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4시, 새들이 깨어난다. 희뿌연 울림에 둘러싸인 티티새는 높은 나무에 올라가 달무리 아래 숨어 트릴을 연주한다. 이 것을 경건한 형태로 바라보라, 하늘의 고요한 하모니를 듣게 될 것이다.'
작곡가 메시앙이 직접 남긴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 중 1번 '수정의 전례(Liturgie de cristal)'에 대한 노트다. 60분에 달하는 뮤직비디오 '시간의 종말'을 작업하며 가장 섬세한 표현을 요구한 악장이기도 하다. 요한계시록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 고유의 분위기와 상징이 이 노트 안에 모두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이 노트는 '시간의 종말'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파고들면 8악장까지의 모든 스토리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몇 가지 키워드를 통해 함께 살펴보자.
1. 전례 (Liturgie)
메시앙이 제목에 사용한 단어 'Liturgie'는 예배를 일컫는 오래된 프랑스어다. 기독교적 표현으로 주로 사용되지만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의 신비로운 의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조류학자이기도 했던 메시앙은 이 걸작의 오프닝을 새가 인도하는 자연의 예배로 시작했다. 모두가 잠든 새벽 3-4시, 부드럽고 나직하게 시작되는 티티새의 노래는 그레고리안 성가를 떠오르게 한다. 마치 오래된 비밀을 알고 간직해 온 것 같은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이 비밀은 요한계시록에 담긴 '시간의 운명'에 대한 것으로 8악장까지 이어지는 스토리를 관통하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2. 크리스털 - 비밀이 담긴 상자
영상 속 중앙에 놓인 크리스털 상자는 이 비밀의 실재를 인식하게 하는 도구다. 정교하고 투명하지만 깨지기 쉬운 크리스털은 누군가에 의해 소중히 관리되어야 한다. 요한계시록 10장에 나오는 천사가 지키는 '봉인된 두루마리'를 연상케 한다.
이 크리스털 상자는 시간의 운명과 비밀을 의미하며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메인 캐릭터다. 구약 성경의 언약궤를 모티브로 한 이 상자는 이후에 연결되는 악장을 통해 서서히 그 비밀을 풀어내며 정체를 드러낸다.
3. 스토리텔러 - 티티새
메시앙의 노트에 언급된 티티새는 이 비밀을 알고 지키는 화자, 즉 스토리텔러다. 1번 '수정의 전례'에서는 자연의 예배를 인도하는 사제로 크리스털 상자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이후 3번 '새들의 심연'에서 이 티티새의 사명과 임무가 뚜렷이 나타나는데 이 내용과 클라리네티스트에 대한 이야기는 이어지는 3번 해설에서 더 깊이 들여다보기로 하자.
클라리네티스트가 연주하는 티티새의 노래는 예배를 돕는 작은 새, 바이올린의 지저귐과 긴밀히 대화하고 있다. 또한 새벽바람 소리를 표현하는 첼로의 하모닉스와 숲과 나무를 의미하는 피아노의 화성이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사운드적 기능이 비교적 높은 1번 영상의 청각적인 효과를 위해 역으로 시각의 무게를 과감히 클라리넷으로 기울였다. 자연을 표현한 다른 악기들의 사운드에 집중해 새벽 3-4시의 수정의 예배를 상상하며 감상해보시길 추천드린다.
< Special Point >
1번 '수정의 전례' MV의 특별 감상 포인트는 크리스털 상자의 라이트닝이다. 자세히 보면 음악에 맞춰 블로잉이 움직이고 있고 프레이징에 따라 카메라 무빙이 돌고 있다. 디테일한 음악적 효과와 타이밍을 맞추느라 고생한 영상팀을 생각하면 아직도 미안하고 고맙다.
그리고 실제로 이 영상은 새벽 3시에 촬영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조금 밀린 일정 덕분에 메시앙의 의도를 더 느끼며 작업할 수 있어 황홀한 시간이었다. 보시는 분들도 모두 한껏 즐겨주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