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가람 Feb 13. 2022

II. 시간의 종말을 선포한 천사의 보칼리제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영원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더 이상 지체하지 않을 것이다."
요한계시록 10:6


메시앙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의 영감이 된 요한계시록의 한 구절이다. 1번 '수정의 전례'에 이어 메시앙은 2번 음악에 '시간의 종말을 선포한 천사'의 이미지를 담았다.

 


1. 시간의 종말을 선포한 천사의 모습

먼저 메시앙의 노트와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이 천사는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힘이 세며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와 오른발은 바다를 밟고 왼발은 땅을 밟고 있다.


이 천사는 강렬한 클라리넷과 피아노 소리와 함께 천둥처럼 등장한다. 그리고 첼로와 바이올린은 놀란 듯 불안한 움직임을 보인다. 연출적으로는 이전 1번 '수정의 전례'에서 예배를 인도한 티티새가 천사의 등장을 알렸으면 했다. 클라리네티스트의 사제복 의상을 2번 챕터까지 가져온 이유이기도 하다.   


천사는 시간의 운명을 선포하고 일곱 나팔과 함께 최후의 순간을 알리는 임무를 맡고 있다. 천사 머리 위에 떠있는 무지개는 이후 7번 '시간의 종말을 선포한 천사의 뒤얽힌 무지개'와 긴밀히 연결된다.  



2. 천사의 보칼리제

본격적인 천사의 노래, 보칼리제는 가운데 파트부터 시작된다. 보칼리제(vocalise)란 가사가 없는 성악곡으로 모음이나 허밍으로만 부르는 노래를 뜻한다.  부분에 대해 메시앙이 직접 남긴 노트를 잠시 들여다보자.


'손으로 만지거나 느낄 수 없는, 아주 미묘한 하늘의 하모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카리용(carillon: 종탑에 설치된 23개 이상의 조율된 종들로 이루어진 악기) 같은 바이올린과 첼로의 노래, 그리고 이 선율을 감싸는 피아노 화음은 블루-오렌지 색이다' 


메시앙이 말하는 블루-오렌지 컬러는 천사가 밟고 있는 바다와 땅을 의미한다. 그리고 메시앙은 피아니스트에게 이 부분을 '무지개의 물방울처럼' 연주해달라는 노트를 직접 악보에 남겼다. 


바이올린과 첼로의 보칼리제는 서로 같은 음을 연주하는데 마치 한 사람이 두 개의 목소리를 내는 듯한 신비로움을 더한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고대 언어 같은 비밀스러움도 느껴진다.  



3. 연출적 장치 & 의미

뮤직비디오를 제작할 때 부분이 워낙 길어 영상팀의 고민이 컸다. 설명하려 할수록 표현이 과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해서 무지개의 물방울을 연주하는 피아노와 무지개 컬러 조명으로만 장면을 채워보기로 했다. 그리고 역으로 바이올린과 첼로의 보칼리제가 청각적으로 더 와닿을 수 있는 연출을 시도해봤다.


일단 천사의 보칼리제를 부르고 있는 바이올린과 첼로 연주자에게 시선이 간다면 이 선율이 신비롭게 다가올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피아노 위로 드리워진 천사 모양의 천으로 효과를 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두 개의 목소리를 가진 천사를 상상하며 이 부분을 감상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마지막으로 엔딩에 단호하게 걷히는 천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겠다(There will be no more delay!)'는 천사의 외침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음악 호흡에 맞춰 무지개색 조명과 타이밍을 디자인한 조명팀의 센스와 노고에 특별히 더 감사했던 챕터였다. 좋은 감각을 가진 동료들과 작업한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자 기쁨이다.


Special Point!

피아노에 시선을 두고 바이올린과 첼로가 들려주는 천사의 보칼리제를 집중해서 들어보시길 추천드린다. 전혀 다른 음악처럼 느껴지실 것이다.  



https://youtu.be/2 obSkue82 gU

  




 


매거진의 이전글 I. 수정의 전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