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직장에선 절대 할 수 없는 7가지

40대 늦깎이 대학원생이 얻은 것들에 대하여

by 캬라멜

직장을 10여 년 다니다 대학원에 와서 주말마다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5년이 되어가면서 언젠가는 한번 정리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써본다. 대충 몇 개라도 써보자고 써내려가 것들이 정리하니 7개는 된다. 7개의 번호는 가치나 중요도에 따른 순서가 아니다.


1. '우물 안 직장'에서 '진짜 세상' 밖으로 탈출

마흔 정도되면 직장에선 중간 관리자에 접어드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주니어 티를 벗고, 업무에 대한 감도 잡으면서, 나름대로 보람도 크게 느낄 수 있다. 30대가 부서를 옮겨다니며 자충우돌하는 시기였다면, 마흔에 접어드는 직장 10년차 이상은 '내가 뭘 잘하는 지', '어떤 부서와 업무가 내게 맞는 지', '어떤 동료와 일하면 능률이 오르는 지', '어떤 상사를 피해야 하는 지',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성과를 내면 칭찬을 받는 지'를 통해 궁극적으로 '이 조직에서 어떻게 하면 소위 잘 나갈 수 있는 지'가 대충 그려지는 시기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회사 밖의 세계에 대해선 점점 멀어지고, 말랑말랑하던 사고는 회사 중심, 일 중심으로 굳어져 가고, 오직 회사에서의 성과와 보상에 대해서만 점점 관심을 두게 된다. 인정 받으려면, 'No'보다는 'Yes'를 해야할 일이 많고, 회사 간부나 선배와의 '후약' 때문에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과 '선약'을 깨는 일이 늘어나고, 여자친구나 아내, 가족과의 여행 계획은 우선 순위 선배들의 선택 결과에 달려있다. 이렇게 늘어나는 스트레스는 자연스럽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짜증'으로 이어져 자연스럽게 해소 아닌 해소가 되어 갔다.


그 시기에 선택한 대학원은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경부고속도로의 '금강' 휴게소와도 같은 곳이었다. 자동차의 엔진도 식히고, 화장실도 가고, 커피도 한잔 하고, 신경쓰였던 난폭 운전자에 대한 기억도 날아가게 할 수 있는 그런 곳인 셈이다.


2. 더이상 회사 동료 씹는 시간 낭비는 그만

하루에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을까, 직장 동료와 부대끼는 시간이 많을까. 이른바 '나인투 식스' 직장인들은 하루 8시간만 일을 하는 거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9시 출근을 위해 6~7시부터 준비를 해야하고, 6시가 퇴근 시간이지만 '칼 퇴근'은 쉽지 않다. 저녁이나 회식이라도 끼면 9~10시에 집으로 들어간다. 결국 집에서 오롯이 자는 시간(6시간 가정)을 제외하면 가족과는 길어야 2시간, 직장 동료와는 최소한 9시간에서 12시간을 함께해야하는 운명이다.


근데, 그게 다가 아니다. 그렇게 하루 '온종일' 직장 동료와 함께 하는 순간에도 또다른 동료 얘기하기가 바쁘다. 회사 상사와 일하는 쉬는 시간에도 다른 동료와 또 다른 동료 얘기를 하면서 담배를 피고,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는다. 집에 와서도 '그' 동료 얘기를 아내와 하기 일쑤다. 직장 동료에게 가족 얘기를 하지는 않지만, 가족이 관심도 없을 회사 사람 얘기는 왜 그렇게 많이하게 되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대학원을 가면서 '그' 집단에 변화가 생겼다. 내가 자의반타의반으로 부대껴야하는 집단의 한 자리에 자연스럽게 대학원 동료들이 끼어들어오기 시작한 거다. 같은 목적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고민이 비슷했고, 뭔가를 배우려고 한다는 점에서 미래지향적이며, 같이 씹을 대상이 없다는 점에서 소모적이지 않고, 비싼 수업료를 내고 대학원의 문턱을 넘어들어왔다는 점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동료들이었다.


3. 직장 밖 동료들에게 얻는 날 것의 '공짜 지식'

기본적으로 대학원에서는 다양한 학생들을 선발한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보다는 조금씩 다른 직장에서 온 사람들을 선호한다는 건 해마다 들어오는 신입생들을 보고 느꼈다. 학교 측에서는 각계 각층의 직장인들을 선발함으로써 동문(alumni)의 폭이 넓어진다는 잇점이 있을 게다. 근데 그게 학생들에게도 나쁘지 않다. 수업을 들으면서 느낀 건 대학원 공부가 교수로부터 배우는 것만큼이나 동료 학생들로부터 얻게되는 '학문적으론 정제되지 않았지만 오히려 가장 최신의' 살아있는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다는 거였다.


동시에 궁금한 건 구글에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그냥 던지면 교수나 동료 누군가로부터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근데 그런 정보들이 제법 영감과 인사이트를 주는 경우가 많았다. 매 학기 2~3과목의 수업을 들으면서 쌓여진 동료들에게서 '공짜 지식'과 각자가 쌓아온 노하우를 합법적으로 듣고 모방하고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내 직장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회의 인맥이 됐다.


4. "요즘 뭐해?"란 질문에 미소로 답할 수 있는 뿌듯함

갈수록 평생 직장의 개념이 없어지는 요즘이다.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던 친구나 지인을 만나면 많은 경우 다른 명함을 준다. 다니던 직장이 바뀌었다는 게 낯설지 않은 인사가 됐다. 그럴 때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언제까지 있을 수 있을까? 난 언제까지 회사에서 잘리지 않을 수 있을까? 물론 회사에서 그런 신호가 오게되면 자존심 강한 나로선 먼저 '사직서'를 먼저 내는 길을 택할 것이다. 내가 한 것과 회사로부터 당한 건 그 정신적 충격이 너무도 다를 거 같다.


그걸 나보다 훨씬 전 겪어봤던 부모 세대, 사회의 선배 세대들은 항상 만나면 회사 걱정보다는 "요즘 뭐해?"를 묻곤 했다. "요즘 뭐해?"의 의미는 "요즘 회사 생활 외에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게 있어?"와 다르지 않았다. 그걸 들을 때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내가 너무도 초라했고, 낙오되는 거 같았고, 세상물정을 너무도 모르고 사는 는 거 같았는데, 그게 한번에 해결된다. 대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 그걸 고민했던 사람들이 오는 곳이기 때문이다. 정신적 안정감은 덤이다.


5. 졸업과 입사에 가려졌던 '찐' 나의 공부 출발

일단, 대학원 공부는 쉽지 않다. 교수로부터 뭘 많이 배우기 보다는 '내가 뭐가 궁금한 지'를 먼저 찾는 작업이 어렵다. 대학원 교수들은 쉽게 가르쳐주지 않는다. 연구 문제를 찾아서 해답을 찾는 걸 옆에서 도와준다. 처음엔 그게 낯설고 어려웠다. 우리 수업 문화는 일단 교수는 뭘 잔뜩 풀어놓고, 학생들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주워 담기에 익숙하다. 학부 과정까지는... 대학원은 그렇지 않았다. '뭘 해보고 싶은 지' 끊임없이 물었고, 그걸 가져올 때까지 'No'를 반복한다. 그게 'Yes'로 바뀌는 순간 교수와 학생은 학문적 동반자가 된다. 석사 과정에선 그게 쉽지 않았다.


처음엔 그냥 '가장 쉬우면서도' 그럴 듯하고 '학문적으로도 의의가 있는' 그런 연구 문제를 찾기를 원했다. 논문은 남의 나라 얘기인 줄 알았다. 이렇게 어려운 글들을 어떻게 읽어서 요약하고 발표할까 두려웠다. 한 줄, 한 장 꼬박꼬박 읽다보면 일주일에 논문 한 편 읽어내는 게 쉽지 않았다. 그렇게 좌충우돌하면서 가장 힘이 됐던 건 같이 수업을 듣는 동료들이었다. 처음엔 뜬 구름 잡는 얘기만 하던 신입생들은 수업이 진행되고, 학기를 거칠수록 제법 그럴 듯한 '연구문제'를 찾기 시작했고, 전문 용어도 곁들여가며 발표도 해냈다. 교수와 선배들을 모방하면서 그렇게 학생들은 성장해갔다. 학교에서 시험에 나올만한 문제를 찾는 것이 아닌, 내 이름으로 된 나의 연구문제를 찾아서 내 손으로 해결하는 진정한 연구가 대학원에선 자연스럽게 탄생한다.


6. 구르다보면 어느새 곁에 와있는 논문과 학위

처음엔 석사 논문만 제대로 쓰고 학위를 받을 수 있다면 감지덕지라고 생각했다. 왜 그많은 사람들이 석사, 박사를 쓰지 못하고, '수료'라는 꼬리표를 달게됐는지 100% 이해가 갔다. 근데 이건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냥 대학원 첫 수업을 시작할 때부터 4학기, 5학기 동안 논문 한편만 쓰고 나간다고 목표를 정하면 오히려 너무도 단순해진다. 대학원 수업 전체를 논문에 맞춰 수강신청을 하고, 수업을 듣고, 연구 문제를 발전시키고, 교수들의 자문을 받고, 동료들의 평가를 받으면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그게 석사 4학기 만에 졸업과 동시에 졸업 논문을 써서 학위를 받고, 박사3학기 만에 학술지 투고문 2개를 써서 통과하고, 박사 5학기에 마지막 박사 학위 논문만을 남겨놓을 수 있었던 비결 아닌 비결이다.


대학원 수업을 들으면서, 논문을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논리적 글쓰기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하게 된다. 기자들이나 에세이 같은 글을 잘 쓰던 사람들이 논문에서 막히는 건 글쓰는 방법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기사와 에세이에선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독창적인 표현과 수사가 중요하지만, 대학에서 쓰는 논문에선 오히려 정반대였다. 검증된 앞선 논문으로부터 표현을 끌어오되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반드시 인용과 주석을 달아야 했고, 그렇지 않은 문장이나 표현은 바로바로 교수나 심사위원들로부터 지적됐다. 말하자면 학문적 근거가 없는 너의 생각은 한줄도 쓰지 말라는 거다. 이것도 처음엔 어려웠는데, 집단 연구를 통해 학문적 성과를 공유하고 발전을 추구하는 일종의 공동체의 약속이라는 걸 깨닫고 난 뒤엔 그냥 맞추면 됐다. 일단 비판은 접어두고 빨리 맞춰가는 게 대학원을 빨리 탈출할 수 있는 비결이었다.


7. '회사' '직함' 꼬리표 떼고 내 이름 'OOO 브랜드'로

만약, 직장에서 한번도 벽에 부딪히지 않았더라면, 언제나 승승장구했더라면 난 지금도 어느 부서의 장으로 다람쥐 챗바퀴를 돌고 있었을 거다. 비록 그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을 수 있을 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열거한 수많은 경험과 값비싼 보물들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을 거다. 시속 100km로 휴게소도 들르지 않고 갔더라면 어느덧 서울 근처에 다왔을 수 있었겠지만, 내 차는 그정도 성능이 되지 못했고, 난 운전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 앞에 휴게소가 있었고, 아무 생각없이 들렀던 그 휴게소에서 난 '아냐 꼭 서울에 빨리 가지 않아도 돼'라는 'Plan B'를 얻었다. 트루먼쇼의 짐 캐리가 자신이 그간 살아왔던 세계가 거대한 세트 속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