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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라멜 Dec 21. 2024

빨간 옷을 입으라고요?

내가 갖고 있지 못한 것들에 대하여

'리비히의 최소량의 법칙'을 접하고 난 뒤 강점과 약점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일단, 이게 식물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라는 거다.


회사나 조직, 부서, 프로야구팀, 개인까지... 어떤 회사다, 어떤 조직이다. 어떤 프로야구팀이다. 홍길동이다. 이렇게 얘기할 때 특성은 잘 하는게 더 돋보일까? 약점이 더 두드러질까? 말하자면, ~을 잘 하는 회사, ~을 잘하는 조직, ~에서 뛰어난 팀, ~를 잘하는 직원을 말할 때는 주로 가장 뛰어난 실력을 내세워 말한다. 그렇다면, 그 회사나 조직, 부서, 팀, 개인의 성공은 잘 하는 걸 더 잘 할 때 이뤄질까? 못하는 걸 그나마 남들 정도만이라도 할 때 달성될까? 지금까지 나의 결론은 '리비히의 최소량의 법칙'이 아직은 맞는 것 같다.


리비히의 최소량의 법칙은 식물에게 있어서 10대 필수 영양소(원소) 중 성장을 좌우하는 것은 넘치는 요소가 아니라 가장 모자라는 영양소이다. 그 모자라는 성분이 성장을 결정짓는다는 내용이다. 식물을 키울 때 비료 개념이 없던 시절에 이런 이론이 정립되면서 생장에 꼭 필요한 식물의 생애 맞춤형 영양분 공급, 흙 속에 부족한 성분을 비료를 통해 보충해주게 된다.


디지털 전환에 실패한 아날로그 기업들이 망하고, HBM를 제때에 개발하지 못한 삼성전자의 암흑기가 계속되고, 손흥민의 한국 축구가 16강 이상을 가지 못하고, 이대호의 롯데자이언츠가 우승에 실패하는 건, 구멍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구멍은 남들이 다 갖고 있는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다. 가장 먼저 보완해야 할 우선순위인 셈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부모로부터 잘 물려받은 이상없는 계통은 병에 걸릴 확률이 낮다. 문제는 약하게 태어난 부분이다. 그걸 미리 알고 잘 관리하는 걸 현대 의학에선 강조하는 것 같다. 말하자면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경고등이 켜지기 시작한 부분에 대해서는 약물 처방부터 시작한다. 처음에는 생활습관, 운동을 하면 된다며 약간의 시간을 주지만 의지력이 약한 내가 그걸 해낸다면 이 세상 의사의 절반은 사라졌을 거다. 우린 다 알면서 결국 고치지 못한 것들로 인해 병원을 찾고, 병원에선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원인보다는 약한 부분에 대해서 선제적인 처방과 시술을 한다. 병에 걸리기 전일 지라도...



지금부터는 사주 명리학에 대한 얘기다. 명리학을 좋아하고 평생을 그걸 보며 자식들을 다 키워낸 외할아버지와 그걸 보고 큰 어머니의 영향이 시작이다. 결혼 이후 사주, 명리, 풍수지리 등 모든 동양학을 전문가 수준으로 공부하며 자식들을 키우고 서울에서 정착하신 장인과 그걸 보고 지금도 모든 순간순간에 돌다리를 두드리며 일과 가정생활의 나침반으로 삼고 있는 아내의 영향이 다시 더해졌다. 그 이후 지금까지 사주명리학은 큰 결정을 해야할 때면 외면할 수 없는 일종의 조언서가 됐다.


목, 화, 토, 금, 수.

이걸 다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찾기 시작했다. 제법 많은 책들과 유튜브 전문가들의 강의를 보고난 뒤 대충 어떤 의미라는 건 알게된 이후다. 만세력으로 한 사람의 살아온 과거와 지금, 다가올 미래를 볼 수 있다. 사주와 대운으로 지나온 과거 어떤 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언제 시험에 붙었는지, 언제 안좋은 일이 있었는지 맞춰본다. 만약, 별로 맞지 않으면 그냥 재미있게 얘기하고 넘긴다. 그런데, 대충 맞는 사람들은 그걸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이 내 주변에 많았다.


일단, 목, 화, 토, 금, 수를 다 갖춘 사람들은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다. 그 사람을 결정하는 중심(일간)과 그 중심 엔진에 필요한 연료를 자기가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냥 그런 사람들은 잘 살아왔고, 지금도 잘 살고, 앞으로도 무난하게 산다. 일단 내 주변에는 어려운 시기 불황없이 병원을 운영해오고 있는 형이 그랬고, 멀리 베트남에서 사업을 열심히 하고 있는 친한 동생 K가 그랬고, 대기업에서 그 분야의 1인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만능 재주꾼 Y가 그랬다. 아내와 난 항상 그렇게 얘기한다. K와 Y 걱정은 쓸데없는거라고...


하지만, 난 사주에 불(火)이 없다. 아내도 불(火)이 없다. '토(土)' 사주인 난 불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목(木)' 사주인 아내는 그래도 원료인 물(水)을 가지고 있다. 사주에 불을 3개나 가지고 있는 어머니가 했던 얘기가 이제는 이해가 됐다.


"니는 내 옆에만 있으면 적어도 실패는 안한다. 그나마 잘 될 끼다."


부인하고 싶지만 대학과 입사까지 실패없이 다 잘 될 수 있었던 건 어머니의 영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거 같다. 대학 시절 '마마보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서울에서 혼자 대학에 다니는 날 위해 주기적으로 상경하신 어머니의 흔적은 자취방 곳곳에 남아 있었다. 어릴 땐 상관없지만 언제까지나 마마보이로 살 수는 없다. 28살에 회사에 입사를 하고 본격적인 홀로서기를 했다. 조기졸업에 덜컥 치는 시험마다 면접까지 가능 와중에 최종 면접 2개를 놓고 하나를 선택해 입사에 성공했다. 그러니 사주명리는 고사하고, 그냥 내가 잘나서 되는 줄로만 알았다. 이름만 대면 아는 회사에, 사회에선 어느정도 대우를 받았고, 뒤에선 모르지만 적어도 앞에서 무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게 삐거덕거리기 시작한 건 직장 생활 10여 년이 지난 마흔을 넘길 무렵이다. 뭔가 부딪히기 시작한 거다. 세상엔 열심히만 살아서 안되는 것들도 많고, 내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 건 더 많다는 걸 깨달았다. 부모님이 왜 그렇게 주말이면 절에 나가고, 전국의 좋다는 곳을 찾아가서 기도를 드렸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역시 일을 하고 있는 아내도 프리렌서인 까닭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직장인들과 비교해 이래저래 부딪힐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우리 부부는 우이동에 있는 절을 찾았다. 기도문에 들어가는 문구가 늘어갔다.


벽에 부딪히는 일들이 늘어갔다. 감당할 수 없는 일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 무렵 장인 어른이 얘기했다.


"김 서방! 이름이 잘못 지어졌어. '원형이정'이 안 맞잖아. 사주에 불이 없으니 '火'가 들어간 한자로 이름을 바꾸자"


장인 권유로 이름 짓는 '성명학'에 대한 책도 몇 권 봤고, 이름을 지어주는 곳도 몇 군데 돌아봤던 터라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됐다. 더욱 놀라웠던 건, 그렇게 당초 잘못 지어진 이름이 당시 형이나 사촌들과 같은 집안의 돌림자를 썼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걸 할아버지가 굳이 다른 곳에 가서 이름을 지어온 거란 걸 알게됐을 때였다. 부모님도 처가에서도 당신들이 이 세상에 더이상 없을 때, 도움을 줄 수 없을 때, 이름 만이라도 아들, 사위를 위해 좋은 쪽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개명을 했다. 법원의 판사에게는 있는 그대로를 다 썼다. 나쁜 의도가 없는 까닭에 몇달 뒤 법원에서도 통보가 왔다. 일단 이름엔 나의 엔진을 데워줄 불이 들어가게 됐다.


다음, 사주를 보셨던 분들이 하나같이 얘기했던 건 인위적으로라도 불과 가까이 하란 거다. 집에 그림도 해가 있으면 좋고, 물을 멀리하면 더 좋고, 빨간색이 좋다는 거다. 옷도 푸른색보다는 빨간색을 입으라고 했다. 내 와이셔츠의 70%가 블루인데... 자의반 타의반 '빨간 색'과의 동거는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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