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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라멜 Sep 17. 2023

서점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베스트셀러에 대한 반론

일주일을 돌아본다. 하루 같은 7일이다. 생활이 단조로워졌다. 고민없이 잘 굴러간다는 말이다. 두 가지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오차없이 계획대로 잘 살고 있거나, 아무 생각없이 살고 있다. 생각하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한다고 누가 그랬다. 매너리즘. 간만에 서점에 들렀다. 단조로움을 깨뜨리기 위해서다.


항상 들르는 코너가 둘 있다. 트렌드와 관련된 책들이 있는 곳과 베스트셀러 코너.


scene 1. 트렌드와 유행


역시 난 트렌드에 뒤쳐진 듯 하다. 일주일 내내 꽤 나름대로 보고 듣고 쓰고 읽고 했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은 다시 저만치 먼저 가고 있다. 남들이 이른바 '스펙(spec)'을 쌓으며 사회에서 무장하고 있을 때 그 스펙이 'spectrum'인지 'specification' 몰랐으며, 부동산 열풍이 불고 있을 땐 아파트 값이 떨어질거라며 전세집을 고집했고, 주식 광풍이 이미 왔지만 예금을 꼬박하고 있었으며, 메타버스를 모두가 얘기할 때 'metaverse'를 'metabus'로 잘못 써서 PPT를 발표하다 지적을 받았고, AI, Chat GPT를 따라가기 위해 나름 유튜브를 열심히 보며 이제 좀 이해가 되는구나 했는데, 다시 모르는 책 투성이다. 트렌드는 항상 날 앞서간다.


미래학자 최윤식 박사는 <미래학자의 통찰의 기술(2019)>에서 트렌드와 유행을 구별할 것을 강조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의 이면에는 유행이 있고 그보다 큰 원천이 트렌드라는 설명이다. 비유하자면 유행이 하루에도 두번씩 반복되는 밀물과 썰물이라면 트렌드는 한달에 통상 보름을 주기로 바뀌는 사리와 조금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일어나는 현상이 유행인지 트렌드인지 구별하는 것은 중요하다. 모두 본질에 접근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유행을 트렌드라고 착각하고, 트렌드를 본질이라고 착각할 경우 자기만의 오류에 빠지거나 지적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금새 바뀌기 때문이다. 결과가 나올 경우 주장의 진실 여부가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2018년의 경험이 컸다. 그해가 있기 전 모두가 인구 절벽을 얘기하고, 국내외 석학들은 인구 절벽의 시대, 베이비부머들의 은퇴 시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부동산 폭락의 시대가 올거라고 얘기했다. 난 철저히 공부했고, 아내를 설득했다. 그게 틀렸다는 걸 확인하기까지 채 몇년이 지나지 않았다. 우린 정확히 반대로 가고 있었고, 그렇게 주장했던 국내외 석학들과 전문가들은 사라졌다. 사실 최종 판단은 자신의 몫이다. 그래서 난 누굴 원망하지 않는다. 다만, 조심스러워졌을 뿐이다. 한근태 작가는 <재정의(2020)>에서 컬럼비아대학교 로런스 피터 교수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얘기했다. "경제학자는 어제 예언한 것이 오늘 왜 실현되지 않았는지 내일 알아내는 전문가이다."


운을 실력이라고 착각하는 것도 그래서 위험하다. 나심 탈레브는 그래서 여전히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최종 시험이 아닌 실력을 점검하기 위한 테스트에서는 그래서 정답을 찍어서는 안된다. 실력으로 착각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scene 2. 베스트셀러 무용론  


남들이 다 보는 드라마나 영화가 있다. 책을 예로 들어도 좋다. 나름의 분석을 곁들여 인용한다.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신선한가? 오히려 반감이 들수도 있다. 과감히 '베스트셀러 무용론'이라고 표현하겠다. 결코 차별화될 수 없을 뿐더러 보는 사람도 이미 봤거나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찬반 양론이 있을 수 있는 이 문제는 사실 민감하다. 생각이 다르다면 반감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했던 사람들이 나라 안팎에 있었다.  


이덕무

18세기 말을 살다간 조선의 책벌래 이덕무는 이런 말을 했다. 당시 우리나라에 좋은 책은 3가지가 있다고 했다. "성학집요와 반계수록, 동의보감을 내세우며 거듭 읽을 가치가 있다"고 했다. 도학과 경제 문제, 의학을 다룬 이들 서적들은 베스트셀러라기 보다는 대중이 널리 찾지 않는 서적에 가까웠다. 당시에 베스트셀러는 중국에서 넘어온 각종 이야기들이 다수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청나라에서 넘어온 신선한 문장에 그동안 접해보지 못했던 주제의 책들에 빠져 있었다. 당시 누구보다 책을 많이 읽었던 이덕무는 왜 특정한 책들을 여러번 읽을 가치가 있다고 했을까?   


톨스토이와 쇼펜하우어

마찬가지로 톨스토이도 베스트셀러 무용론에 대해 여러차례 강조한 적이 있다. 그의 말년의 저작인 <인생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세계의 수많은 위대한 작품과 사상서에서 삶의 지혜를 자신이 엮은 것이라고 서문에는 나와았다. 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독자들에게 매일 읽을거리를 전한 이 책의 1월 1일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리 중요치 않은 평범한 것을 많이 알기보다는 참으로 좋고 필요한 것을 조금 아는 것이 더 낫다."    


톨스토이는 또 "대중에게 인기가 있거나 평판이 자자하고 발행된 첫 해가 마지막 해가 되는 책은 모두 멀리해야 한다."는 취지의 쇼펜하우어의 글도 소개했다.   



공부하랴 직장에서 일하랴 남은 여가 시간에 사람 만나랴 책 보랴 하루 24시간이 부족한 요즘이다. 계획대로 살다보니 일주일이 하루처럼 별반 차이가 없고, 매일 해야할 일들을 하려니 새로운 걸 시도할 시간도 없다.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아 유튜브를 틀고, 서점에 나가보면 정신이 번쩍 들어서 좋기는 한데 그만큼 세상에서 또 뒤쳐진 내가 보인다. 몇 권의 책을 가방에 담고 돌아오는 내내 이 책들을 빨리 읽어서 남들과 비슷하게 조금이라도 보조를 맞춰보자는 생각을 하며 위안도 삼아본다. 


하지만, 트렌드와 유행, 베스트셀러에서 주어는 철저히 3인칭이다. 어제를 산 것도, 오늘을 살아가는 것도, 내일을 살아가야 하는 건 1인칭인 나다. 그래서 일단 난 그들의 주장과 책이 적어도 아직 남아있는 스테디셀러와 고전 코너로 발을 돌린다. 아직은 살아남아 있기 때문에...


에필로그.

살아보니 항상 맞는 말을 하는건 학교에선 선생님이었고, 집에선 부모였다. 그땐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듣기 싫었다. 난 그냥 친구들, 남들이 하는 유행을 따라가고 싶었다. 어른들의 얘기가 맞는 말인건 알겠는데 그땐 그게 왜 그렇게 싫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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