화됐다.
즉, 두려움은 실제 평가가 아니라 상상된 평가(imagined judgement)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렇게 착각할까?
1) spotlight effect: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주목한다고 착각한다.
2) illusion of transparency: 사람들은 자신의 속 마음을 쉽게 들킬 것이라 착각한다.
3) belief in passion ideology: 사람들은 어떤 일을 시작했다면 열정을 끝까지 유지해야 한다는 사회적 강박을 갖는다.
4) stigma effect: 사람들은 포기에 곧 의지 부족, 실패라는 낙인을 찍고 이를 자기 서사로 간주한다.
결국 우리는 포기를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정체성의 붕괴로 지각한다. 그래서 자신에 대한 잣대가 더 가혹하다.
우리를 가두는 것은 타인의 실제 평가가 아니라 두려움의 환상이다.
1) 질문을 바꿔보자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에서 “이 선택이 나에게 어떤 미래를 열어줄까?”로
2) 포기를 전략으로 정의하라
멈춤 = 방향 조정 능력일 수 있다.
3) 나의 열정의 생명주기를 인정하라
어떤 열정은 끝나야 다음 열정이 시작된다
4) 비교가 아니라 책임을 기준으로 결정하라
남의 시선이 아니라 내 삶의 결과에 책임 지는 기준으로 결정하라
우리가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열정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해서다. 그러나 과학은 말한다. 타인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관대하다.
부록.
심리학을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한 가지 의문이 떠올라야 한다. 심리학 연구 대부분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기자신을 관대하게 평가한다. 즉, 실패나 포기 상황에서는 스스로를 방어하고 정당화하며, 타인보다 자신에게 더 관대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왜 열정 포기 상황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인 자기 비난(self-criticism)과 과도한 평가 불안이 나타날까?
왜 자기 관대화가 작동하지 않는가?
열정 포기 상황은 일반적인 실패 사건과 질적으로 다르다. 단순히 하나의 과제를 실패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핵심 정체성(core identity)을 포기하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첫째, 열정은 정체성(Identity)과 결합된다
우리는 개발자, 연구자, 예술가, 창업가라는 정체성 라벨을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따라서 포기는 성과 실패가 아니라 정체성 손실(loss of identity)로 느껴진다. 정체성 위협 상황에서는 방어가 아니라 자기 공격(self-attack)이 강화된다.
둘째, 열정 서사(passion narrative)는 도덕적 가치로 포장되어 있다
현대 사회는 '진정성 있게 살아라', '열정은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른바 Passion Ideology(열정 이데올로기)다. 따라서 포기는 능력 문제를 넘어서 도덕적 결함(moral character flaw)으로 느껴진다. 자기 관대화가 적용될 틈이 없다.
셋째, 사회적 평가는 측정이 어렵다.
실패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이다. 시험 점수, 프로젝트 결과처럼 측정 가능한 결과가 있다. 그래서 자기 관대화로 조정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는 측정 불가능하고 모호하다. 측정 불가능한 영역에서는 사람들은 가장 비관적인 가정을 하며, 이를 통해 통제 감각(illusion of control)을 얻게 된다. 즉, 최악의 상황을 상상함으로써 심리적 방어 대신 과잉 경계(over-preparedness)를 선택한다.
넷째, 사회적 비교와 평판 시스템에 대한 과잉 민감성 때문이다.
평판은 사회적 생존의 중요한 요소다. 따라서 우리는 진화적으로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 위험에 과도하게 민감하다. 때문에 작은 신호도 과대해석하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