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학교를 권한 이유
회사 로고도 보기 싫었던 순간이 왔다. 회사를 잠시 내려놓았을 때이다. 휴직 기간은 캠핑의 연속이었다. 사주에 불이 없는 난 유난히 불 피우는 걸 좋아했다. 그 날은 산 좋고 물 좋은 특히, '이동갈비'로 유명의 포천의 글램핑장에 있었다. 같은 부서에 있을 때는 무뚝뚝하셨던 회사의 박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난 그분을 사부로 모신다.
"김 프로, 이제 대학원 가야지"
"네, 생각이 없는 건 아닌데, 제가 공부를 손을 놓은 지가 너무 오래되서..."
"쉽게 갈 수 있는 곳들은 많지만 아무 데나 갈 순 없잖아?"
"어떤 곳을 가는 게 좋을까요?"
"장학금을 주면서 오라고 하는 곳도 있고, 좀 힘은 들지만 제대로 된 곳을 갈수도 있고..."
그렇게 말을 꺼낸 박사님 얘기의 결론은 이렇다.
일단 나중에 어떻게 될 지 모르니 최대한 머리가 녹슬기 전에 지금보다 한단계라도 더 따놓자는 거다. 내 주변엔 석사들이 널렸지만 난 학사다. 심지어 박사들도 많다. 최소한 석사는 따놔야 이후에 박사라도 할 수 있다는 거다. 사실 야간이나 특수대학원을 가면 석사 학위 정도는 받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가기 쉽지 않은 한계가 있다. 결국 정규 대학원 수준이나 최소한 논문을 써서 학위를 받아두면 좋다는 거다.
하지만, 직장인의 대학원 공부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선택의 길이 놓였다. 쉽게 다니면서 그냥 석사 학위 따는 것에 만족할 것이냐, 제법 제대로 된 대학원을 가서 제대로 공부를 하느냐의 문제다. 사실 값싸고 맛있는 소고기는 없다와 같은 문제였다. 대부분의 대학원이 주중에 수업이 있고 최소한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는 수업을 들으러 학교를 가야했다. 난 쉽지 않았다. 평일에 대부분 7시는 넘어야 일이 끌날 때가 많아 수업은 불가능했다. 결론은 주말에 수업을 들을 수 있는 학교다.
결국, 입학이 어렵지 않은 학교들 속에서 최종 추천을 받아 입학 지원서를 냈다. 2001년에 학교를 조기졸업하고 바로 입사한 뒤 19년 만의 다시 도전이다. 면접, 시험, 숙제, 과제, 발표, 이런 건 평생 다시 안하게 될 줄 알았는데, 그렇게 다시 대학교 정문을 드나들게 됐다.
그렇게 대학원을 다시 가게 될 때까지 영향을 미친 사람들은 대충 이렇다.
1. 부모님
부모님의 걱정은 단순했다.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이 그렇듯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최대한 공부를 하나라도 더 해놔서 먹고 살 길은 마련해놓으란 거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사실 대학교를 다닐 때도 공부가 재미없었던 건 아니었고, 조기졸업과 곧바로 입사로 배움이 끝이 미완이라는 생각이 있었기에 대학원은 언젠가는 다시 가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다.
2. 회사 동료
석사를 마쳤던 선배들은 그랬다. 넌 학부만 졸업했으니 최소한 석사는 해놔야 한다. 직장 생활하다 보면 시간이 날 때도 있고, 앞으로 다른 곳에 취업을 할 수도 있는데, 그때 박사 학위가 필요할 수도 있는데 석사가 있다면 박사라도 준비해서 가야 하지만 석사마저도 없다면 아예 포기하게 된다는 거다. 현실적인 조언이자 일리가 있다. 가뜩이나 일도 잘하고 나이도 어린 후배들이 시간을 쪼개가며 석박사를 하는 걸 보니 위기 의식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3. 대학교수를 하거나 된 사람들
주변에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교수들이 제법 있다. 업무상 일을 하면서 교수들을 만나게 될 일도 많고, 지인들이 공부를 하다보니 교수까지 간 경우도 많았다. 대학교수들은 두가지 부류다. 정말 많이 배우고 연구해서 그 분야의 전문가인 경우 보통 업무상 만나는 인터뷰 대상자들이다. 반면, 주변에 친한 친구가 지인들이 어느덧 박사 학위로 교수까지 가게 된 경우도 있었다. 전자는 공부에 대한 두려움을 주는 반면, 후자는 나도 한번 해볼까하는 자신감을 주는 사람들이다. 그런 분들이 자주 그랬다. 시간날 때 대학원이나 한번 가보라고...
4. 운명
사주에 그렇게 나와있더랬다. 평생 돈을 많이 번다는 건 없지만, 평생 공부를 해야할 팔자라고 했다. 어릴 때는 그냥 대충 들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게 만들기 위한 명리학자들이나 부모님의 그럴듯한 해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제법 명리학책을 보고, 직접 사주를 확인해보니 그게 듣고 넘길 일만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사주에 없는 공부와 관련된 운이 많았다. 사주에 없는 걸 하는 것도 명리학에선 회의적으로 보지만, 사주에 그렇게 많은 걸 하지 않고 다른 걸 하는 것도 좋은 선택으로 보지 않는다. 그런데, 실제 그랬다. 공부가 싫지는 않았다. 특히 중고등학교 시험 공부보다는 대학에서 하는 수업과 시험이 재밌었다. 장학금과 조기졸업은 '덤'이었다.
가방끈이 특히 짧다고 생각한 난 그렇게 45살에 석사를 시작했다. 그냥 미래를 위한 보험이나 들자는 생각이 강했다. 돈과 시간이 들지만, 포기하는 것보단 낫다는 선택이었다. 회사에 대한 회의가 결국 대학으로 이끈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