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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die Feb 21. 2021

Life navigation

미군에는 Land navigation이라는 훈련이 있다. 이 훈련은 쉽게 말해 '길을 찾는' 훈련이다. 아무리 강력한 군대라도 적군이 없는 엉뚱한(?) 곳으로 이동하게 된다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 세계 군대에서 공통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훈련이기도 하다. (한국군도 '독도법, 방향탐지 및 유지'라는 명칭으로 동일한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이 훈련의 특징은 그 길을 찾는 과정에서 어떠한 전자기기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훈련에 참가한 사람에게는 그저 지도 한 장, 나침반, 각도기만 주어진다. 이것들을 가지고 목적지를 '걸어서' 찾아가야 한다. 그만큼 주변 지형지물과 지도를 비교할 수 있는 판단력과 목적지까지의 거리와 방위각을 계산하는 분석력은 물론,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까지 요구되는 종합적인 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한 주 동안 나는 이 훈련에 참가했다. 그것도 교관의 말을 인용하자면, "미 육군에서도 가장 힘들다고 평가할 수 있는 특수부대원을 위한 Land navigation 훈련"이었다. 제한시간 내에 '혼자서' 광활한 크기를 자랑하는 미국의 깊은 숲 속에 꽂혀있는 약 1m 30cm 정도 되는 높이의 '철기둥'을 찾는 훈련이었다. 물론 이 철기둥 위치에 대한 GPS 좌표는 주어지지만, 1km를 2cm로 표현한 1:50,000 축적의 지도에서는 그저 '점'하나일 뿐이었다. 실제로 1차 평가에서 나를 비롯하여 전체 인원의 70% 가까이 되는 인원들이 불합격할 정도로 높은 난이도를 자랑하는 훈련이었다.


목적지는 대략 이렇게 주어진다. 각각의 포인트를 찾기 위해 엄청난 거리를 걸어야(혹은 뛰어야) 한다.
포인트는 대략 이렇게 생겼다. 실제와 다른 점은 사진처럼 쉽게 찾을 수 있게 배려(?)한 빨간 표지가 없고, 숲 속 깊숙이 있다는 것

*사진 출처: https://whfrtc.ky.gov/rangeops/training/Pages/land-nav.aspx


이 훈련의 특징은 철저히 혼자라는 것이다. 여기서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적지에서 나 홀로 생존하는 것을 가정한 훈련이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훈련했었던 지역(area)을 찾아가는 개념이었던 훈련과는 달리 정확한 점(point)을 찾아가야 했다. 개인별로 다른 위치의 목표가 주어졌고, 도로 이용은 금지되고, 학생들끼리 서로 마주치거나 대화하는 것도 금지된다. 특히 미국의 숲 속은 긴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서 한국처럼 저명한 지형지물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저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고 나아가야 했다. 마치 몇 년 전에 보았던 조종사가 적지에서 나 홀로 탈출하는 내용을 다룬 에너미 라인스(원제목: Behind enemy lines) 영화가 떠올랐다. 평가 중 나는 어둡고 깊은 산속에서 찾아오는 고독과 포인트를 찾지 못하거나 내 위치를 알 수 없을 때 느껴지는 무기력감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숲 속에 들어가면 대략 이런 모습이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이 분야(Land navigation)에 정말 취약했다. (그것을 배운 지 10년이 넘었다는 사실은 논외로 하고) 오래전 장교가 되기 전 거쳐야 하는 교육과정에서는 팀 미션이었기 때문에 잘하는 몇몇 동기들에게 묻혀갔었고, 불과 몇 년 전 현장에서 근무할 때도 항상 지도를 보고 길을 찾는 역할은 잘하는 몇 명에게 위임했다. 불완전한 나의 실수로 인해 다수에게 피해를 주기 싫었기 때문에 선택한 나름의 '비겁한 변명'이었다. 사실 이번 훈련도 팀 미션을 기대하며 아무런 준비 없이 임했던 나는 1차 평가에서는 단 1개의 목표물도 찾지 못하고 5시간 동안 광활한 미국의 숲 속을 헤매다 끝이 났다. 평가가 끝난 뒤 나를 맞이한 것은 발바닥의 물집과 걸을 때마다 느껴지는 엄청난 고통이었다.


나처럼 단 하나의 목표물도 찾지 못한 이들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존심은 상했다. (그나마 위안이었던 것은 모든 외국군이 탈락했던 것이었다.) 이틀 뒤에 재평가가 있다는 공지를 듣고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장소를 불문하고 합격한 미국 동료들에게 가서 자문을 구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정말 기초적인 지식까지도 맞는 것인지 재확인했다. 심지어 실제 평가를 받을 때 그들의 사고방식까지 내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역시나 성공한 소수의 사고방식은 달랐다. 그들은 치밀한 계산과 분석을 통해 철저히 숫자를 바탕으로 한 과학접근방법을 적용하고 있었다. 숫자를 혐오하는 극단적 문과 주의자 마인드와 '대충'가면 있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의 집합체인 나와는 정반대였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재평가에서 합격했다. 합격한 소수의 외국군 2명 중 한 명이라는 결과까지 덤으로 얻었다. (이 과정에 참가중인 외국군은 총 7명이다.) 재평가 날은 더욱 악조건이었다. 물집으로 인한 발바닥 통증은 여전했고, 비까지 내렸다. 비로 인해 지도에 마킹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수풀 속을 헤집고 다닌 뒤 10분이 지나자 양말은 금세 젖어왔다. 불합격해도 외국군은 과정을 수료하는데 지장 없으니 '대충'하자는 악마의 속삭임이 계속 나를 유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철저히 숫자를 통해 나의 루트를 설정하고 계산했다. 포인트 근처에 와서는 나의 발걸음수를 세어가며 정확한 거리를 이동하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1차 평가에서 보이지 않던 철기둥이 보였다. 1개를 찾고 나니 더욱 자신감이 생겼고 결국 주어진 미션을 모두 해결하고 복귀했다.  


평가 중에 아무도 없는 깊고 광활한 숲길을 오랫동안 걸으며 생각한 것이 있다. Land navigation 훈련은 인간 삶의 축소판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하고, 목적지까지의 방위각, 거리 등을 철저히 계산하지 않으면 절대 목표지점에 이를 수 없다. 대충 그 방향으로 걸어가다 보면 나오겠지라는 생각은 자신의 체력과 시간만 갉아먹을 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1차 평가의 불합격, 2차 평가의 합격을 통해 체득한 My Life navigation의 일반적인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믿는 것이다. 똑같이 생긴 나무들이 끝없이 펼쳐진 숲길을 나침반 하나에 의지해 걸어가다 보면 이 방향이 맞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계속 나를 괴롭혀온다. 1차 평가 때 나도 그랬었고, 2차 평가에서 실패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연히 걸어가다 다른 동료들을 마주쳐서 그들을 따라가다가 결국 자신의 목표물과 다른 엉뚱한 곳으로 가서 체력, 시간을 낭비하게 되었다는 이들이 꽤 많았다. 개인별로 다른 목표가 주어졌기 때문에 대략적인 방향은 맞아도 정확한 목표지점은 달랐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은 준비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것의 반증일 수도 있다. 따라서 자신의 위치(수준)를 정확히 인식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 부족한 것을 채워나가려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둘째, 목표에 이르는 데는 왕도가 없다는 것이다. Land navigation 훈련의 목표물은 물리적으로 정확한 GPS 좌표값을 갖고 있어서 철저한 측정과 계산을 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도록 지정되어 있다. 15분을 걸어가면 약 1km를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120~130걸음을 이동하면 100m가 된다는 것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이와 관련된 문법, 단어, 회화를 익혀야 하듯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무엇들이 필요한지 정확히 알고, 어떠한 시련이 찾아오더라도 꾸준히 그것들을 성취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작은 노력들이 꾸준히 이어지면 그게 결국 성공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셋째, 인간의 본질은 고독 그 자체라는 것이다. 목적지로 나 홀로 이동하다 보면 눈앞에 펼쳐진 광활한 숲과 장애물, 고독, 체력적 한계들과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1차 평가 때 3시간째 목표물을 단 한 개도 찾지 못하고 걸어가고 있을 때 그 어느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는 고독감과 무력감은 저절로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것이 만약 실제 상황이었다면 1차 평가 때의 나는 아마 끝까지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2차 평가 때는 어느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는 고독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 환경에 적응하려 노력했다. 중간중간 아늑한 장소를 찾아 젖은 양말을 갈아 신고, 에너지바를 먹기도 하였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있듯이 자신의 목표로 향하는 여정에서 고독은 자연스러운 것임을 받아들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번 Land navigation 훈련은 최근에 내 삶에서 중요한 결정을 한 직후에 맞이한 것이라 더욱 의미가 남달랐다. 그래서인지 위와 같은 방구석 철학(?)을 스스로 도출해 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대충의 대명사 자체인 내가 이를 완벽히 실행할지는 아직도 의문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고질적인 문제인 DC(대충) 주의의 본질을 더욱 정확히 알게 되었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찾은 것 같아서 보람이 크다. 아마 2차 평가에서도 불합격했다면 이러한 보람을 못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런 여러 가지 의미에서 나에게 이번 훈련은 Life navigation 훈련이기도 했다.


최근 나보다 성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회고와 그들의 생활방식을 보며 느낀 것은 그들은 단 하루도 쉽게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고,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꾸준히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내가 2차 평가 때 묵묵히 내가 설정한 루트를 따라서 목표물로 향해가듯이 말이다. 갑자기 떠오르는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navy seal)의 격언처럼, 절대 우리의 삶은 쉽지 않으며, 대충 살면 안 된다는 것을 이번 훈련을 통해 다시 한번 느낀다. "The only easy day was yester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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