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나 사회의 규범에 순응하는 사람일까? 돌아보면 사회가 나에게 무난하다고 기대하는 것들을 주로 해왔고 지금도 상당 부분 그렇다.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하지 않은 것을 하기도 했다. 유학, 여행, 해외 노동과 같은 좀 용기와 끈기가 필요한 것들, 근데 사람들이 안 좋게 볼 수 있는 것들은 하지 않은 거 같다. 하지 못했거나. 공부를 하고 취직을 하고 연애하고 많이 돋보이지 않는 머리 스타일과 옷차림을 하고 대체로는 사람들이 놀랄 행동들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왔는데.. 그런데 생각이 좀 달라지기 시작했다.
Why not?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것은 괴롭거나 신경 쓰이거나 답답하다. 정도의 차이인 거지 시도하지 못했을 때의 불편한 감정은 마음에 남는다. 그런 불편한 감정을 참을 것이냐 아니면 불편한 용기를 내서 시도할 것이냐. 둘 다 불편한 감정인데, 시도하지 않으면 불안하지 않은 찝찝한 감정, 시도하면 불안하고 긴장한 감정을 시도하는 동안 느낀다. 하지만 시도했다면, 그 순간이 지나면 불안과 긴장은 사라진다. 결과가 좋았던, 그저 그랬던, 나빴던 시도를 하고 나면 더 이상 불안하고 불편하지 않는다.
비교적 최근에 내가 하고 싶은 일들 그런데 사회적으로 좀 시선이 신경 쓰이는 일들이 마음속에 뾱뾱하고 생겨났다. 그러면 1) 음.. 하고 일단 생각한다. 2) 하면 어떨까? 사람들 반응이, 가족들 반응이, 동료들 반응이, 지나가는 사람들 반응이 어떨까...? 3) 그걸 하는 것이 쉬운가? 4) 어려운가 돈과 노력이 어느 정도 들지? 5)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질문은 받겠지만 여전히 하고 싶다.. 6) 그냥 하자 I don't give a shit 의 단계를 거쳐 몇 가지들을 시도했다. 하고 나서 안 좋은 일은 없었고 마음이 시원해졌다. 20년 넘는 동안 소소하게 하고 싶은 것들 그런데 남의 시선이 두려워서 부끄러울까 봐 그냥 닫아두었던 수많은 일들. 그렇게 쌓여있는 뭉치더미들에서 하나둘씩 내 마음 바깥으로 날려 보내는 느낌이었다. 해방감 자유 그리고 젊음을 느꼈다.
1. 양갈래 머리하기: 어릴 적 사진 정리하는데 양갈래 머리 아기가 너무 귀여웠다. 그 아기는 나. 이 생각은 몇 년에 걸 쳐 몇 번은 했던 거 같다. 양갈래 머리하고 싶은데 30대인 데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내가 어려 보이고 싶어서 저런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집에서 해봤다 잘 어울리고 어려 보이고 귀엽다. 어려 보이는 거 좋다. 사람들 만날 때도 하고 나가봤는데 관심을 많이 받았다. 집에서 나가기 전에 조금용기가 필요했다. 띠동갑인 친구한테 이런 머리 한지 20년도 넘었고 하고 싶은 거 하는 거라고 서로 공감하면서 이야기했다. 나보다 어리지만 언니 같은 친구는 한국에서는 이런 양갈래 머리는 아이들이 하지만 미국에서는 뭘 해도 상관없다고 오늘 너무 이쁘다고 해주었다. 새로 알게 된 사람들은 내가 패션분야에서 종사한다고 생각했는데, 살면서 처음으로 들은 말이었다..ㅋㅋㅋ 외모 단장과 옷차림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은 날.
2. 탈색하기, 보라색, 베이비 핑크 머리하기: 원래 머리스타일 바꾸는 거 좋아해서 자르고 파마하고 염색하는 거에는 두려움이 없는데, 탈색을 하는 것이 주는 이미지 때문에 오랫동안 생각해 온 거 같다. 탈색이 주는 불량한? 이미지 또는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것? 이렇게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생각해 왔던 거 같다.
나름 용기를 내서 작년에 부분 탈색을 했는데 반응이 너어무 좋았다. 4시간 동안 미용실에 있는 건 싫었지만 결과는 좋았다. 밝은 탈색머리, 핑크, 그리고 보라색도 도전해 볼 것 같다. 지금부터 머릿결 관리 잘해야겠다.
3. 속바지가 보이기도 하는 치마: 이러면 진짜 큰 일 나는 줄 알았다 수치스러운 거라고 생각했다. 치마 입었을 때 바람 불어서 속바지 아래쪽이 보이는 거 크게 신경이 안 쓰인다 이젠. 내가 용감해졌다기보다는 그렇게 입은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런 거 같다 특히 미국에서.
4. 가방에 인형 달기: 초등학생 때는 인형을 달면 가방이 그리고 그 가방은 멘 내가 너무 예뻐 보여서 아파트 단지 내 큰 거울로 자주 비춰보곤 했었다. 하와이에서 엄마가 사 준 태닝 한 헬로키티 인형을 아주 잘 달고 다녔었는데, 멕시코에서 사탕을 파는 아이가 내 인형을 보고 너무 좋아해서 주지 않을 수 없었다. 큰 헬로키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사탕을 식당에 들어와서 사탕을 팔던 아이. 그래서 요즘에 작은 인형을 파는 것 보면 유심히 보고 다니는데 아직 맘에 드는 걸 발견하지 못했다.
5. 술 안 먹는다고 말하기 부연 설명 없이: 술 먹는 사람들이 나에게 술을 먹냐고 좋아하냐고 물어볼 때 100프로 솔직하게는 말하지 못한 거 같다. "몸이 안 받아서 잘 못 먹어요 근데 몸이 괜찮았다면 즐겼을 거 같아요 맛은 좋아해요" 거짓말은 아닌데 좀 더 술에 호의적으로 부풀려서 대답했다 싹둑 "아니요 거의 안 마셔요 맛도 쓰고" 이렇게 말할 수 없었다. 맛이 좋을 때는 1년에 한두 번 정도 한 두 모금 정도이고 그 이상은 쓰다. 아예 술을 끊을까 생각 중이다. 1년에 맥주 한 병도 안 마시는데 어차피 끊으면 심플해서 편하기도 할 거 같다.
6. 문신 스티커 붙이기: 이번 멕시코 여행 때 좀 일탈스러운 걸 하고 싶어서 급 아마존에서 주문해서 붙이고 다녔는데 너무 만족스러웠다 관심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고, 재미있었다 생애 첫 타투. 목, 팔, 손 다리, 어깨에 붙였는데 예뻤다. 미국 돌아와서도 한 번 더 했는데 친구들이 문신에 대해 어디서 주문했냐고 이것저것 물으면서 관심을 보였다. 나 좀 일탈 시도하는 거야라고 했더니, Wild? that's wild? 이러면서 다들 빵 웃었다. 문신 스티커는 미국에서는 절대 일탈이 아니다...ㅋㅋㅋ
7. 멕시코 국기 문양 머리띠 하고 여행하기: 쓰고 다니면서 좀 용기가 필요했다 엄청난 용기는 아니고 적당한 용기. 시선을 감당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써라. 머리띠 덕분에 멕시코 사람들에게 애정을 더 받은 거 같아서, 잘 어울려서, 사진이 잘 나와서, 로컬사람들에게 사진 요청을 받아서 좋았다. 여행 끝날 때 즈음에, 필요 없는 물건들을 버릴 때 이 머리띠를 계속 고민했다. 10일 동안 정이 들어 버렸고, 너무 좋은 기억들이 있어서 가방에 넣었고, 아직도 주방 아래칸 서랍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8. 시쓰루 입기, 입고 사진 찍은 거 sns에 올리기: 나한테는 큰 일이었다 입은 것과 올리는 것 둘 다. 그날 옷이 불편했는데 왠지 모를 해방감을 느꼈다.
9. 모르는 사람과 아이컨택, 눈인사, 손인사: 멕시코 소치밀코 여행 갔을 때 보트 타고 너무 기분 좋게 놀고 있었는데, 다른 보트의 악기 연주 하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눈빛과 얼굴 표정에서 애정과 호감을 느낄 수 있었다. 스페니쉬로 인사하고 손을 흔들어 인사했고, 손키스를 보냈다. 그 사람의 얼굴이 붉어졌고 부끄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10.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 또는 자랑스럽지 못한 모습들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기: 과식하는 거, 벼락치기하는 거, 내성적인 면, 말할 때 긴장하는 거. 이보다 더 부끄럽게 여기는 것들은 아직 말하지 못한 거 같다. 아주 조금씩만 공유했다.
11. 브런치에 얼굴 사진 올리기: 이것 때문에 글 올리는데 며칠 더 걸렸다. 나중에 싫으면 지워도 되니까 일단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