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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준 May 09. 2021

음악에도 색깔이 있다고? - 1

작곡가와 컬러 - 1


내 초등학생 시절에 준비물을 항상 챙겼던 것이 크레파스였다. 반 친구들은 각자 12색, 24색 크레파스를 가져왔는데, 나는 미술에 재능이 많은 편이 아니어서 ‘그냥’ 그림을 그리기 일쑤였지만 한편으로 내가 색맹이 아니라는 거에 감사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른 후 미술관에서 끌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 프랑스 인상파 화가)의 작품 중 [왼편을 바라보는 양산 든 여인 Women with Umbrella facing left 1886]을 보았는데,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이렇게 많은 색깔이 있고 파스텔톤과 같은 부드럽고도 수수한 결이 나를 요동하게 만든 것이었다.


C. Monet - Women With Umbrella Facing Left 1886 출처 : paintingmania.com

예술은 한 가지 분야만으로 파고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예술, 예컨대 무용, 미술, 문학 등과도 복합적으로 연계되어있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고 나니 음악도 색깔로 표현할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음악 용어 중 하나인 음색 즉, 톤 칼라(Tone Color)라는 단어가 존재하였고 20세기 러시아 작곡가인 알렉산더 스크리아빈(Alexander Scriabin, 1872-1915 러시아 낭만 작곡가)이 음을 색깔화 시킨 것을 한번 들여다보자.


알렉산더 스크리아빈의 톤 컬러 정리표

20세기 이후 피아노의 인상주의를 이해하려면 먼저 색과 연계해야 할 것인데, 미술에서 노란색은 전형적인 지상(Earth)의 색깔이고 푸른색은 하늘색(Sky Color)이라고 한다. 이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음악에서의 색깔은 과연 어떻게 나타나게 될까?




먼저 라벨(Maurice Ravel, 1875-1937 프랑스 작곡가)은 그의 음악에서 대부분 푸른색을 띤다. 그 이유는 작품 속의 물을 비롯해서 바다 혹은 선녀, 요정, 작은 배, 새, 나방을 묘사한 것은 거의 인간과 거리가 있는 푸른색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음악 자체는 어디까지나 음악 자체만을 두고 푸른색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나 양면성이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맑고 푸른 하늘은 인간에게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기에 푸른색은 인간에게 편함을, 그리고 넓고 광대함을 줄지언정 인간의 색깔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재밌는 것은, 라벨의 피아노 음악을 연주할 때 연주자가 푸른색을 상상하면서 연주한다면 한순간에 라벨의 음악과 혼연일체가 됨을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Ravel Une Barque sur l’Ocean. Andre Laplante. 출처 : Youtube


라벨의 거울 중 3번째 곡인 [대서양 위의 작은 배 Une barque sur l’Ocean 1905년 작곡]에서는 바다의 검은색을 띤 푸르름을 강렬한 오른손 트레몰로로 표현하고 있다. 그의 오른손 트레몰로는 충분히 바다의 조용한 파도를 표현해주는데 여기에서 페달의 도움을 적절히 잘 사용한다면 공포감마저 느낄 정도의 감정을 자아낸다

Ravel - Miroir No.3 Une Barque Sur l’Ocean 1905 악보출처 : imslp.org




두 번째는 노란색인데 노란색 하면 나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서양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네덜란드 화가)이다. 우선 그의 [까마귀 나는 밀밭 Wheat Field with Crows 1890]이나 [해바라기 Sunflowers 1888]등을 생각해보면 땅을 표현할 때 강렬함을 넘어 눈이 부실 정도의 황톳빛 노란색을 연상할 수 있다. 역시 노란색은 대지의 색깔임이 틀림이 없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노흐는 남프랑스의 강렬한 햇빛 아래에서 [까마귀 나는 밀밭] 등을 그리다가 뜻하지 않게 권총으로 자살하는 비운을 겪게 된다.


Gogh - Wheat Field With Crows 1890 출처 : Google.com


땅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정경을 음악에 접목시킨 작곡가로는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 독일 낭만시대 작곡가)을 들 수 있다. 그의 작품인 [어린이 정경 Kinderszenen Op.15], [카니발 Carnaval Op.9], [빈 사육제 Faschingsschwank aus Wien Op.26] 등은 인간 세계에 있는 모든 일들을 소소하게 투상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인간적인 다정다감한 정서는 그의 작품 [환타지 소곡집 Fantisiestuecke Op.12]의 8가지 소제목에서도 금방 알 수 있다.


1 Des Abends (저녁에)

2 Aufschwung (비상)

3 Warum? (왜? 어째서?)

4 Grillen (변덕스러움)

5 In der Nacht (밤에)

6 Fabel (우화)

7 Traumes Wirren (꿈의 얽힘)

8 Ende vom Lied (노래의 끝)


또한 [아라베스크 Arabeske Op.18]과 [나비 Papillons Op.2]에서는 거의 대지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세세한 시간표를 보는 것 같아 슈만의 정서를 읽을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노란색의 대 작곡가인 슈만은 두 번이나 라인 강에 몸을 던져 투신자살을 기도한다. 그러고 결국은 심한 정신병에 시달리다 죽는다.



세 번째로 나오는 색깔은 초록색인데, 앞에서 얘기했던 노란색과 파란색을 동일하게 혼합하여 나오는 색이 바로 이 초록색이다. 초록색 하면 어떤 느낌이 떠오르는가? 초록색은 인간세상에서 존재하는 가장 평온한 색깔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병원 주변에는 많은 초록색 계통의 나무를 심어 환자들의 심기를 평온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일반인들도 초록색이 가득한 산에 가서 평온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

자연의 색깔인 초록색에 대해 러시아의 화가인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는 “초록색은 노란색을 지나 자기만족적인 평온 속에 침잠해 있는 여름의 지배적인 색깔이다”라고 말하였다.


이런 초록색을 대표하는 음악가는 단연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독일 작곡가)이다. 바흐의 음악은 정중동(靜中動 : 조용히 있는 가운데 어떠한 움직임이 있음)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48개의 평균율 클라비어 전곡이 그러하고 그의 수많은 오르간 곡들 역시 톤 컬러는 초록색으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Bach WTC Book 1 No.1 in C major. Siebe Henstra 출처 : Youtube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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